파란의 네번째 특성
수평선을 그리울 때가 찾아온다. 도심의 고층 빌딩 속 미아가 되는 방황에서 벗어나고 싶다. 매일 반복되는 일, 지루함에 참을 수 없는 답답함을 바다 속으로 내던지는 바램이 생긴다. 탁 트인 무한의 공간이라 파랑의 물결에 절로 내적 파도가 일렁이는 순간을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것.
동해에 가고 싶은 이유다. 탁 트인 수평선을 보며 바다에 나의 마음을 맘껏 내던진다. 흐릿한 날씨여도 상관없다. 시원하기만 하면 된다. 바다 날씨는 변덕스럽지만 바람의 강도는 생각과 마음의 찌꺼기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하다.
온갖 잡생각, 하루를 시작하며 불필요한 것들이 두뇌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한번 시작되면 멈출 수 없는, 사소한 호기심의 발동은 이상세계를 현미경으로 둘러보듯 현실로 꺼낸다. 실체가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무언의 글감을 건진다면 다행이지만 뿌리없는 중심에선 여기저기 튀는 탱탱볼에 불과하다.
매일 반복적인 할 일, 성과없는 침체를 맞이하며 홀로 버티는 힘을 상실했다. 너무 멀리 떨어진 우주 저 너머에 있는 것을 손에 넣고 싶어 눈앞의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내쳤다. 등잔 밑이 어두워 비관의 장님이 되었다. 잦은 변화는 긍정의 에너지에 독을 뿜어내었고, 엇갈리는 새로움은 현실 문제를 은폐하는 도피가 되었다. 참을 수 없는 괴로움에 SNS의 도파민을 분출했다. 이렇게라도 해야 생각과 마음의 안정이 생길 것 같았다. 이내 거대한 멍함이 몰려왔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거부하며 세상의 모든 것을 나만의 분석, 예측에 의지했다. 어떠한 대화, 반응, 행동의 결과를 무시한 채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간섭했다. 홀로 내적으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보상 불만족의 확장판이다. 나에 대한 성과가 없다면 타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는 발상이 소모적 신박함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혼자 낄낄거리며 불필요한 생각 공장을 가동시키니 흘러가는 시간과 돈에 무감각해졌다.
맑은 날씨와 비구름의 경계, 인생의 명과 암의 경계이기도 하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의 공존, 일상이 그렇다. 오전이 맑았어도 오후는 흐리다. 마음 상태도 시작이 좋아도 중간이 안 좋을 수도 있다. 수평선은 무한한 인생 길을 말해준다.
생각이 많고 마음이 복잡하다 느껴도 바다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단순하고 간결하게 정리 할 줄 알아야 한다. 하루는 변화무쌍하기 때문이다. 받아들임이 필요하다. 소유적 집착에 버릴 수 없는 찌꺼기를 안고 갈 수 없다. 모호함의 경계는 항상 삶의 태도를 평가하고 지켜본다. 아무도 없는 주변, 한정된 그릇 안에 세속의 덩어리를 우겨 넣으면 나의 것이라 소문내며 다닐 수 있는가. 껍데기만 화려하지 알맹이는 없는 악취를 풍기는 지방 덩어리에 사람들이 도망간다.
소수의 파란빛을 비추는 어느 한사람에서 보여준 태도를 나에게로 동화시켜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세상에 자신이 관여하지 않는다. 모름은 새로움을 받아들이는 신호이고 보고 듣는 건 자신의 열린 마음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