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7
매트리스를 그만 보내줬다.
학생 때부터 누웠으니 거진 15년을 썼다. 하루하루 꺼져가는 걸 느끼며 꾸던 꿈들을 유일하게 알았을 텐데, 이룬 것도 못 이룬 것도 숱하게 같이 뒹굴렀다.
버리기는 쉬웠다. 오 천 원을 입금하고 밖에 내놓으니 다음날 사라졌다. 왠지 모르게 혼자 우두커니 쓰레기가 되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속상했다.
처음 내 방이 생겼던 날부터 함께였다. 계절의 바람을 가장 먼저 느꼈다. 커버와 이불이 바뀔 때마다 녀석의 속살을 봤지만, 유일하게 자극적이지 않은 살결이었다. 혹여나 녀석의 새 옷이 더러워질까 조심조심 만지기만 했다.
작년부터 자고 일어나면 침대 옆은 노란 가루로 부스스거렸다. 카레 가루보단 가볍고 고왔지만 반갑지는 않았다.
매트리스가 오래되면서 떨어지는 송진가루라는데 청소기로 쓸어버리면 그만이었다. 딱 그 정도 불편함으로 신경 쓰였다.
눕기 전에 한 번 자고 일어나서 한 번 하던 청소도 반복되니 왜 이러고 사나 싶어졌다. 어느새 제일 편했던 매트리스가 지독한 스트레스가 됐다.
미움받을 이유 없이 일 년을 증오의 대상으로 살았다. 밖에서 이런저런 일들로 시간을 보내고 돌아와 작은 조명 하나 켜고 녀석 위에 앉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푹 꺼져가는 그의 뱃살에 한숨을 더했다.
왜 이렇게 잘 풀리는 게 없고 뭐 하나 잘난 것도 없는지, 또 양보하고 착하게 산다고 사는 게 어쩜 이토록 어리석고 궁상맞아 보이는지, 결국 맨날 나는 왜 밀리고 패자가 되든 것 같은지 하다 보면 그 모든 책임을 녀석에게 전가했다.
꼭 이 낡고 낡아 구실도 못하는 매트리스 때문인 듯했다. 그것마저 내 탓인가 싶더라.
매트리스는 죄가 없다. 어쩌면 일 년 전에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 죽으면 화장되어 가루로 세상을 떠나는 인간처럼 말이다.
먼저 죽기 위해 싸우는 존재는 없겠지만 죽을 때가 돼서 마지막을 알리는 신호는 제법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티 내지 않으려 애써도 티가 나고 가장 가까운 존재부터 변화를 알게 되나 보다, 하지만, 그 신호는 보통 그들의 삶에 방해가 되는 듯한데 누구의 탓인지는 모르겠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과 모르게 하려 모르는 척하는 것의 경쟁에서 매트리스는 한 번에 모든 가루를 뱉어내지 않았나, 뭔진 몰라도 중력이 강하게 나와 녀석을 묶는 무거움은 뭐 때문일까.
그래서일까. 보내고 나니 보내는 게 쉽지가 않다. 녀석이 이 사람 저 사람 이 인형 저 인형에게 모두 자리를 내어줄 때 무슨 기분이었을까, 스스로 오래 버티기 위해 기를 쓴 마음이 마지막까지 드러나지 않는 녀석이 부럽기도 하며 안쓰러운데, 가장 큰 건 미안한 여운이다.
떠나보내는 모든 것에 대한 마음이 매트리스처럼 무거웠으면 좋겠다. 아무도 모르게 나만 알아서, 나를 만지고 스친 모든 향과 눈물 그리고 땀이 모이면 이렇게 묵직해진다는 것을 묵묵히 기억하고 싶다.
어차피 가루가 되면 치열하게 지지고 볶고 싸우려 해도 짜증 한숨에 날아갈 뿐이니까.
공교롭게 매트리스가 트럭에 실려가는데 사이렌이 울린다. 누군가를 잠시 추모한다면, 비록 그 마음 영원히 온전하게 알 수 없겠지만,
갑자기 소나기가 온 날 돌멩이 하나에 마음을 쓰던 시인의 말이 생각나 적는다면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라
자 그러면 내내 어여쁘소서
-이상, 이런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