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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인 생일

초청6

by 다날


생일이 있는 주는 왠지 쓸쓸하다. 외동이라 배 부른 소리 한다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외동이라는 이유로 매일 받는 수많은 사랑이 고프지 않은 적은 없었다. 나름 태어난 날은 특별하니까.

그래서 좋았다. 하루만큼은 이 사람 저 사람 눈치 보지 않을 수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은 외동에 대한 깊은 오해를 가진다. 이를테면 밥상에서 조차 경쟁하지 않고 살아온 애가 주변 시선 따위를 의식이나 하겠냐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보고 듣는 게 많아지고 만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왜 어릴 적 시도 때도 없이 집 밖으로 나갔는지 고민하게 됐다.

편이 없었다. 형제는 집 안에 있지만 친구는 문을 나서야 존재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내 편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외동에겐 없었다. 적어도 함께 할 일이 있어야 만날 수 있었다. 무언의 약속이 필요했다.


이렇게 만든 내 편을 쉽게 대할 수 있을까. 저 사람은 나의 이런 면을 좋아하니까 절대 실망시키지 말아야지, 이 사람은 저것을 좋아하니까 매일 그것을 갖다 줘야지 하며 노력했다. 버려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사람들은 이런 날 보고 항상 섬세하단 표현으로 칭찬했다.

하지만 생일은 내가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은 죽을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서사가 어떻든 어차피 어떻게든 끝까지 살아있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날이었다.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는 생일에도 축하받으려면 눈치를 봐야 했다. 누군가의 생일을 먼저 챙겨야 하고 내 생일 땐 생일이라 티를 내야 했다. 솔직히 카카오톡이나 인스타가 없다면 우리 모두 잊지 않고 챙길 생일이 몇 개나 있을까.


그냥 축하받고 싶다고 솔직히 말하면 되는데 그게 점점 어렵다. 꼬여가는 내가 좋지는 않다.


또 갈수록 생일의 무게가 무거워진다. 혼자라는 건 퍽 그랬다. 사랑은 기대로 변하고 기대는 부담이 돼 사야 모습을 드러낸다. 번듯하게 무엇 하나 이뤄 놓은 게 없는 지금은 생일이 두렵다.

사람들에게 눈치를 봤다면 이젠 내 편을 넘어 스스로에게 대적한다. 이것 조차 해내지 못한 내가 과연 축하받을 가치는 있는 존재일까? 누구 탓도 아니고 내가 못나서 그런 거라 더 어렵다. 어쩌면 내가 세상에 나온 이유는 뭐일까? 이런 질문이 더 이상 오글거리지 않는 사실이 참 슬프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고 싶은 사람들처럼 격하게 힘든 일을 겪고 있지도 않다. 고작 생일로 저런 고민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미안할 정도다.


올해는 아직까지 봤을 땐 가장 버거운 시간이다. 해내야 하는 일 전부가 실패로 돌아갔다. 심지어 이 실패한 것들을 포기할 수 없단 사실에 숨이 차다. 또 사랑하는 존재가 세상과 이별했다. 순탄하고 쉽게 살아온 건 아니지만 감당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얼마 전 생일 전날 케이크 위에서 녹아내리는 촛불이 마치 눈물 같았다. 원래 소원 같은 건 무시하는 편인데 이번엔 간곡히 소원을 빌었다.


2025년을 지워 주세요. 아예 생각도 나지 않게 없애 주세요. 그거면 충분해요.


이때부터 심하게 꼬였다. 실수였다.

그래도 아직 나에게 웃음을 건네는 사람들에게 몹시 미안했다. 내가 나를 한 해쯤 지우는 건 괜찮았지만 그런 나를 기억해 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찢는 건 이기적인 일이다. 생각해 보면 그들은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전에도 똑같이 생일을 챙겨줬다.

꾸준한 게 가장 어렵단 걸 어렴풋이 알아가면서 다른 이들의 노력은 무시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단지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봐준다는 걸 놓아 버렸다. 어쩌면 이 하찮은 이유로도 내가 주인공이 될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 인정해 주는 사람들일지도 몰랐다.


다행히 생일 케이크를 하나 더 받았다. 소원을 바꿀 기회가 생겼다. 그 사람의 케이크였기에 반드시 그 촛불에 소원을 다시 빌고 싶었다.


어제 빌었던 소원을 지워 주세요. 기억하고 살고 싶습니다. 올해를 지워달란 소원을 없애 주세요.


짧은 시간 내에 번복해서 소원을 들어주는 자가 기분 나빠 무시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괜찮다. 그 사람이 이미 편지에 내가 처음 빌었던 소원을 지워달라고 적었다.


난 그냥 너 자체만 보고 있는 거라서 백수든 도둑이든 변호사든 아무 상관도 없어! 그니까 부담 갖지도 말고 누구와 비교해서 깎아내리지도 말고. 그냥 너만의 길을 가. 나도 내 길을 잘 가 보고 있을게. 다음 생일엔 더 행복한 일들로 돌아오자!


이번 생일은 베베 꼬여서 잘 풀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정말 다행이다.


가끔 여러 충전기 선들이 얽히고설켜 있어도 풀기 싫은 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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