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5
우산은 얄밉다?
아니지. 하늘이 얄궂은 거지.
집에 우산이 또 하나 쌓였다. 모두 같은 깔에 동일한 크기다. 펼치면 보이는 얼굴의 한쪽 뺨에 찍힌 로고만 다르다. 그래봤자 GS 아니면 CU지만.
보면서 꼭 한 마디 한다. 이럴 거면 그냥 튼튼하고 좋은 우산 하나 살 걸.
보통 많이 갖고 있으면 더 이상 원하지 않거나 필요하지 않다. 아니면 누구나 가질 수 있어서 크게 욕심부리지 않는다.
이상하게 우산은 가져도 허전하고 불안하다. 대체로 반드시 필요할 땐 우두커니 집에 있으니 말이다. 나는 밖에 있는데.
여기서 다시 특이한 모습을 본다. 지금은 비가 오고 나는 우산을 간절히 원한다. 지나다니는 사람들 모두가 갖고 있다. 아무도 내 몫을 뺏어가지 않으니 편의점에 들어가서 사면 된다.
그런데 고민한다. 사기엔 돈이 아깝고 비를 맞기엔 궁상맞아 보인다. 되려 감기라도 들면 약값이 더 많이 든다. 생각해 보면 평소엔 절대 갖고 싶지도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것에는 쉽게 지갑을 열면서 우산은 왜 이렇게 아까운지. 결국 비를 맞았다.
요즘 비가 가을을 시기한다. 시기 늦은 장마에 괜히 우산과 자존심 싸움을 한다. 신발장에 갇혀 있기 싫지? 그럼 네가 먼저 꺼내달라고 발버둥 쳐 봐. 내가 데리고 나가줄지도 모르지. 그럼 넌 그러지. 굳이? 그냥 필요하면 필요하다 하면 되지. 그래 넌 참 네 얼굴처럼 투명하고 솔직해서 좋겠다. 확 김에 꼴 보기 싫은 네 얼굴을 돌돌 말아 버린다. 마지막으로 똑딱이까지 잠그면 고요하니 이것들 중에 특별히 널 들어줄게.
보통 내가 이기지만 최근에는 졌다. 우산을 들고나간 때면 갑자기 비가 내렸다. 누가 분무기로 뿌리는 정도였지만 돈이 아까워 우산을 폈다.
지하철 역에서 방까지 1km, 일이 주는 이미지 때문에 짧아 보이지만 막상 걸으면 씩씩거릴만한 거리다. 특히 역 출구 앞에 있는 부동산 유리창에 붙어있는 종이의 역세권이란 글자만 유난히 커 보인다. 매번. 골목은 또 왜 이렇게 좁은지, 이 별 볼일 없는 곳에 차와 사람은 왜 그렇게 많은지 우산을 쓰면 항상 떠오르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마주 보고 오고 가는 차를 피해 가장자리로 걷는다. 홀몸일 땐 모두가 슬림해서 알아서들 잘 피해 간다. 설령 부딪혀도 사람 좋은 웃음으로 넘긴다.
비 오는 날은 얘기가 달라진다. 아직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벌써 얼굴들엔 짜증이 한가득이다. 어차피 씻을 건데 뭐 그렇게 예민할까 싶지만 나도 먹구름처럼 어둡다.
집까지 이 골목을 차분히 지나는 게 목표다. 성공한 적은 없다. 무조건 우산과 우산이 한 번은 힘을 겨룬다.
참 우산들은 영악하다. 싸운 건 지들인데 화나는 건 그 아래 얼굴들이다. 막상 우산들은 매우 평온하다. 왜 그런 적 있지, 처음에 싸우던 둘을 말리던 놈들끼리 더 큰 싸움을 하는 경우와 비슷하다.
아휴 시발. 하고 뒤를 돌아보면 마지막으로 이상한 점을 보게 된다. 우산의 키와 몸무게는 대체로 거기서 거기란 점. 하지만 우산을 들고 있는 뒷모습의 크기는 전부 제각각이라는 거.
그럼 대체 우산끼리는 왜 부딪히는 걸까. 그럴 수가 없는데.
그리고 또 하나.
방금 뱉은 욕이 우산 때문인지 비 때문인지 그것도 헷갈린다. 대체 우린 무엇 때문에 싸우는 건지.
적어도 내가 누구랑 싸우는지는 알고 골목을 경쟁해야 하진 않나. 아니면 애초에 상대방은 존재하지 않았던 걸까.
당분간은 건조한 장마가 이어지려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