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의 마지막 특성
차가움 속의 파랑은 냉랭함으로 마음을 얼려버리는 듯 한다. 함박눈으로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지만 너무 눈부시다고 눈의 결정체는 파란빛을 뿜어낸다. 하늘과 바다가 푸르다지만 세상을 얼리는 색체도 파랑이 숨어있다. 멀리보면 몰랐을 가까웠을 때 강한 한기로 자신의 존재를 내뿜는다. 겨울의 적막함은 파란의 느낌에 집중하라며 북쪽의 제트기류가 지상을 방문한다.
한파로 움츠려든 몸, 집안으로 들어오는 한기는 침대 속 공간으로 안내한다. 바깥에 오래 머물면 외부의 바이러스가 반갑다며 인사를 청한다. 콘크리트의 방어로 추위를 잊는다. 멈춰진 두뇌와 몸은 바닥의 배관 열기로 조금씩 활동을 재개한다.
밤보다 낮의 길이가 짧은 하루는 일상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며 아무것도 안 하는 스마트폰 속 세상에 도파민을 자극한다. 하루 종일 초단위로 바뀌는 영상 앞에 한가지의 몰입의 자유를 잊은 지 오래다. 하얀 바탕에 검은 것은 글씨요 화면은 여러 색채가 끊임없이 스쳐 지나갔다. 작은 화면 속 몇초 단위의 영상이 이리저리 시선을 분산시킨다. 집안에 멍하니 쉬는 두뇌를 멈추면 안된다고 네모난 기기가 속삭인다. 흐트러져 공중에 떠도는 생각들은 화려한 자극에 휘발된다.
파랑을 갈망할 시간이 찾아왔다. 머릿속 복잡함을 단하나의 것에만 자신을 맡기는, 바깥을 걸으며 푸른하늘에게 나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홀로 걷는 길에서 일순간에 뿜어져 나온 도파민을 버린다. 두뇌의 스위치를 멈춘다. 그냥 걷는다. 목적지는 없다. 부동의 육체를 움직이며 둔화된 오감을 조금씩 소생한다.
익숙한 듯 새로운 목적지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스쳐 지나간 풍경을 천천히 느낀다.
나뭇가지는 어디로 뻗어가는가. 뿌리는 땅속에 숨어 무언의 확장이 진행되는데 자잘한 가지는 뿌리와 동화되는 하늘이 땅이요 땅은 하늘이다.
바다로 흐르는 천줄기는 강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떠난다. 작은 한방물의 시작은 어느 높은 산에서 하산하여 빈 공간을 채워 갔다. 인간이 두눈은 여정의 길목으로 다음 한방울이 무사히 지나갈 수 있는 거대한 흔적을 본다.
일정히 정렬된 거대한 직사각형은 인간이 만든 건축물로 공동체의 쉼터가 되어 고되고 힘든 육체를 재생하게 한다. 같은 듯 다른 네모난 위용은 단조로운 회색빛인가. 수직적 동일함은 물리적으로 존재할 뿐 그 공간에 사는 사람은 각기 다른 형태의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무방비로 노출된 도파민은 차가운 파란빛으로 얼려버린다. 매일 반복되고 새로운 것들이 생성되는 현실 세계, 조용히 작은 육면체에 담아낸다. 겨울이 허락한 유일한 해방. 육면체는 몸집을 키우며 거대한 빙하가 된다. 빙하는 사람들의 세속을 담아내고 영원히 녹지 않는 자신들만의 시간을 고정시킨다.
매서운 바람이 삶의 나침반으로 나를 인도한다. 얼마나 매서운지 집 밖의 겨울이 잊혀진다. 눈을 부릅뜬다. 빙하의 기록이 바람에 담겨 기억이 망각 되어도 다시금 떠오른다. 바람이 강하게 느껴질수록 세속을 품은 빙하에 가까워진다.
파란은 익숙한 듯 낯설다. 냉정하면서도 닿으면 차가운 기운을 전달한다. 푸르기에 맑고 깨끗하다. 물결의 투명함은 순수한 파랑이다. 잡스러운 혼란이 찾아오면 하얀 결정체가 뭉쳐진 육면체를 기억한다. 현실의 반복에 잠시 고개를 들었을 때 한기의 위용에 파란의 짙음을 깨닫게 된다. 파란은 안다. 얼음의 냉랭함으로 뿌연 마음을 얼려버린다고.
파란의 소통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