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합평 이야기 3
현재 참여 중인 시,소설 쓰기 특강에 제출할 최종 작품 원고 작성으로 브런치북 글 발행을 미루게 되었다. 합평의 이야기가 잠시 멈춰진 이유다. 얼려진 발행을 녹이려 한다.
어렵게 짜낸 여행의 기억을 나만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걸레의 물 한방울까지 짜내듯 그 당시를 묘사했다. 얼마나 짜냈는지 두뇌의 수분이 모두 증발된 느낌이다. 기억의 뿌리는 수분을 상실해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할 정도였다. 당시에 들고 다닌 작은 수첩 하나를 보아도 여행 에세이로 쓸 수 있는 내용이 거의 없었다. 어느 한줄을 한페이지로 늘려야 했다. 그러기에는 당시의 기억을 되살리며 홀로 같은 동선의 국내여행을 떠나야 한다.
20대 초반의 체력과 숙박의 두려움이 공존한 첫 국내여행을 지금이라면 당시의 조건으로 떠나지 못할 것이다. 현재의 의문은 당시의 의문과는 다르기에 똑같이 답을 찾는 여행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추상적인 접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진심이다.
여정의 이유, 나는 어느 쪽 일까? 자연을 느끼기 위한 것? 사람들의 움직임을 보는 것? 같은 듯 다른 반복되는 일상에서 나만의 여정을 찾는다. 여정이 곧 나를 찾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발품을 팔아 글감을 모으고 글을 쓰는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최우선에 있다. 여행지가 아니다. 장소만 다를 뿐이지 내면의 근원의 갈증을 해소하려는 건 불변하다. 아마, 죽기 직전에야 근원의 답을 알 수 있을테지. 내면을 깊이 있게 탐구하는 여행을 직접적으로 드러낸 이야기를 현실에서 찾는 다면 문학적 표현, 묘사로 다듬어진 작품일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넘어 내적 여유를 찾는다. 현실의 폭풍 속에 마음의 흡집을 아물게 해야 한다. 알게 모르게 무의식에서 흡집의 아픔을 무언으로 삼키고 있었다.
아픔이라 여기는 건 단순히 현실의 반복적인 일상에 신물이 난 것이겠다. 새로운 무언가를 갈망하기에 회색빛 우울함을 푸른 하늘과 바다같은 마음으로 전환하고 싶은 것이겠다. 파란과 관련된 것을 떠올리면 생각과 마음의 복잡함이 하나의 거대한 사유로 정리된다.
블루스라는 뜻이 우울과 관련되어 있는데 아픔이 선행되어 감정에서 우울함이 몰려왔을 때 그 느낌을 노래 장르로 극대화 시킨 것이겠다. 파란은 우울의 물결을 망망대해나 하늘 위로 던지는 행위일 것이다.
마음의 여유가 낯설다. 책방 창밖의 모습을 보며 목적지가 어딘지 모를 차들이 제각기 분주함을 보이고 있다. 한강을 가로지는 다리는 남과 북이 갈라진 연결고리를 자처하고 있다. 익숙해서, 매일 반복적인 움직임에 여유의 치유는 잠시 머물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여유에 대한 오해는 반복적인 움직임에 분주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잠깐의 휴식에서도 여유가 찾아 올 수 있는데 여행을 통해서만 생각과 마음을 비움이라 정의 내릴 수 없다. 독서를 하는 것에서 글을 쓰는 것에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서 모두 여유라 할 수 있다. 낯설다는 건 아직 마음의 분주함에 강박이 작용한 결과이다.
나만의 여행 사유는 내적 깊숙이 파고든 마음의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었다. 관광지를 가거나 그 지역 만의 맛집을 찾아가거나 아니면 지역 행사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로지 나의 내면의 의문을 해소하는 것이다. 당시의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10대 때부터 삶의 근원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려 혼자 있는 시간을 가졌고 사람들과 대화를 시도해 봤지만 어떠한 힌트, 단서도 얻지 못했다. 여행이라면 의문이 말끔히 해소될 것이라 믿었다.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 몇일을 바깥에서 보냄이 일시적 자유와 해방을 느꼈다며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을 것이란 지금의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