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바 Oct 18. 2022

언어 노마드 4

재미있는 동이(東夷)어 이야기

남(男)     

BTS를 중심으로 K-POP이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는 최근의 현상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실제로 BTS는 얼마 전 팝의 본고장 미국에서 빌보드 차트 1,2위를 동시에 석권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구요, 심지어 미국 가수의 곡을 리믹스한 1위곡엔 한글 가사가 들어가 있어 국내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는 물론 모든 한국인들에게 자긍심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지구촌 젊은이들이 한국말로 노래를 따라 부르고 한글 공부에 몰두하는 모습. 불과 20여년전만해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이미 수 천 년 전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면 믿어지시나요. 은허 유적에서 발견된 갑골문은 이러한 논의를 뒷받침 할 만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한자 음운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중고음 상고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한자 발음을 연구하다 뜻밖의 벽에 부딪히게 됩니다. 상고음 이상의 발음을 재구해 내는데 실패하게 된 거죠. 언어학의 특성상 한자 음운 규칙에 따라 발음을 재구하면 상고음 이전 시기의 음도 얼마든지 확인해 낼 수 있어야하는데 그것이 안 되었던 거죠. 이유가 있었습니다. 상고음 이전 음은 발음 규칙이 완전히 다른 언어였기 때문입니다. 상 주 진 한 시대를 상고음 시대로 구분하는 학자들을 당황하게 한 그 이전 시대는 바로 은나라를 포함해 상나라 초기와 그 전시대를 말하는데 역사 유물로 밝혀지고 있는 동이족이 나라를 세운 시기를 말합니다. 동이족이 세운 은나라 유적에서 나온 갑골문은 결국 동이어를 표현한 문자이고 동이족 영토를 침범한 이민족은 이 문자와 소리를 자신들의 언어에 차용합니다. 또한 이 동이어는 한반도를 넘어 일본 열도에까지 전해져 고대 일본어 형성에 지대한 영향도 끼치게 됩니다. 실로 당시로서는 엄청난 세계어였던 셈이죠. 한반도에 정착한 동이족의 후예들은 15세기 중반 또 하나의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 냅니다, 바로 한글입니다. 그 한글이 이제는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 K컬처를 소비하는 젊은이들의 공용어로 확산되고 있는 겁니다.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 자신들의 삶을 기록했던 동이족의 DNA는 시대를 뛰어넘어 강한 생명력으로 21세기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 코드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이죠. 이러한 시점에서 동이어가 갑골문과 금문 등에 어떻게 스며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습니다. 자 이번엔 그 네 번째 주제어를 살펴보겠습니다.     

남자(나ᆞ감자男子)의 인생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집어삼키고 있는 2020년 가을. 추석을 맞은 대한민국은

또 하나의 열기로 뒤덮였습니다. 나훈아. ‘대한민국 어게인’을 내걸고 코로나에 지친 국민들을 위로하자는 취지로 기획된 비대면 공연은 그야말로 대박이었습니다. 요즘 보기 드문 시청률을 기록한 것도 놀랍지만 7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넘치는 에너지와 뛰어난 무대 매너는 왜 그에게 ‘가황’이라는 칭호가 붙었는지를 실감케 했습니다. 사실 공연 처음 화면에 등장했을 때는 나훈아 자신도 보는 시청자도 약간의 어색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의 서먹함을 깨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무대를 종횡무진 누비는 그에게 오히려 점점 더 강하게 빠져들게 되었죠. 무엇 때문일까? 무엇이 그를 저토록 흡입력 있는 인물로 보이게 하는 것일까? 나름대로 이유를 찾아봤습니다. 젊은시절 못지않은 강렬한 눈빛과 생생한 음성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지만 그를 생동감 있게 하는 원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젊은 생각이었습니다. 특히 ‘가수는 꿈을 파는 직업이고 가슴에 늘 꿈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그의 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서론이 길어졌지만 가황이 이 날 내놓은 신곡이 이번 주제와 관련 있어 겸사겸사 언급해 봤습니다. 나훈아의 신곡 ‘남자의 인생’.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애환을 일상의 모습으로 그려냈는데요, 지금부터는 곡에 대한 감상보다는 이 중에 바로 첫 글자 남(男). 사내 男자를 살펴보겠습니다.     

남자. 이 말은 일상에서 워낙 자주 쓰기 때문에 그 뜻이나 어원에 대해서는 좀처럼 따져보지 않게 되는데요. 악숙한 만큼 말의 내력도 오래됐을 것 같죠. 그럼 설문해자에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볼까요. ‘丈夫也。从田从力。言男用力於田也。장부를 뜻하며 전(田)과 력(力)을 구성 요소로 한다. 남성이 밭에서 힘을 쓴다는 말이다.’ 쟁기로 밭을 갈고 있는 모습으로 남성을 표현했다는 설명은 누가보아도 그럴듯한 해석이고 이후로 男자를 설명하는데 별다른 이견도 없었던 듯합니다. 적어도 이 자가 탄생한 시기는 농경문화가 이루어지던 때일 것이라는 분석까지 더해지면 이 글자와 관련한 논의는 더 이상 필요치 않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남’이라고 하는 이 발음은 언제부터 누가 썼는가 하는 물음에는 적당한 답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음운학자들이 재구해낸 상고음 발음에서 또 한 번 놀라운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nuːm 누-ㅁ

눔. 이 발음은 음운변화 특성상 이전 음을 ‘놈’으로 재구할 수 있습니다. 놈! 놀랍지 않나요. 그럼 국어사전을 찾아보겠습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남자를 낮잡아 이르는 말’ 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도 남자를 뜻하는 말이라고 나오네요. 다른 사전도 살펴보겠습니다. 네이버사전에는 남(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의 방언이라고도 나오네요. 같은 사전에는 ‘놈’이 ‘사람의 옛말’이라고도 나옵니다. 

훈민정음 서문을 보겠습니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백성이 니르고저 할빼 이셔도 마참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할 놈이 하니라.

내이를 어여삐 녀겨 새로 스물여덟자를 맹가노니 사람마다 수비 니겨 날로쓰매 편아케 하고저 할 따라미니라.> (*중세 국어 특성상 현대어 번역에는 약간씩 표기가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제 뜻을 능히펴지 못할놈이 하니라’에 나오는 ‘놈’. 여기에서 말하는 놈은 ‘사람의 옛말’로 보면 되겠죠. 영어의 man이 남자와 사람의 통칭으로 쓰이듯 男 역시도 남성이나 사람을 뜻하는 글자로 쓰인 거죠.

그러면 눔을 찾아볼까요. ‘놈’의 강원, 경기방언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같은 말인 거죠. 방언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긴 하지만 놀라운 생명력으로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있습니다.     

나훈아가 신곡 남자의 인생을 통해 아버지, 남편, 아들, 가장으로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남자들이 힘겹지만 그럼에도 쓰러지지 않는 놀라운 생명력을 지니고 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처럼 사내 男자(字) 또한 놀라운 생명력으로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었던 겁니다. 相念.

이전 03화 언어 노마드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