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자리에 내가 남았다.

3부 : 슬픔의 단가, 6장

by 여우비

택시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었다.


나는 아버지가 왜 그렇게까지 술에 기대었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다만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은 있다.


그 생각에서, 오래된 풍경들이

서늘한 바람을 타듯 마음속으로 스며들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할아버지도 술을 많이 드셨다.

집안 어른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어릴 때부터 느낄 수 있었다.

이 집은 술로 하루를 버티고,

술로 즐거워하고,

술로 분노를 눌러 삼키고,

술로 슬픔을 덮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스무 해 가까운 시간을 치매로 누워 지내셨고,

그 긴 시간을 큰고모가 거의 혼자 감당했다.

명절이면 큰 고모네에 친가 친척들이 모두 모였고,

상마다 술병이 놓였고,

누군가는 웃다 울고,

누군가는 울다 화를 냈다.

감정이 뒤집히는 일은

그 집에서는 오히려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아버지는 그런 환경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결국, 술을 붙잡았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더 서러운 선택이었다.


가난, 무능감, 책임의 무게,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실패감.

그 모든 것을 감당하지 못해

현실 대신 술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 선택들이

우리 가족의 마음을 얼마나 헤집어놨는지,

그건 어떤 말로도 용서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버지의 중독은

누군가에게서 물려받고,

누군가에게 남기고,

또 누군가는 끊어야 하는

오래된 사슬의 한 조각이었다.


명절이면, 우리는 늘 같은 길을 걸었다.

우리 집은 차가 없었기에,

두 차례 호선을 갈아타고

세 시간을 흔들려 인천 만수동으로 갔다.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주방으로 향했고,

큰고모와 함께 음식을 만들었다.

그 사이 친가 어른들은

나와 형에게 늘 같은 말을 건넸다.


“너희, 아버지한테 잘해라.

마음이 약한 사람이야.”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엄마에게 “제수씨, 미안해요.”라는 말이 흘렀다.


잘못은 분명 아버지에게 있는데,

인내를 요구받는 건 엄마였고

이해를 요구받는 건 우리였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해도

이건 너무했다.

굽다 못해 꺾이는 기분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말들 속에서도

멋쩍게 웃을 뿐,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저 오랜만에 만난 형제들과

반가운 표정을 나눌 뿐이었다.


밥상이 차려지면

나와 형은 조용히 나와 상을 도왔다.


“태평이 한잔하냐?”

“형님, 그만두세요. 이이 술 먹이지 마셔요.”


둘째 큰아버지는 술을 권했고,

엄마는 말렸고,

다른 어른들은 모른 척했다.

알고도 피하는 건지,

피하면서도 알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공기였다.


하지만 결국 술은 올라왔다.

“오늘은 진짜 조금만 먹어.

저녁에 외가 가야 하잖아.”

엄마는 매번 말렸지만

아버지가 ‘조금만’ 마시는 날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둘째 큰아버지는 본인도 취해 있으면서

이미 비틀거리던 아버지를 데리고 나가

술을 더 부었다.


명절마다 술은

아버지를 어디론가 데려갔다.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곳으로.


그날도 우리는 큰고모집 대신

철용이 형네에서 잠을 청했고,

다음날 아침,

아직 술이 덜 깬 아버지를 부축해

그제야 외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명절의 결말은

늘 그렇게 흘렀었다.

엄마의 마음만

갈수록 닳아갈 뿐이었다.


그 오래된 풍경들이

장례식장 복도처럼 길게 이어지다

현실의 빈소 앞에서

조용히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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