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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바 Oct 18. 2022

언어 노마드 2

       재미있는 동이(東夷)어 이야기

적(赤)

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     

2018년 4월 27일. 전 국민의 시선은 판문점에 쏠려있었습니다. 역사적인 남북 정상의 만남. 물론 이전 정부에서도 남북 정상의 만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 날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습니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미국과 국제 사회의 요청에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긍정적 답변을 보내는 첫 신호탄이었기 때문입니다. 특히나 문재인 대통령이 김위원장의 손에 이끌려 판문점 북측 지역으로 넘어갔다 다시 남쪽으로 넘어오는 모습은 실시간으로 방송을 지켜보던 전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했고 역시나 이 광경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우리 국민들의 입에선 탄성이 터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 장면으로인해 어느 누구보다도 울림이 컸을 사람들은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남북이산가족들입니다. 

회담이후 남과 북은 '4·27 판문점 선언'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발표문 5번 문항에 이런 내용을 담습니다. '남과 북은 민족 분단으로 발생 된 인도적 문제를 시급히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며, 남북 적십자회담을 개최하여 이산가족·친척상봉을 비롯한 제반 문제들을 협의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당면하여 오는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친척 상봉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후 같은 해 8월 20일부터  22일, 24일부터 26일까지 두 차례의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추가 만남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남과 북에 갈라져있는 가족들과의 만남을 오직 급변하는 국제정세에만 맡길 수밖에 없는 당사자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이와 관련해 정부에서는 국내 화상상봉장에 대한 개·보수를 시작으로 적십자회담 등을 통해 영상편지 교환, 면회소 복구 등의 이행문제를 북측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재 5만5000여명 이산가족들의 평균연령이 81.5세. 이들이 언제쯤 환하게 웃으며 가족들과 자유로이 만나게 될지 아직 아무도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아무튼 그 시기를 가늠하기 어려울지라도 만남을 위한 노력을 멈출 수는 없는 일이죠. 서론이 다소 길어지긴 했습니다만 이런 민족의 아픔을 안은채 남북 이산가족 실무를 맡아 처리하고 있는 곳이 바로 대한적십자사입니다. 이번에 살펴볼 글자는 전 세계에 퍼져 인도적 사업을 펼치고 있는 적십자사의 ‘赤’입니다. 붉을 적. 

설문해자를 보겠습니다. ‘南方色也。从大从火。烾,古文从炎土。남쪽을 뜻하는 색이고 大와 火를 구성요소로 한다. 烾(적)은 고문이며 炎과 土를 구성요소로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大자는 사람이 팔을 벌리고 있는 모습인데 적(赤)자의 갑골문을 보면 사람이 불꽃위에 서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꽃(火) 모양은 간혹 산(山)자와 혼동되는데 갑골문 원형이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불꽃(火)을 나타낸 글자는 양쪽 선이 간략화 돼 있거나 점선으로 표현 된 반면 산(山)자는 세 개의 봉우리가 분명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금문(金文) 단계로 넘어오면 그 구별이 더욱 확실해집니다. 장작더미위에 사람을 올려놓고 화형에 처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화형은 고대 여러문화권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형벌 중 한 형태이고 그것을 그림문자로 표현해 낸 것이 바로 적(赤)자의 고대 갑골문 모습이 아닐까 유추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글자는 어떻게 읽혔을까요. 상고음을 찾아보겠습니다. kʰljaɡ. 뒤에오는 g은 나중에 추가된 음이고 첫음 k의 앞선음은 g이기 때문에 발음을 정리해보면 ‘그을랴.’가 남네요. 어린시절 운동장에서 땀을 뻘뻘흘리며 친구들과 뛰어놀다 햇볕에 얼굴이 새까맣게 그을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을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햇볕이나 불, 연기 따위를 오래 쬐어 검게 되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불이나 열기에 의해 까맣게 되는 모습을 고대인들은 장작불 위에서 화형에 처해진 사람의 형태로 나타냈고 그것을 그을린다고 말했던거죠. 혹은 화형에 처한 모습을 ‘그을다’라고 했을수도 있습니다.

더 이상 이산가족들의 마음이 새까맣게 그을리지 않도록 남북적십자회담을 통한 상시 상봉이 이루어지길 기대해봅니다. 相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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