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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바 Oct 18. 2022

언어 노마드 1

     재미있는 동이(東夷)어 이야기

김상호의

언어 노마드

-재미있는 동이(東夷)어(語) 이야기 1.     

(Intro 1)

BTS를 중심으로 K-POP이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는 최근의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지구촌 젊은이들이 한국말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한글 공부에 몰두하는 모습. 불과 20여년전만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이미 수 천 년 전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면 믿어지시나요. 은허 유적에서 발견된 갑골문은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 할 만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자 음운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중고음 상고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자 발음을 연구하다 뜻밖의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상고음 이상의 발음을 재구해 내는데 실패하게 된 거죠. 언어학의 특성상 한자 음운 규칙에 따라 발음을 재구하면 상고음 이전 시기의 음도 얼마든지 확인해 낼 수 있어야하는데 그것이 안 되었던 거죠. 이유가 있었습니다. 상고음 이전 음은 발음 규칙이 완전히 다른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상 주 진 한 시대를 상고음 시대로 구분하는 학자들을 당황하게 한 그 이전 시대는 바로 은나라를 포함해 상나라 초기와 그 전시대를 말하는데 역사 유물로 밝혀지고있는 동이족이 나라를 세운 시기를 말합니다.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 유적에서 나온 갑골문은 결국 동이어를 표현한 문자이고 동이족 영토를 침범한 이민족은 이 문자와 소리를 자신들의 언어에 차용합니다. 또한 이 동이어는 한반도를 넘어 일본 열도에까지 전해져 고대 일본어 형성에 지대한 영향도 끼치게 됩니다. 실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세계어였던 셈이죠. 한반도에 정착한 동이족의 후예들은 15세기 중반 또 하나의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냅니다, 바로 한글입니다. 그 한글이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 K컬처를 소비하는 젊은이들의 공용어로 확산되고 있는겁니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자신들의 삶을 기록했던 동이족의 DNA는 시대를 뛰어넘어 강한 생명력으로 21세기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 코드를 만들어내고  셈이죠. 이러한 시점에서 동이어가 갑골문과 금문 등에 어떻게 스며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는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그 첫 번째 주제어로 윤(尹)자를 살펴보겠습니다.     


尹(윤)     

윤두서의 자화상 보셨나요?     

윤선도의 증손이자 정약용의 외증조인 공재 윤두서. 

겸재(謙齋) 정선(鄭敾), 현재(玄齋) 심사정(沈師正)과 더불어 조선의 3재로 불리던 윤두서가 그린 자화상은 정면을 노려보며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는 강인한모습이 보는 이들을 주눅 들게 합니다. 약간 살이 오른 볼과 한올 한올 세밀하게 표현된 털 등 조선시대 걸작으로 꼽히기에 손색이 없는 그의 작품은 현재 국보 제240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윤두서의 본관은 해남. 조선시대에 66명의 과거 급제자를 낸 명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명문가답게 집안 뿌리에 대한 자부심도 클텐데요. 이번에 살펴볼 글자는 윤두서 집안이 사용한 윤씨 성의 尹입니다. 

이 윤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성씨 외에 일반적으로 ‘다스린다’는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도그럴것이 이 글자는 오래도록 지도자가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으로 전문가들은 해석해왔으니까요. 설문해자에도 治也。从又丿,握事者也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치야(治也). 다스림을 말한다고 되어있습니다. 그 이유는 갑골문에 드러난 글자의 모습에서 한결같이 막대기를 들고 있는 공통점이 발견되기 때문입니다. 막대기를 들고 무리를 이끈다는 생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자가 정착되기 전 표현할 수 있는 글자 수가 제한적이었을 고대 언어환경을 떠올려보면 막대기를 들고 뭔가를 한다는 표현으로 무리를 이끈다는 뜻으로만 국한시키기엔 무리가 따를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설문해자에서는 사물을 쥐고 있는 사람이라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막대기로 할 수 있는건 정말 많겠죠. 수풀을 헤치거나 짐승을 쫓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위협을 가할 수도 있으며 물건을 옮기거나 어떤 사물을 두드릴 수도 있겠네요. 이밖에도 막대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따라서 그 뜻은 얼마든지 파생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직관적으로 인식하고 공유할 수 있는 뜻은 어떻게 도출해 낼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글자 원형을 살펴보죠. 손의 모양이 좌우 구분을 두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들고 있는 막대기는 어떨까요. 여러개의 갑골문자에서 공통점이 발견됩니다. 손이 하나같이 막대기 윗부분을 잡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막대기 윗부분을 잡고 바닥 쪽에다가 뭔가를 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것이 어떤 작업인지는 알 수 없으나 각각의 글자들은 행위가 일치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이 글자를 어떻게 불렀을까요. 한자 음운학자들이 재구해 놓은 상고음(중국 상고시기-상(商)·주(周)·진(秦)·한(漢) 시대의 한자음)은 ɢʷlinʔ입니다.

난데없이 이게 뭐죠? 영어인 듯 영어 아닌 영어 같은 문자. 이건 음성부호입니다. 어렵게 설명할 필요 없이 이 발음 부호를 읽으면 ‘그린~ㅎ’ 이쯤 될 겁니다. 뒤에 있는 ㅎ은 굳이 발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다면 남는 건! 그린! 앗 그린! 그렇습니다. 고대인들이 막대기를 들고 바닥에다 하던 작업은 뭔가를 그리는 일이었던 겁니다. 바로 지금 우리들이 쓰고 있는 말 ‘그리다’입니다. 이 그린이란 말은 언어생활 문화가 다른 집단으로 들어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화를 겪게 되고 현재의 발음에 이르게 되는거죠. 재미있는 것은 이(伊)자도 갑골문에서 유사한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요. 다만 사람이 추가돼 있는 모습이 다를 뿐입니다. 재구된 음은 qlil로 尹의 ɢʷlinʔ과 달라 보이지만 실제 음은 크(그)릴로 유사합니다. 다소 쓰임(시점 등)에 차이가 있었을지라도 비슷한 용도로 활용됐음을 알 수 있는거죠. 윤(尹)자는 바로 바닥에 뭔가를 ‘그리는’ 모습을 나타낸 동이어인 것입니다.     

공재의 뛰어난 자화상이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윤(尹)씨 성을 쓸 만큼 무엇인가를 그리는데 능한 오래된 집안의 내력 때문이 아닐까요. 相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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