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은 왜 <진정령>의 브로맨스에 열광했나
우리나라에서 투톱 주인공을 내세운 드라마 원조로는 <투깝스>가 있지만, 그 이후의 투톱 주인공 드라마들은 딱히 히트작을 찾긴 힘듭니다. 미국 인기 드라마를 리메이크해 무려 장동건 박형식이 출연했던 <슈츠>도 우리나라에서는 화제성이 덜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다르지요. 공준, 장철한이 전면에 나선 <산하령>이 인기리에 방영됐고, 슈퍼스타 라운희와 장야의 진비우가 주연을 맡은 <호의행>도 제작됐습니다.
최근 중국의 브로맨스 물에는 말 그대로, ‘로맨스’ 비중이 큽니다. 사전 제작한 드라마를 몇 년씩 묵혀두기도 하면서 검열하는 중국에서 동성애를 다루기는 어렵죠. 대신 “우정인 듯 사랑인 듯 친구 같은 너” 컨셉으로 검열을 살짝 피해가는 브로맨스 물이 다수 제작됩니다.
이 브로맨스물 인기의 시작은 2019년작 <진정령>으로 봐야겠지요. 한 번 발을 들이면 빠져나오지 못하고 다회차 감상의 세계로 들어가버려 ‘회전문’이며, 드라마를 보고 나면 실제와 드라마세계를 구분하지 못해 ‘현망진창’이 돼버린다고 악명 아닌 악명이 높은 드라마입니다. 마도조사라는 인기 남성 동성애소설(BL)을 원작으로 만든 이 드라마에서 아이돌 그룹의 멤버였던 초전(샤오잔)과 왕일박(왕이보)은 그야말로 단숨에 중국 최고 스타반열에 오릅니다. 샤오잔은 진정령 이후 2021년 상반기까지 거의 모든 종류의 인기순위에서 1위를 놓친 적이 없습니다. 왕이보도 인기 순위에서는 3위권을 벗어나지 않지요.
<진정령>의 주인공 위무선은 뛰어난 무공을 지닌 소년입니다. 수련을 위해 남가 학당을 찾은 위무선은 학당의 후계자 남잠과 만납니다. 자유분방하고 활달한 성격의 위무선, 원리원칙주의자인 냉미남 남잠은 첫 만남부터 티격태격하지요. 이후에 여러 사건을 겪으며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사이가 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 일을 자기 일처럼 발 벗고 도와주는 위무선 성격이 발목을 잡습니다. 세상의 오해를 산 위무선은 선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자신을 모두의 적으로 돌리고 악행을 감추려는 사람들의 불의에 맞서 싸우다 죽습니다. 그리고 18년 후, 다시 등장해서 긴 세월동안 그를 잊지 않고 친구이자 연인인 위무선을 찾아 헤맨 남잠과 재회하지요.
현재에서 시작해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18년 후의 현재로 돌아오는 이 드라마는 모든 인물들의 숨겨졌던 이야기가 드러나는 후반부로 갈수록 애절해집니다.
한없이 쾌활하고 밝은 소년이었던 위무선이 점점 흑화하고, 얼음처럼 차가웠던 남잠이 자신의 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고 위무선을 위해 세상에 맞선다는 설정 자체가 인기 요인이었습니다. 주인공이 부르는 서정적인 OST도 찰떡이었고요. 아이돌 출신의 두 주인공의 외모까지 어우러져 웹드라마로 제작됐던 진정령은 2021년 6월 기준 텐센트에서 무려 95억뷰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합니다.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드라마의 팬덤을 이끄는 사람들은 여성 시청자들입니다. 서로 다른 매력의 남자 주인공이 두 명 나오니 그 자체로 파급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성애를 법적으로는 금지하지 않지만 성소수자들을 알게 모르게 박해하는1) 중국에서 이 남자 주인공들의 브로맨스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이죠.
안될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마음, 이 마음을 지지하는 애틋하고 강력한 팬덤 때문에 한동안 브로맨스 중드는 계속 제작될 것 같습니다.
1) 중국 최대 SNS인 위챗은 2021년 7월 성소수자(LGBT)관련 계정 수십개를 한꺼번에 삭제했다. 중국에서는 동성애를 범죄 목록에서 제외했으나,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침해는 여전히 남아있다.
https://edition.cnn.com/2021/07/07/business/china-lgbt-wechat-censorship-intl-hnk/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