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자리에 내가 남았다.

3부 : 슬픔의 단가, 8장

by 여우비

“태평이 있어?”

둘째 큰아버지가 들어왔다.

일상복 그대로였고, 눈빛이 불안정했다.

이미 술을 마신 사람의 걸음이었다.


“오셨어요?”

형이 인사하자

둘째 큰 아버지는 엄마를 거의 밀치듯 스쳐지나

영정 앞에 비틀거리듯 섰다.


“태평아, 형 왔다!

거기서 뭐 하냐? 왜 네가 거기 있어, 왜!”


빈소의 공기를 찢는 고함이었다.

그에게 슬픔은 조용한 마음이 아니라

터져 나오는 분노의 형태였다.


“영민이, 영락이 너희 이리 와봐.”

바로 옆에 있는데도 손짓하며 불렀다.


“너희 아버지 뭐 하다가 죽은 거냐?”


예의라곤 없었다.

장례식에서 절대 묻지 말아야 할 질문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형이 담담히 아버지의 병명을 말했다.


그러자 둘째 큰아버지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참… 기가 막히네.

태평이 아팠을 때

한 번이라도 찾아갔냐?”


“아뇨...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게 자식이냐?

불쌍하지도 않아?

이런 게 아들이라고 평생을 키웠더니… 참…”


속이 뒤틀리고, 어딘가 뜨거워졌다.

참기 힘들었다.

형도 뒷짐 진 손을 꽉 쥐고 있었다.

이를 맞부딪히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엄마가 나섰다.

“형님, 그만하세요.

애들도 힘들 텐데…

하실 말씀은 장례 끝나고 하셔도 되잖아요.”


“제수씨… 참…

아… 아닙니다.”


둘째 큰아버지는

입술만 달싹였다.

사과도 아니고, 반성도 아니었다.

그저 술 취한 사람이 갑자기

하던 말을 접는 태도.


형은 그걸 보고

긴 숨을 내뱉었다.

“영락아, 형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 빈소 부탁해.”


나는 형의 얼굴을 보고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때 만약 둘째 큰아버지가 형을 붙잡았다면

무언가 터졌을 것이다.


형이 자리를 벗어나자

둘재 큰아버지의 흔들리는 그림자가

빈소 벽에 길게 늘어졌다.

그 그림자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술로 우리 아빠를 무너뜨렸던적도 있던 사람이,

술기운으로 우리를 탓한다.'


그 산뜻한 이중성이

참 씁쓸하고, 어이가 없었다.


향이 천천히 타들어 가는 모습이

내 속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밤이 되자,

형의 친구들과 내 지인들이 찾아왔다.

현서의 친구들은 나보다 더 울상이었고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형은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며

얼굴이 조금씩 풀렸다.

그러다 울고, 웃고,

다시 울었다.


그때 큰고모가 들어왔다.

요양보호사 일을 하고 계시어

마스크를 쓴 채 조심스레 걸어왔다.


둘째 큰아버지는 술에 취해

고모의 마스크 끈을 잡아당겼다.


“내가 누나를 못 알아봤네…

못 알아봤어…”


큰고모는 손을 뿌리치며 단호하게 말했다.

“왜 이래, 태영아.

이제 술 그만 먹어.”


둘째 큰아버지는 다시 고모를 끌어안고 울었다.

“흑… 누나… 태평이 불쌍해서 어떡해…

내가 미안해서 어떡해…”


“네 마음은 알겠지만,

너 때문에 누나 아직 태평이한테 인사도 못 했다.

진정하고 저리 가서 앉아 있어.”


큰고모는 둘째 큰아버지를 진정시킨 뒤

아버지에게 술잔을 올렸다.


“막둥아, 좋은 데로 가라.

거기서는 외롭지 말고, 아프지도 말고…

네 맘대로 살아라.”


그 말은

기도 같고, 유언 같았다.


큰고모는 엄마에게 목례를 한 뒤,

우리를 차례로 안아 주고서는

“너희도 몸 상하지 말고 잘 버텨라.”

큰고모는 이렇게 말을 남기고

요양원에 돌보고 있는 어르신들 곁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며 서둘러 나가셨다.


둘째 큰아버지는 의자에 기대

그대로 잠들었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조문객은 계속 들어왔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가 떠난 자리에 내가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