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8
버스를 탈지 지하철을 탈지, 계단을 두 칸씩 내려갈지 한 칸씩 내려갈지, 밥을 해서 먹을지 배달을 시킬지, 전화를 할지 말지, 유튜브를 보다 잘지 옆에 읽다만 책을 열어볼지 하다 못해 매일 나와 거리를 잰다.
낙엽을 밟아볼까 피해 갈까 고민하는데, 어떤 이유라기보다, 가을과 특이한 계약이나 약속을 한 건 아니지만, 순간 왼발과 오른발이 자기 쪽으로 몸을 이끄는데, 지금 그깟 낙엽에도 결정을 보류하는 모습이 안타까워 문득 그때가 떠올랐다.
단풍으로 붉어진 거리처럼 타오르는 화마가 검은 연기를 뿜어대는데, 어떤 이유를 잡아서라도 거리를 재야만 한다는 생각이 가득한데, 양옆으로 그들은 빠르게 나를 지나쳐 불을 향했다. 방화복을 입으면 뜨겁지 않냐는 물음에 대꾸할 힘으로 공기통을 등에 지고, 관창이 연결된 호스를 한쪽 옆구리에 끼고 손엔 빠루 같은 장비를 들더니 거침없이 진격했다.
그럼 많은 사람들은, 그게 직업이잖아 내지는 훈련으로 다져진 자신과 동료를 믿기에 가능한 일, 이라 가능한 행동이 아니냐고 질문을 하며, 물론 숭고한 일임에는 태클 걸지 않은 채 영웅의 모습을 응원하기 바쁘겠지만, 그들의 안녕을 바라는 게 그들에게 견고한 의지를 선물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본 그들의 눈빛에는 확신 따위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이 그런 나약해 보이는 눈빛을 숨겨서, 사람들이 알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들의 숨은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똑같이 가빴고, 떨리는 음성은 언제나 호흡기를 뚫고 나왔다.
화염 속으로 들어갈지 말지,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순간부터, 내가 놓고 온 가족은 잘 자고 있는지 또 오늘 하루도 잘 지내고 있는지 떠올리며, 방금 막 물을 부은 컵라면이 아깝다며 가벼운 욕도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방화복과 공기통에 함께 넣어 자신의 몸과 묶었다. 고민을 안 한 적은 없었다. 고민을 못 할만한 시간은 더욱이 아니었기에, 왜냐하면 아무리 사이렌을 틀고 차로 달려도 그 정도의 시간은 온갖 거리를 재기 딱 좋은 찰나였으니, 다른 선택으로 도망가기엔 너무나 충분했다.
비단 화재 때만 그런 것 아닌가 의문을 가질까 봐 덧붙이자면, 구조와 구급 출동의 출동지령서는 똑같은 프린터에서 똑같은 양식으로 뽑히고, 전혀 예상할 수 없는 타이밍에 찾아오는 것도 동일하니, 참 벨소리의 종류만 다를 뿐이었으니, 괜한 의문의 문은 닫기를 바란다.
모두가 맘껏 떠들어대듯, 소방관은 우리의 영웅인 동시에 한 가족의 부모이며, 자식이니, 그들의 희생과 노력을 경건한 마음으로 존경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만, 과연 그게 그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진정한 가치일까 내가 질문을 던지게 된다.
가끔 그들도 사람이기에 이런저런 눈살 찌푸릴 만한 언행을 보이기도 했다. 또 중대한 실수나 악한 잘못을 하는 이도 간간이 있겠지만, 물론 그런 자들은 소수이니 다수로 치부하여 비난하지 말자는 캠페인은 아니고, 우리는 보기 힘든 그들의 눈빛을 한 번이라도 보면 그것 하나만큼은 매년 돌아오는 단풍처럼 잊힐 수 없는 붉은 마음이란 걸 알게 됨이 소중하고 중요하다 할 것이다.
적어도 출동벨이 울리면 가족과 전화를 하던 중에도 출동이란 말없이 곧장 끊고 각자의 장비가 있는 차로 달려가 차고를 나서기 전 이미 지령서의 그곳에 영혼부터 도착한 그들의 눈빛은 진실했다. 여과될 불순물이 하나도 없는 순수한 의지에는, 내가 왜 지금 이렇게 여길 가고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법한, 그 작은 도망의 틈도 허락되지 않았다.
모두가 알다시피 공포는 막상 직면해서 느껴진다기보다 공포를 향해 다가가는 시간에서 타오르는 두려움으로 인해 두터운 암흑이 되는데, 처음부터 그들은 공포와 나란히 서 있어서인지, 크게 옆을 쳐다보지 않고 거리 재기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비록 나는 군복무로 소방서에 있으며 출동한, 어쨌든 끝이 있는 시간이란 핑계로 두려움에서 벗어날 희망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런 선택이 불가한 자들인데, 나보다 잃을 게 많아 보이는 자들이 더 많았지만, 모두가 간단한 자신과의 싸움과 경쟁을 포기했다. 포기에 따른 후회가 그들의 눈꺼풀에 살짝 걸쳐 있었지만, 그 눈빛은 현장에서 다시 소방서로 돌아올 때나 간혹 볼 수 있을 뿐이었다.
하루는 심정지로 신고된 노인에게 사력을 다해 달려갔으나, 이미 망자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그녀의 심장을 되돌리기엔 나의 심장 압박은 약하디 약했으니, 처음으로 내 손에서 누군가 떠나간 날이라 그런지, 돌아오는 구급차에서 약간의 웃음소리가 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돌아와 곧장 경력이 십 년 정도 되는 구급대원에게 사람이 죽었는데 뭐가 그렇게 좋을 수 있냐고 따져 물었더니, 돌아온 건 은은한 새로운 미소였다. 아직도 그 말을 잊을 수 없다. '다음 사람을 위한 마음을 잡는 과정이야. 내가 아무리 오래됐어도, 처음 보는 얼굴이라도, 언제나 누군가의 죽음 앞에선 슬퍼진다. 지금 나도 그렇고.'
그들도 똑같이 지금 쯤이면 평범한 옷을 입고, 평범한 낙엽을 바라보며, 평범한 걸음으로, 이걸 밟아볼까 그냥 지나칠까 고민하기를 바라지만, 조금은 자신과의 거리를 재고자 노력해도 되지만, 쉽게 그러진 못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확신이 없는 미래에 목숨을 거는 것에 아무런 고민이 없는 눈빛을 보이는 그들에게 변명 같은 나와의 경쟁과 합리화가 부끄럽다.
어떠한 이유에 어떠한 것도 따지지 않는 순간을 적어도 살면서 한 번이라도 진실되게 대한 적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당장 내일이면 또 나는 나와의 경쟁에서 이런저런 핑계를 열거할 것 같아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