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
당신들도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가야지, 답답하니 바람도 좀 쐴 쐬야지. 우리도 좀 쉬고. 되게 매력적인 말인데, 인터미션으로 포장 정도는 해야겠지. 잠시 우리 본능에 기대어 하고 싶은 것 좀 하고 다시 만납시다. 이게 더 설레는 표현이려나.
그렇게 쓸 게 없느냐고, 맞다, 앞사람 몰래 코 파는 것에 비하면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 쉬는 것도 재주다. 장담하는데, 지나가는 열 사람 붙잡고 지금부터 편하게 쉬어 보라 하면, 좋다고 쉬러 가는 게 아니라 전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방황만 할 테다. 지금 여기서 웃어야 할 때다. 그렇지 고개를 끄덕일 때가 아니라. 뭐가 웃기냐고 따져 묻지 말기를, 자자 착각 말고, 지나치게 자조적인 웃음이니까.
얼마나 그대는 재미없는 사람이기에 당장 달려가고 싶은 곳 하나 없을까, 스스로 가여워해야지. 기껏해야 화장실이나 정수기 앞이지 않나, 아니면 심지어 쉬는 시간이 몇 시간 며칠입니까? 물어보려 생각하나. 끝을 알아내어 철저히 계산하면 뭐가 달라지나.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말고, 내가 나한테 그리고 당신이 당신에게 하는 말을 옮겨 적었을 뿐이니.
두리번두리번 누가 들었을까 노심초사해도 바람 소리뿐이다. 그게 걱정되는 걸 보면, 어딘가 민망하거나 꽤 없어 보인다고 느꼈나 보다. 물론 그 모습이 사실이지만. 기쁘게도 메인 사거리 한복판에 서 있지만 아무도 없다. 충분히 주변을 경계하고 무장해제해도 아무도 모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니, 당연한 거지. 누가 지금 이 시간에 인터미션을 가지겠으며, 애초에 인터미션이 뭔 줄 아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쉽게 확신할 수 있다. 참 지금은 새벽 세 시나 네 시쯤 됐겠다. 그래, 인터미션 속에 갇혔다.
가만히 서 있다 보니 모든 신호가 순환했다. 당황스럽겠지. 온전히 한 바퀴 동안 멈춰있었던 적이 없었어. 그렇지, 그러니 평소에 나는 인터미션을 갖고 산다는 사람은 믿으면 안 되겠지? 아직도 좀 헷갈린다니 제법 의심이 많나 보다.
쉬는 시간입니다, 삼십 분 쉬고 다시 시작할게요. 이때 물을 마시지 않으면 말라죽겠던가, 화장실을 가지 않으면 방광이 터지겠던가, 그렇다 하더라도, 정수기와 변기 말고 다른 존재가 끼어들던가. 그게 인터미션이다. 오직 하나에 지배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순수함, 하루에 그런 적이 또 있었나, 아마 없었겠지. 이제 좀 자조적으로 웃겠네. 돈 쓰고 시간 써서 쉰다고 한 모든 것들이 그깟 소변기로 달려가는 시간보다 못하다는 걸 알았을 테니.
이제 우리 대화가 좀 통하나 싶은데, 이곳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겠구먼. 다시 사거리 신호들의 순환을 보고 떠들어 보자.
매력을 발견했다는 표정에 괜히 기대가 된다. 벌써부터 입이 근질근질한 게 제법 잘 찾아나 보다. 기다린다!
관심 주고 찾지 않아도, 언제 올지 몰라도 인내를 닦으며 기다린다! 순수한 기다림이란 처음 그 자리에서 상대를 재촉하지 않는 것이다! 뭐 좀 필요하다고 칭얼칭얼 대고, 내가 이렇게 기다렸는데 넌 왜 그걸 몰라주니 다그치지 않는 신호등! 너무 매력 있다. 맞지?
왜 나한테 검사받냐마는,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실망이다. 기다림에 한이 맺혔었는진 모르겠지만, 고작 그걸 매력이라 여겼다니, 대단히 부끄럽다.
보다 눈을 지그시 맞추고, 그들의 눈빛을 따라가라. 당장 당신의 오른쪽 횡단보도의 신호가 초록불로 바뀐다. 표독스러울 정도로 처음엔 선명하게 당신과 눈을 맞춘다. 눈싸움을 하란 게 아니다. 당신의 동공이 당길 때쯤 저쪽도 마찬가지다. 수없이 깜박거리다 눈을 감는다. 이제 고개를 왼쪽으로 구십 도 돌리면 남북으로 뻗은 길 위 차들에게 직진을 명령한다. 물론 지금 도로 위에 차는 없지만 말이다. 같은 방법으로 그들은 눈을 뜨고 감는다.
각자의 순서에 따라 같은 속도로 깜박인다! 그게 매력인가?
내가 이렇게 묻는 걸 보면, 또다시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느낌이 오려나. 좀 있으면 인터미션도 끝날 텐데... 빨리 찾으라 강요하진 않는다. 비단 당신만의 탓이겠는가. 쉼 없이 달려온 당신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그것도 난데. 괜히 나도 모르게 욱해서 얼굴이 붉어진 것에 대해 사과한다.
다만, 순환하는 신호들을 따라가던 너의 눈에 집중하면 좋겠다. 그들의 눈빛 자체가 아니라. 필요하다면 거울을 꺼내 들고 얼굴을 비춰서라도 두 눈을 직면해도 된다. 그리고 꼭 오늘 찾겠다는 조바심을 버리는 건 어떻겠는가. 어차피 내일도 이 신호들은 오늘처럼 너의 눈을 맞이할 테니 말이다.
(인터미션)
(순환)
(인터미션)
(순환)...
...(인터미션)...
알았다. 분명 여러 개의 신호가 각자의 눈으로 깜박거리는데,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너무 평온하고 편하다. 그중 나의 눈이, 내가 가장 편하다. 안정된다. 머릿속을 짓누르는 모든 것들이 날아간다. 경쟁, 분노, 증오, 열등감, 조바심, 회의,... 그와 이름이 비슷한 것들이.
침범하지 않는다. 저마다 보고 있는 그곳을 빼앗으려 달려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 빼앗을 필요가 있는가 눈을 감아 본다. 연결된다... 연결된다! 저쪽 풍경은 그랬구나, 내 풍경은 이랬는데, 너 쪽 풍경은 그랬구나. 그럼 우리가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는?
자유다. 엽렵한 자유다! 우리는 연결된다! 우리는 모두 사거리에 있다!
(인터미션)
인터미션이 계속 어디 갇혀 있다. 인터미션이 너무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