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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리 Oct 17. 2021

눈 떠보니 200년 전..황자가 나를 사랑한다고?

중드는 왜 타임슬립을 사랑할까 

 중드에는 유독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타임슬립’을 활용한 스토리가 많습니다. 모두가 평생을 살 수 있게 된 미래에서 주인공이 영생을 포기하고 사랑을 찾아 무림시대로 가는 <춘화추월: 천생의 연인>, 부동산 중개업자로 일하던 여주인공이 고대 동악국 병부상서 딸로 생활하게 되는 <쌍세총비>, 우리나라에서도 아이유 주연으로 리메이크됐던 <보보경심> 등 타임슬립을 활용하지 않는 드라마를 찾기가 오히려 더 힘들 정도지요. 건축가 사무실 인턴으로 일하는 주인공이 청나라로 가고(<몽회>), 신비로운 반지를 끼고 과거로 돌아가는(<맹처식신>) 등 타임슬립 구도는 셀 수 없이 많이 반복됩니다.

주인공 투샷부터 달달한 쌍세총비2, 몽회 포스터. (출처=바이두검색)

그렇다면 타임슬립 드라마가 언제 처음 중국 드라마에 등장했을까요? 중국 첫 타임슬립 드라마는 2001년 홍콩 TVB 방송국에서 방영했던 <심진기>로 알려져있습니다. 1) 홍콩 특수부대 요원이 2000년 전 진나라로 돌아가는 이야기인데요, 이때까지만 해도 타임슬립이라는 개념은 별로 없다가 이후 현대 좀도둑이 명나라 황궁으로 돌아가 황제랑 사랑에 빠지고마는 <천월시공적애련> 이후 ‘타임슬립’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네요. 


 타임슬립은 간간히 등장하는 소재였지만 빅히트작은 없었고, 2010년에 성룡이 제작한 <신화>가 중국 CCTV에서 방송되면서 타임슬립 드라마 시대를 다시 엽니다. 유적 발굴 현장에서 신비로운 상자를 건드린 주인공이 삼국시대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이 해 최고 시청률을 찍었습니다.

배우 성룡과 김희선 주연의 영화 '신화' 포스터(출처=네이버 검색)

 ‘아 이게 통하는구나’ 깨달은 제작자들은 앞다퉈 드라마를 만듭니다. 2011년엔 <궁쇄심옥> 이 나왔는데, 주인공이 청나라 황자들과 사랑에 빠지는 멜로 이야기로 시청자를 홀렸죠. 호남위성TV에서 제작했는데, 당시 5년간 지방 방송국에서 만든 드라마 중에서는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고 합니다.2) 궁쇄심옥 이후엔 비슷한 내용이지만 감정선을 좀 더 살린 <보보경심>이 나왔습니다. 보보경심은 방송 며칠만에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서 1700만개 가까운 게시물이 올라왔을 정도로 그야말로 ‘초인기’였습니다. 2015년에는 드라마 <태자비 승직기>가 타임슬립물의 뒤를 잇습니다.


 중국 타임슬립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웹소설입니다. 타임슬립 드라마들은 웹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게 많습니다. 인터넷에서 발표하는 웹소설은 중국 일반 문학과는 다른 점이 몇 가지 있는데요. 연재 특성상 독자의 피드백을 실시간으로 받아 반영할 수 있고, 짧은 분량으로 독자를 매료시켜야해 이야기 진행이 빠릅니다. 주 독자층이 10~30대로 젊어, 트렌디한 내용을 많이 반영하고요. 젊고, 빠르면서 감각적인데다 적절히 타임슬립 요소를 버무린 웹소설이 드라마화되면서 타임슬립 드라마 자체의 퀄리티도 점차 올라갑니다. 웹소설의 팬층이 드라마로 옮겨가기도 해, 더욱 많은 웹소설이 드라마화되지요.


 한국의 방송심의위원회 격인 광전총국이 TV에서 타임슬립 드라마를 금지한 것도 웹드라마로 타임슬립 드라마들이 옮겨간 계기가 됐습니다. 2015년 광전총국은 태자비 승직기가 큰 인기를 끌자 “역사는 바꿀 수 없다”며 역사왜곡에 불편한 속내를 비쳤고, 결국 타임슬립 드라마 제작을 금지했는데요, 타임슬립 드라마가 인기를 끌어 늘어났던 광고 수입은 내심 아쉬웠던 모양입니다. 광총은 이후 웹드라마에서는 타임슬립 스토리를 허용하게 되지요.


 중국 타임슬립 드라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 중국의 타임슬립 드라마에서는 주인공들이 주로 현재나 미래에서 과거로 돌아갑니다. 과거에 사는 주인공이 현대나 미래로 오는 경우는 정말 드뭅니다. 한국에서는 옥탑방 왕세자나, 인현왕후의 남자 등에서 남자주인공이 현대로 오기도 하는데, 중국은 대부분 여자주인공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갑니다. 

 둘, 그들은 대부분 현대에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입니다. 현대에서 잘 먹고 잘 살던 사람들이 돌아가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지요. 빚쟁이에 쫓기거나, 친구에게 배신당하거나, 여러 가지 일이 잘 안 풀려 좌절하는 주인공이 과거의 한 장면에 갑자기 등장해요. 과거로 간 이들은 의외로 해결사 역할을 합니다. 여자는 어째야한다, 남자는 어째야 한다, 황자는 이러해야 한다, 는 식의 과거 고정관념에서 자유롭기 때문이겠죠. 나랑 비슷하게 현실에선 어려움을 겪던 주인공들이 진취적인데다 밝고 명랑한 성격을 무기로 문제를 해결하고 주위사람들을 도와주는 건 독자들에게도 카타르시스를 줍니다. 

 눈도 호강합니다. 중국 타임슬립 드라마는 대부분의 사건이 과거에서 벌어집니다. 화려한 의상을 입은 황후와 후궁들, 정교한 장신구와 옛날 건축물들을 보여주면서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죠. 


 다만 ‘어디서 본 것 같은’ 반복되는 플롯, 어김없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다소 단순한 구조는 아쉽습니다. 과거 역사를 바꾸는 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중국에서는 타임슬립이 하나의 장치일 뿐,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동력이 되지는 못합니다. 현대의 주인공들이 과거로 돌아가는 행위가 과거를 바꾸지 못하니, 결국 어느 시점에서는 현재로 돌아와야만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대만 드라마 ‘상견니’는 아주 독특합니다. 현재의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가 과거를 바꾸고, 과거의 또 다른 주인공이 현재의 주인공에 영향을 주는 다층적인 구조로 진부한 스토리라인에서 벗어납니다. 보는 사람이 타임슬립에 기대하는 일들이 상견니에서 안 일어나고, 주인공에게 일어나면 안 되는 일들이 허를 찌르며 일어나요. 보는 입장에선 “어?이러면 안되는데.” 하고 그 다음 얘기가 너무 궁금해지는 거죠. 이게 2020년을 휩쓴 상견니의 힘이었겠지요.  



1) 타임슬립 드라마의 흥행적 관점에서 본 제작환경 비교연구(2020년2월) 왕자신, 청주대  대학원 연극영화학과

2) 타임슬립 드라마의 흥행적 관점에서 본 제작환경 비교연구(2020년2월) 왕자신, 청주대  대학원 연극영화학과, p.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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