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9
“할 만 해?”
“처음 반년은 욕 엄청 먹었지. “
“할만한 거지? “
“욕해도 돈 주잖아. “
2년 차 목수의 작업현장에 발을 디뎠을 때 처음 물었다. 천장과 바닥 심지어 공기마저 날 것의 공간이었다.
매일 아침 종이 신문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보수나 진보란 성향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적히는 내용이 있다. 노동자. 이들에 대한 기사와 칼럼은 언제나 등장한다. 일면, 종합, 기획, 세계, 경제, 법, 정치 분야를 가리지 않기에 아주 쉽게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신문사나 기자에 따라 그들을 대하는 태도는 천차만별이지만, 어쨌든 하루를 정리하는 게 신문이고 뉴스라면 우리는 항상 그들의 얼굴을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잦고 쉬운 만남에도 꽤 친해지기란 어려웠다. 어쩌면 친해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우리 숱하게 듣고 뱉는 말이 있지 않은가,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더울 때 덥고 추울 때 춥게 일하는 거야.
관심이 없으면 사라지는 게 자연의 이치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분명 관심을 사랑만큼이나 받는 그들을 막상 잘 알고 있는 경우는 드물다. 적어도 나는 잘 모르고 살았다. 단지 몸이 힘든 일, 공부를 못하면 기술이라도 배워야 한다의 결과, 가방 끈이 짧아 법적 권리 하나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는 삶으로 명명된, 그래서 의문이었다. 왜 친해질 수 없을까.
초등학교 1학년부터 함께 한 가장 오래된 친구가 목수가 됐다. 모든 것의 시작을 심지어 첫 해외여행까지 그와 같이 걸었다. 어른이 된 이후론 가끔 봤지만 가장 좋고 가장 슬픈 일이 있을 땐 누구보다 빠르게 나누는 사이였다.
너무 잘 알아서 목수가 된 그가 낯설었다. 어릴 때부터 학교 운동장에선 그만 보였다. 여기 있을 애가 아니다 싶을 정도로 축구를 잘했다. 아니나 다를까 엘리트 축구팀에서 그를 스카우트했다. 엘리트 리그에서도 그는 득점왕을 하는 유망주였다.
어느 날 그는 갑자기 축구화를 모두 버렸다. 그리곤 대학을 갔고, 교도관 시험 준비를 하다 돌연 목수가 됐다.
얼마 전 그가 내 방에서 이틀 머물렀다. 여기 근처 상가 1층을 작업한다며 자고 갔다. 첫날 작업을 마치고 그는 고기를 먹자며 소갈비를 사줬다.
이 친구라 그런지 그의 일에 대해 조심성 없이 물었다. 근무 시간, 형태, 인원, 일당 등 여러 가지를 캐묻다 결국 그의 작업현장을 가자고 꼬셨다.
가끔 술 약속이 있을 때 가는 먹자골목의 상가 중 하나였다. 간판마저 취기가 올라 반짝이는 익숙한 거리에 나무판자로 시공 중인 1층 상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해 보면, 지나다니며 수없이 봤던 공사 내지 인테리어 현장 안을 본 적은 없었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의 옷장 문을 열고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어둡고 퀴퀴한 분위기는 이웃집 토토로의 이삿날 같았다. 먼지들이 암흑 속에서 중구난방 움직이는 무질서의 기운이 느껴졌다.
작은 불을 켜니,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보고 갔던 공간들은 전부 이런 상태에서 시작하는 건가, 이 막막한 태초에서 어떻게 저런 아파트 단지와 상가들이 생겼을까,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 거지, 경외감이 들었다.
이상하게 또 신이 났다. 그가 대단해 보여서 흥분됐다. 벽이랑 천장이랑 이 의자도? 다 네가 하는 거? 돌아다니며 감독관처럼 물었다.
그는 오늘 자기가 세운 벽이라며 원래 없었던 거다, 그래서 이건 지지할 때가 없어서 두 장을 합한 판자다, 한 장짜리는 이게 한 장이다, 가로 세로가 몇이고, 이번엔 에어컨이 먼저 설치돼서 천장 작업이 어렵다 설명했다. 이후로도 입에 모터 단 듯 얘기했지만 전문용어라 적당히 이해된 척을 했다.
축구가 좋아서 공을 찰 때 이후로 처음 본 그의 신남이 너무 좋았다.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의 사소한 일까지 자랑하 듯한 그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타카란 도구가 참 매력적이었다. 그는 타카면 다 만들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게 마음을 꿀렁였다. 뭔가 내가 한 건 아니지만, 시공이 끝난 후 완성될 양꼬치 집에서 사람들이 밥을 먹는 모습을 상상하니 왠지 무언가의 시작에 함께한 기분이 들었다.
