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소수책방 방문
천상 우주를 떠돌고 있었던 나의 글쓰기, 소수책방 사장님과의 대화로 지상으로 내려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이분법적 사고, 지나친 카테고리 세분화가 수평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막았다. 예술에 관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대화가 글쓰기로 이어져 자연스레 평소 고민도 말하게 된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았기에 도저히 풀리지 않는 문제에 답답함이 많아 글을 오랬동안 써본 사람에게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고 싶었던 것. 그 해답이 간단할지라도 당시의 어려움에선 그런 간단함 조차 나오지 않았다. 혼자 생각하고 답을 찾기에 타인의 시선으로 객관화가 필요했다. 혼자만의 생각은 세상의 절대성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책방에서 마시는 맥주 맛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던 것이 글쓰기의 고민을 해결된 순간이라 하겠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이 쓰는 수필도 확실히 짚고 넘어갈 수 있었다. 에세이라는 용어가 더 익숙해 수필과 같은 말이라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상 에세이는 다르다는 식으로 그 무게가 수필과는 다르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스스로 의심이 생겨 현재의 해석은 달라진 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 건 없었다. 한글로 수필, 영어로 에세이. 수필이건 에세이건 똑같다. 이미 에세이스트였다. 문학적 글쓰기로 방향을 잡고 어느 분야의 글을 쓰냐는 질문을 받는데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대답으로 모호성을 띄게 했었다. 본인조차 어느 형태의 글을 쓸지 알 수 없었다. 오늘 부로 에세이라고 확실히 대답할 수 있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대답 자체가 수필이기에 나중에서야 에세이를 쓴다 해도 문제 될 것은 없다.
문학적 글이라도 에세이는 소외되지 않는다. 문학 에세이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 시, 수필을 생각했는데 왜인지 에세이는 별도의 분류로 취급한 적이 많았다. 글쓰기 플랫폼이 생기고 포털 사이트로 글이 검색 가능한 현재, 에세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분야로 자리 잡았다. 일상 에세이로 사람 이야기가 많이 읽혔다.
형식에 얽매지 않은 자유로운 표현과 묘사를 하는 글, 자유로워서 가볍다고 여긴 건 아닌지 반성해본다. 수필이 없다면 모든 글은 길을 잃고 방황할 것이다. 일기, 산문, 시, 소설 모두 글의 근원을 잃어버린 채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할 것이다. 자신에게서 시작되어 다양한 표현, 묘사, 세계관 등으로 확장 될 수 있기에 수필의 중요성은 생각 이상으로 글의 핵심 요소가 된다.
매일 글을 쓰고 일상을 기록하는 것에서 한낱 나열의 연속이여도 수필의 힘은 책, 종이, 자판기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는 손짓을 할 것이다. 어쩌면 글을 쓰는 이유도 자신만의 수필을 만들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소수책방, 작지만 글과 문학이 넘쳐나는 공간이다. 앞으로도 글쓰기의 고민은 이곳에서 해결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