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합평 이야기 4
여러 고민을 하느니 그냥 올리자. 한페지를 겨우 채운 여행에세이를 제출했다. 사색의 질문을 찾는 여행인지라 내면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이야기에 강한 자신감을 가졌다. 지금 생각하면 왜그랬는지 모르겠는데 당시에는 어렵게 쓴 만큼 사람들이 알아 줄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있어 자신감으로 스스로 마음의 위안을 삼은 것 같다.
여기서 나는 커다란 착각을 했다. 고민이 많았다는 것은 쓸 내용이 없어 마감 시간 내 뭐라도 써야 하는 초조함이었는데, 이를 어렵게 생각을 짜낸 것으로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자찬이었다. 생각 속 이야기를 꺼낸 들 누가 못하겠는가. 여행이라는 주제가 아니었어도 그에 맞게 쓰는 것이 글인데 16년째 홀로 글을 쓴 것이 나만의 우물을 만들어 낸 것. 우물 밖은 다양한 글로 가득한데 혼자 만 모르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부분적인 표현은 나쁘지 않은데 전체적으로 어떤 이야기를 말하는지 머리 속으로 떠오르지 않아요. 병렬식 구성으로 문단을 나눈 것 같은데 이를 더 강조하도록 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정말 어렵게 짜낸 첫번째 여행 글인데 혹평 아닌 혹평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전체 글에서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재미를 주는지 모르겠다는 말이 대다수였는데 깊은 생각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표현이 많았기 때문이다. 첫 합평 이후에도 이런 결의 글이 계속되었다. 여행지의 표현, 묘사가 아닌 내적으로 파고드는 나만의 철학을 담아냈기에 심오한 받아들임이 없다면 내 글을 읽는데 많은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여행 에세이인데 여행지에 가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원하기 누가 한 개인의 심층적 내적 탐구를 좋아하겠는가. 첫 합평에서 자신감이 바닥을 쳤고 기세는 어둠의 지하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앞이 깜깜한 막막함만이 나를 짓눌렀다. 내 글이 그렇게 형편없는가.
합평이라는 건 개개인의 경험, 생각, 느낌에 따라 작품을 보는 시선이 다르다. 미리보는 독자의 의견이라 할 수 있다. 개개인의 말에 끌려간다면 나만의 작품 세계가 무너져 이도 저도 아닌 글이 되버린다. 이는 문학 작품 세계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여행 에세이 합평은 달랐다. 여행지에서의 경험을 자신만의 이야기로 풀어내는 표현, 묘사로 재미를 가져다 줌이 있어야 했다. 자신이 여행 에세이를 출간했을 때 여행 중에 있었던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닿는 걸 추구했던 것 같다. 일종의 출판사 홍보랄까. 여담이지만 합평을 진행한 출판사 대표의 결도 상당수 반영되기도 했다.
자기 비판과 자책에 빠졌다. 글쓰기의 자의식이 강해 타인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것 밖에 안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아직 5번의 합평이 남았음에도 다음 원고 쓰기에 막막함만 가득했다. 혼자 썼을 때와 직접 낭독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의 차이를 느낀 순간이다. 잘못된 것이 아니다. 스스로 큰 실망을 가져 다음주에 쓸 여행 이야기가 한순간에 사라진 느낌을 강하게 받은 것이다.
군입대 전 홀로 떠난 국내여행의 기억을 떠올릴 사진, 영상, 글이 거의 없었기에 흐릿한 기억에만 의존했다. 여행 에세이의 특징을 생각해봐도 여행 이야기의 표현, 묘사 외에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진, 영상이 글의 느낌이 한껏 살려줌이 있다. 이런 것들이 없었으니 나의 여행 에세이는 무미건조한 사막 한가운데 기억의 땀방울 하나 겨우 짜낸 것이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 수 없었다. 미리 예매한 기차표는 변경할 수 없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나를 적대시하는 것 같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은 침착함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든 피해 보려 했다. 헛수고다. ‘이대로 여기서 삶이 끝나는 게 아닌가?’ 어떤 것도 나를 구해주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
그 당시 썼던 여행 에세이 일부다. 다시 읽어보니 여행 이야기보다 막연한 불안함에 둘러싸인 나의 모습만 보인다. 지금 다시 쓴다면 어땠을까. 문학적으로 표현, 묘사로 퇴고하지 않았을까 싶다.
여행과 사색 사이에서 고민은 알맹이 없는 평범한 껍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