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부 : 슬픔의 단가, 9장
내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왔다.
덕분에 빈소는 하루 종일 시끄럽게 흔들렸다.
복도는 근조 화환으로 가득했고,
사람들 사이로 향 냄새가 길게 번졌다.
엄마가 중심에서 움직였다.
형수와 현서, 숙미 누나는
접시를 나르고 국을 뜨고 빈 그릇을 치우며
숨 돌릴 틈 없이 오갔다.
테이블이 꽉 찼는데도 들어오려는 사람들이 계속 있었다.
음식이 모자랄 것 같아
엄마는 급히 사무실로 내려가
추가 주문을 넣었다.
직원들이 퇴근하기 전이라
겨우 맞출 수 있었다.
자정이 지나자
우리 가족과 형 친구들, 작은 고모와 고모부를 제외한
친척들은 내일 다시 오겠다며 빈소를 나섰다.
엄마는 녹초가 된 형수와 현서에게
“아들들 있을 테니 잠깐 쉬라”고 하며
안쪽 방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두 사람은 남겠다고 했지만,
“정말 미안하고 고맙지만, 오늘은 첫날이라
내일이랑 모레가 더 힘들 거야…
그러니 오늘이라도 편하게 잤으면 좋겠네.”
엄마가 한 번 더 말하자
형수와 현서는 형과 나에게
무슨 일 있으면 깨우라고 하고
마지못해 방으로 들어갔다.
형은 남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아버지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울다 웃다가 다시 울었다.
나는 향을 갈아 태우고
멍하니 아버지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다가와
내 어깨를 조심스럽게 주물렀다.
“아들, 괜찮아? 어제 잠도 못 잤잖아.”
“엄마야말로 쉬세요.
오늘 하루 종일 움직이셨잖아요.”
“아니야, 엄마는 괜찮아.
숙미도 있고, 네 형수도 있고, 현서도 있잖아.
엄마는 별로 한 게 없어.”
엄마의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이 떠올랐다.
“거짓말… 나 엄마 땀 닦으시는 거 다 봤어요.”
엄마는 잠시 웃었다.
짧게, 금방 사라지는 웃음이었다.
“좀 더워서 그랬어.
정말 괜찮아.
근데… 아들은 진짜 괜찮아?”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목 안쪽이 아주 천천히 뜨거워졌다.
작은 고모가 오셨을 때부터였을까,
울음이 한 번씩 치고 올라왔지만
입술을 꾹 다물어 눌러뒀다.
아버지 쪽으로 눈길이 자꾸 가
머뭇거리게 되었다.
“조금… 안 좋긴 해요.
근데 엄마도 형도 다 비슷하니까요.”
“아들…”
엄마는 한숨인지, 숨인지 모를 숨을 길게 내쉬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울어도 돼.
엄마나 형 걱정돼서 참는 거
엄마 다 알아.”
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눈 끝이 살짝 따끔했다.
하지만 울지 않았다.
아직은.
“참았다가 한꺼번에 터지면
그게 더 아파.”
엄마의 손이 잠시 멈췄다.
“아들… 너무 오래 참지 마. 괜찮아.”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말이 길어지면
목소리가 떨릴 것 같았다.
엄마는 그 표정을 알아챈 듯
내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빈소는 더 조용해졌고,
멀리서 형의 웃음인지 울음인지 모를 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엄마… 그럼 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랑 술 한 잔만 할게요.”
“그래, 아들.
근데 많이 마시지는 말고.
속 버리니까 뭐라도 먹으면서 마셔.”
“알겠어요.”
말을 마치고
나는 형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형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아버지 얘기를 이어가고 있었다.
“형…”
목소리가 스스로도 낯설 만큼 낮게 흘렀다.
형과 친구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나… 아버지랑 한 잔만 할게.”
그 말을 뱉는 순간
테이블 위의 소리들이 하나씩 멈췄다.
벌컥 웃던 형친구들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잔을 내려놓는 소리,
냅킨을 접는 소리까지
모두 조용히 가라앉았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다들 무언가를 알아챈 듯
잠깐 숨을 멈추는 공기가 스쳤다.
형은 손에 쥔 잔을 천천히 내려놓으며
나를 바라봤다.
놀람과 걱정, 말하지 못한 감정이
눈동자에 얇게 비쳤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고
테이블 한쪽에 놓여 있던
소주 두 병과 잔을 들었다.
손끝이 아주 약하게 떨렸다.
형 친구들 사이로
작은 정적이 길게 흘렀다.
아무도 그 정적을 깨지 않았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영정 쪽으로 걸어갔다.
향 냄새가 가까워질수록
숨이 조금씩 묵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