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떠난 자리에 내가 남았다.

3부 : 슬픔의 단가, 10장

by 여우비

영정 사진 앞에 조용히 앉았다.

아버지 자리의 퇴주잔에는 술이 가득했다.


나는 그 술을 버리고

새 병의 뚜껑을 열었다.

아버지 잔에 먼저 따르고,

다음에 내 잔을 채웠다.


말없이 한 잔.

얼굴을 올려다보며 한 잔.

목소리를 떠올리며 한 잔.

아버지 냄새를 기억하려 애쓰며 또 한 잔.


어느새 한 병이 비어 있었다.

엄마와의 약속을 어기고 안주도 없이 들이켜서인지,

술이 유난히 썼다.


“아빠…”

입술이 먼저 떨렸다.

“내가 그날… 욕한 거… 미안해…

아빠 미워서… 몇 년 동안 찾아가지 않은 것도…

다… 미안해…”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더니

곧 방향을 잃고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손등으로 닦아내도

금세 다시 번졌다.


나는 두 번째 소주 뚜껑을 열었다.


아들이 이렇게 술 마시며 울고 있는데도

아버지 얼굴은 변함이 없었다.

그게 서운했다.

그 서운함에 한 잔.


아버지 죽음에 제일 먼저

돈 걱정부터 했던 나를 떠올렸다.

아버지도 그걸 알고 서운했을까.

그 생각에 한 잔.


언젠가 다시 뭉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

막연하게만 믿었던 기대가

두꺼운 종이처럼 찢겨 나갔다.

그 아쉬움에 또 한 잔.


나에게 효도할 기회를 주지 않고 떠난 아버지가

문득 원망스러워

또 한 잔.


두 번째 병도 금방 바닥이 났다.

“흑… 아빠… 있잖아…”

말끝이 자꾸 따로 놀았다.

“나… 아직 아빠 용서 안 했어.

아빠 행동들…

이해는 할 수 있는 나이가 됐는데…

근데… 아직은 용서가 안 돼…”


숨이 목 앞에서 턱 막혔다.

소리가 울음과 뒤섞여 흘러나왔다.


“아빠도… 이런 나… 이해는 해줘…

그리고… 나… 아빠 입관식… 안 들어갈 거야…

그것도… 이해 좀 해줘… 용서는 바라지 않을게.”


아버지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입관식에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함께 살 때도,

떨어져 살 때도,

행복할 때도,

슬펐을 때도

나는 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을

초췌한 아버지의 얼굴을 내 눈에 담아두면

일상까지 흔들릴 것 같았다.

그만큼 두렵고, 감당이 안 될 것 같았다.


“아빠… 흑… 아빠 아들이… 입관식 안 들어간다고…”


말보다 울음이 먼저 터졌다.

목이 뜯기는 것처럼 울음이 쏟아졌다.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고래고래 소리를 내며 울었다.


형과 형 친구들이

하던 이야기를 모두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도 느껴졌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내 뒤에 앉아 계시던 작은 고모는

나와 함께 울고 계셨다.


“아들… 그만 울어…”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울어도 된다고 먼저 말했던 사람이

정작 아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자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엄마는 내 옆으로 와

자신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내 눈물을 닦아주다가

결국 나를 끌어안았다.


내 울음은 의도와 상관없이

삽시간에 파도처럼 번졌고,

아버지의 빈소에 있던 모두가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놀라서 잠에서 깬 현서와 형수도

방문을 조심스레 열고

걱정 어린 얼굴로 우리를 지켜봤다.


나는 엄마 품에 얼굴을 묻고

그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 울음이 지나가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빈소에 남은 건

향 냄새와,

가라앉지 않는 마음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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