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바 Oct 18. 2022

언어 노마드 5

재미있는 동이(東夷)어 이야기

철(凸)     

어린시절의 꿈-요철발명왕     

초등학교시절 즐겨보던 만화 중에 ‘요철발명왕’이란 제목의 명랑만화가 있었습니다. 공부는 그리 잘하지 못하지만 발명가의 꿈을 안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주인공. 그러나 결과는 안타깝게도 번번이 실패로 끝나지만 좌절하지 않고 또다시 뭔가에 도전하던 주인공의 모습에서 웃음과 꿈을 발견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당시 주인공 이름은 만화 제목에 나오듯 요철이었습니다. 그 땐 별 생각 없이 그저 특이한 이름이라고만 여겼는데 시간이 지나 그 이름 때문에 어린 시절 추억소환과 함께 이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요철(凹凸)’이란 말은 일상에서도 가끔 사용하기 때문에 낯선 단어는 아닙니다. 그럼 사전에서 뜻을 찾아볼까요. 오목함과 볼록함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어려운 말도 아니고요. 다만 한자 생김이 재밌습니다. 필획이 복잡한 다른 한자들에 비하면 무척 단순한 형태인데다 정말 글자가 맞나 싶을 만큼 특이한 모양입니다. 글자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모습입니다. 물론 한자 자체가 상형문자에서 비롯된 글자들이 많은 부분 기초를 이루는 만큼 어쩌면 한자의 화석 형태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번에 살펴 볼 글자는 요철이의 이름에 들어있는 ‘철(凸)’자입니다. 아이들 블록을 쌓은 것 같기도 하고 퍼즐 같기도 한 이 글자. 현대 중국어 발음은 tū. 우리발음은 ‘볼록할 철’입니다. 중국어 발음과 우리 발음에 많은 차이가 있는데 상고음은 어땠을까요. duːd. 읽어보면 두-ㄷ. ㅜ와 ㅗ는 수시교체 가능한 발음이기 때문에 두, 도 두 글자 모두 접근이 가능하겠네요. 두드러지다, 두둑하다, 두툼하다, 도톰하다, 도드라지다, 돋다 등 비슷한 뜻의 말이 많은데요, 그 중 ‘돋다’를 사전에서 찾아보겠습니다. 1.해나 달 따위가 하늘에 솟아오르다. 2.입맛이 당기다. 3.속에 생긴 것이 겉으로 나오거나 나타나다. 4.어떠한 특성이나 능력 따위가 대단하게 나타나다. 등 여러 가지 설명이 나오는데요 ‘(무언가 바깥으로) 돌출된다’는 공통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엔 ‘두둑하다’도 한 번 찾아보죠. 1.매우 두껍다. 2.넉넉하거나 풍부하다. 3.‘두두룩하다(가운데가 솟아서 불룩하다)’의 준말. 이렇게 나오는데요. 재밌는 것은 3번째 해설입니다. ‘두두룩하다(가운데가 솟아서 불룩하다)의 준말’이라고 설명한 괄호안의 내용이 凸자의 형태를 그대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그럼 원 발음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두드러지다’를 살펴보겠습니다. ‘가운데가 불룩하게 쑥 나오다’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글자 생김새를 그대로 옮겨놓고 있네요. 가운데가 불룩하게 솟아있는 모양이 소리 그대로 반영돼 있는 거죠. 

오히려 현대 중국어 발음이 상고음에 가깝게 남아 있네요. 그리고 인쇄용어 중에 '돗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철판' 또는 '볼록판'으로 순화해서 쓰고 있지만 일본에서 凸版(철판)을 とっぱん(toppan)으로 읽는 것을 그대로 들여온 것인데 여기에도 철(凸)을 돗(돋)이라고 발음하는군요. 동이어가 동아시아의 국제어로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점을 앞선 회에서 언급했 듯. 그렇습니다. 볼록하다는 뜻의 한자 ‘철(凸)’은 오랫동안 뜻과 발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우리곁에 남아 있는 또하나의 東夷語인 것입니다     

어려웠던 시절. 모두를 똑같은 방(方/ㅁ)에 가두고 같은 생각, 같은 행동을 강요하던 사회 분위기 속에서 때론 우스꽝스럽고 엉뚱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했던 요철이. 그 요철이가 개성을 중요시하고 창의성을 높게 평가하는 요즘 태어났더라면 오히려 더욱 ‘돋’보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서 불려왔지만 요철이는 여전히 제게 그 누구보다도 ‘도드라진’ 인물로 남아있습니다. 相念

이전 04화 언어 노마드 4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