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 끊긴 신호음, 5장
“알겠어. 비행기 티켓 알아보고 전화할게. 또 전화 줘, 형.”
“그래, 막둥아. 조심히 오고… 곧 보자.”
그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형과 통화 중이었기에 부재중으로 남은 번호였다.
나는 곧바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네, 여보세요. 한영락 씨 되십니까?”
“네, 맞습니다.”
“경찰서에서 연락드렸습니다. 유감입니다만… 혹시 연락은 어디서 받으셨나요?”
“아버지와 함께 사시던 분께 연락받았습니다.”
“네, 확인 감사드립니다. 형사과에서 몇 가지 확인드릴 수 있으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오면 받아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시 사인 관련해서인가요?”
“정확히는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그와 관련된 절차일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다만 제 형이 전주로 내려가고 있어서
형사과에 전달 부탁 드려도 될까요?”
“네, 전달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직계 가족의 장례는 처음이었다.
뉴스나 영화에서 본 ‘부모님 장례’는 슬픔으로만 가득 차 있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응급실 확인, 검시필증, 경찰서 서류, 영안실 절차…
애도의 순간마다 서류가 끼어 있었다.
울 틈보다 먼저 찾아온 건, 서류철과 도장 찍는 소리였다.
그제야 알았다.
누군가의 죽음이란 건 슬픔으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끝없는 확인과 서명, 그리고 견디는 일의 연속이라는 걸.
‘할 수 없는 건 내려놓고, 할 수 있는 걸 하자.’
가장 먼저 항공권을 검색했다.
다행히 당일 티겟 중 남은 게 있었다.
예매를 마치고 알바를 하던 가게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아버지 부고가 있어서 서울에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사장님은 짧게 명복을 빌며 말했다.
“서울 가서 잘 보내드려. 너무 급하게 내려오지 말고, 괜찮아질 때 내려와.”
비행기 탑승 까지는 세 시간이 남았다.
제주가 이토록 멀게 느껴진 건 처음이었다.
떠나오길 잘했다고 믿었던 섬이,
이제는 도망쳐 나온 흔적처럼 나를 붙잡고 있었다.
옷을 입었다 벗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다.
붕 뜬 기분이라 도무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라리 아빠가 응급실에서 위독하다는 연락이었다면,
기도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음은 이미 끝난 일이었다.
현서가 조심스레 내 옆에 앉았다.
“오빠… 울어도 돼.”
“아냐. 지금 이 감정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눈물이 안 나.”
“우리 엄마 돌아가셨을 때, 오빠가 뭐라 했는지 기억나?”
그녀가 내 손을 꼭 쥐었다.
“참으면 병난다고 했잖아. 울어도 괜찮다고.”
그 말이 돌아왔다. 내가 했던 말이, 나를 향해.
현서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건 우리가 만난 지 한 달쯤 됐을 때였다.
그때 나는 검은 양복 한 벌이 없어
급히 백화점 세일 코너에서 가장 저렴한 양복을 사서 장례식에 갔다.
핏기 없는 얼굴로 울지도 못한 채
어머니 곁을 지키던 현서의 모습이 지금 겹쳐 보였다.
내가 그녀에게 해준 그 미숙한 위로가
지금 와서 마음을 후벼 팠다.
나는 고개를 떨군 채 조용히 말했다.
“… 미안해.”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손을 꼭 잡아주었다.
그제야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왜 울지 못하는 걸까.’
그 질문을 천장에 매단 채, 나는 천천히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