“다 하고 나면 신기하겠다.”
“그래서 재밌지. 처음엔 이거보다도 더 날 거야. 진짜 아무것도 없는데, 다 하고 보면 이걸 내가 했다고? 하면서 뿌듯하거든? 그때 진짜 좋아. “
“근데 이것도 손재주가 좀 있어야 할 수 있겠다.”
“전혀. 하다 보면 돼.”
“에이, 나는 아무리 봐도 뭐부터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가위질도 잘 못하는 내가 봤을 땐 판자 자르는 것도 어려워 보인다.”
“그래서 처음 반년 동안은 반장님한테 욕 더럽게 먹었다.”
욕먹은 게 뭐가 그리 좋은지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에게 욕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다. 그가 축구를 하던 시절, 경기를 잘하면 선배들에게 욕먹고 맞았다. 그래서 다음 경기에선 일부러 못하면 코치와 감독에게 욕을 먹고 맞았다. 더 이상 가장 좋아하는 것을 즐길 수 없게 된 게 그가 축구를 그만둔 이유였으니까.
“아니, 요즘 사람 없어서 젊은 사람 오면 좋다고 우쭈쭈 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야, 그래도 여긴 욕을 해도 뭘 알려주고 돈도 주잖아. 안 그래? 축구는 어? 내 돈 내고 욕만 먹는데.”
“그렇긴 하네.”
“그래도 그놈의 축구 덕분에 잘 풀렸지.”
그는 교도관 시험을 준비하다 문득 자기는 그래도 몸을 쓰는 일이 재밌다며 바로 목공을 배우며 일하고 싶다고 글을 올렸었다.
“경력직만 뽑는다며. 뭐라고 썼는데?”
“축구했던 놈이라 웬만한 욕에는 꿈쩍도 안 하니까 편하게 막 알려줘도 다 배울 수 있다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의 엄지 손가락을 보니 처음 욕을 먹는 게 맞다는 생각을 했다. 깊은 흉터가 있었다. 일하던 중 판자를 자르다 장비가 엄지 손가락을 찢었고, 뼈가 보일 정도로 아작 나며 신경 봉합을 한 흔적이었다.
“그런데도 하고 싶냐 계속.”
“돈 벌어야지. 그리고 재밌어. 이제 좀 알고 일하니까 재밌다. 사람들도 좋고.”
“안 힘드냐? “
“허리 존나 아프지. 그래도 내 능력에 따라 돈 받고, 일한 만큼 벌고, 쉬고 싶을 땐 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이곳저곳 보는 게 좋다.”
“어머니가 뭐라 안 하셔?”
“아유, 엄마 생일 때 현금 주면 다 오케이야. 그리고 손 다친 다음 날이 호주로 엄마 여행 가던 날이라 일부러 말 안 했어. 봉합되고 봤으니까 괜찮지.”
막노동이 다 그렇지 하며, 저녁이 되면 하늘이 어두워지는 게 이상한 일이냐는 식으로 아무렇지 않게 그는 걸었다.
그는 집에 오자마자 코를 골았다. 바닥에 자고 있는 그를 침대에서 보는데 왜 이렇게 부끄러운지 도통 잠이 오질 않았다. 신문에서 보던 그들을 실제로 만나면 안쓰러울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질투 나는 동시에 부끄러웠다. 그의 코골이는 아름다웠다. 무엇이 좋아 무엇 때문에 열심히 사는지 알고 사는 소리였다.
내 것을 위해 함부로 남을 모욕하고 증오하며, 오직 결과와 돈만을 위해 살아가며, 세상이 정한 선 아래로 뒤쳐지기 싫어 경쟁하는 인위적인 삐그덕거림이 아니라 자연의 공기였다.
공과금 아낀다고 틀지도 않는 보일러를 높은 온도로 몰래 틀었다. 그의 허리가 따뜻했으면 싶었다.
오전 7시, 그렇게 늦지 않은 시간에 평소처럼 일어났다. 오전 6시에 잘 묶고 갑니다~ 카톡이 남아 있었고, 그가 누웠던 자리의 이불들은 정갈하게 접혀 있었다.
그냥, 이불은 좀 아무렇게나 해 놓고 가지.
똑같이 신문을 읽었다. 아니 조금 친근하게 그들을 읽는다. 그들에겐 감사보단 친한 척처럼 보일지 몰라도 나는 감사하다. 타카를 잡은 사람이 없었다면 이 집도 없었을 테니까. 그래서 신문은 계속 읽는다. 이상하게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