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픽로그 K Oct 24. 2021

신은 인간이 마련한 일종의 도피처

   누군가 나에게 “신이 있다고 생각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신은 없다고 대답할 것이다. 나는 무교이고 신을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건 내 마음가짐과 행동이다. 나에게 신이란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기대고 의지하기 위해 만들어낸 존재이다. 그렇기에 신의 가르침에 따라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사람을 보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가끔 집중해서 기도하다가 신을 느꼈다는 말을 들으면 그 기분을 나도 느껴보고 싶기도 하다. 

   때문에 선생님과 처음 만났던 날 나는 기대보다 일정에 부담이 컸다. 대학원 한국 신화 수업시간에 주말 일정 맞는 사람끼리 시간 내서 이해경 선생님을 뵙고 오자는 말이 나왔다. 선생님은 강원도 화천에 계셨는데, 서울에서 차로 2시간이 넘게 걸렸다. 2020년 가을, 그 시기 나는 무척 힘들었고 심한 우울감을 느끼고 있었다. 일이 많아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러 사람과 일정을 맞춰야 했기에 투표를 통해 일요일에 선생님이 계신 화천에 가기로 했는데, 그 일정을 위해 미리 잡혀있던 일을 양해를 구해 옮겨야 했다. 여기저기 연락해서 미안하다 고개를 숙이고 상황을 설명하고 출발하기 전까지 부랴부랴 일을 마무리했다. 화천으로 출발하면서도 침대에 눕고 싶었다. 휴식이 간절했다.

   화천 신당에서 다 같이 모여 한두 시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자리를 마련해주셨던 교수님과 이해경 선생님이 이야기를 나누고 학생들이 중간중간 질문을 하는 형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대화가 끝나고 자리를 옮겨 신당을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사람들이 이동하는 사이 나는 몰래 구석에 가서 울었다. 그때 내가 왜 울었는지 지금도 모르겠다. 다만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던 게 기억난다. 선생님은 내가 가장 이해할 수 없던 신을 중심에 놓고 생활하는 분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전혀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에게 안도감과 위로를 얻었다. 그때의 눈물은 선생님과 인터뷰를 해보자는 약속으로 이어졌다.


   신을 믿지 않는 내가 신을 모시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기로 하면서 ‘신’이 궁금했다. 선생님에게 신은 어떤 의미인지, 신의 가르침은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찾아온 사람의 지난날을 꿰뚫고 앞날을 예측하는지 모든 게 신기했다. 선생님은 현재 무당이지만 종교 내력을 살펴보면 그리 간단하지만은 않다. 가족들은 천주교를 믿고, 아들이 죽었을 때는 잠시 개신교를 믿었다. 선생님에게 신이란 무엇일까? 인간에게 신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이냐는 우리의 질문에 선생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보이지 않는 어떤 존재가 있지 않을까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했어. 어떤 형태로 다가오는지는 모르지만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아들이 죽으면서 완전히 그 생각을 접었어. 근데 그 뒤로 신을 모시게 됐잖아. 그러면서 도대체 신과 종교는 뭔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결국 신의 존재 유무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잖아.
그냥 믿음이고 신앙인 거지.


   지나치게 솔직한 대답이다. 선생님과 같이 신을 모시는 다른 종교의 사제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뭐라 대답할까? 확실하진 않지만 신의 존재 유무를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다는 대답은 쉽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신을 모신다는 것은 신에 대한 믿음을 남에게 전달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그 믿음이 굳건해야 한다.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신실한 종교인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굳건한 믿음에 당황할 때가 있다. 진화론과 관련하여 별 생각 없이 했던 말이니 자살과 같은 사회 이슈에 날카로운 답을 듣기도 한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대답이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누군가는 종교와 신은 인간이 만들어진 거다 하잖아, 어쩌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 왜냐면 인간이 세상을 살아갈 때 너무 힘들잖아. 요람에서 무덤까지 가는 기간이 정말 특출나지 않는 한은 그 과정이 녹록치가 않아.  


   선생님의 말하는 종교와 믿음과 신은 어떤 숭고하고 절대적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가 필요할 때, 세상이 힘들어서 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할 때 찾는 일종의 도피처이다. 힘들 때 그것을 이겨낼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같은 인간에게 의지하여 위로받는 것일 테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의지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게 인간인 것 같아. 인간이 인간에게 의지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얘기고. 근데 인간은 너무 복잡한 동물이라 같은 인간에게 의지하는 걸로 해소가 안 돼. 인간은 너무 복잡하고 인간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 인간을 의지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거야.


사람이 모두 똑같은 마음이면 좋으련만, 그렇지가 않기에 인간 세상에는 배신과 상처가 존재한다. 내가 마음을 준 만큼 돌려받을 수 없고 신경 쓴 만큼 상대가 나를 신경 써준다는 확신도 없다. 선생님은 그런 인간과 인간 사이 위로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존재를 만들어 놓은 게 신이고 의식을 만든 게 종교고 그런 확신이 드는 거야. 말하자면 의지할 수 있는 도피처 같은 거지. 신이 꼭 들어준다는 보장은 없어. 근데도 막연하게 내 얘기를 들어줄 수 있을 것 같은 대상이 신인 거야.
조금 더 깊이 생각을 해보면, 종교는 기적이라고 생각해. 나는 다른 종교를 믿으면서 기적을 경험하지 못했어. 근데 내가 믿고 있는 신에게는 나만의 기적을 30년 동안 끊임없이 느꼈어. 이렇게 기적이 쌓이면서 신이 있다는 믿음도 조금씩 갖게 되는 거지 100% 확신은 아니야. 이건 내 경우라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어. 도저히 내 상황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들이 내 주위에 쌓이면서 믿음이 올라가는 거지.

 

   선생님의 말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초월성’과도 연결된다. ‘초월성이란’ 사람이 살면서 받아들일 수 없는 힘든 일을 겪을 때 ‘신’이라는 존재를 통해 그 고난을 이겨내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살면서 항상 평탄할 수 없고 같은 일도 각자가 느끼는 고통의 정도가 다를 수 있다. 이때 막연하게 신이라는 존재를 믿는 사람은 나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는데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불공평하게 느껴서 극복하기 힘들다는 이론이 있다. 고난과 상처의 이유를 내 과거의 어떤 일에서 찾으려 과거를 헤집고 맴돌다 보면 그 과거에 갇히기 쉽다. 과거에 갇히면 하루하루를 사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내게 되는데, 그럴 경우 마음이 쉽게 우울해져 우울증을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초월성과 관련지어 생각한다면 신을 통해 위로받으려는 마음은 나에게 주어진 삶을 더 잘 살아내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다.

   선생님은 일관적으로 각자의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며, 자신의 종교 교리를 명분으로 삼아 상대를 찍어 누르거나 몰아세우는 것을 경계하라 하신다.     


알라신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런 건 다 명분이라는 거지. 신의 뜻을 내세우잖아. 치사하게 신을 내세운 거지.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어쨌든 하나야.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 목적은 하나인데. 지역적인 특징에 따라 형식이나 제의 절차가 달라졌다 생각을 한다고.


   결국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하나이기에 그 종교를 통해 깨달음을 얻고 지금 내 세상살이가 편안해진다면 그것으로 된다는 것. 지금껏 무신론자인 나에게 이토록 신과 종교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내려준 사람은 없었다. 이런 종교와 믿음이라면 나도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어쩌면 내 선입견일지도 모를 거부감으로 등한시했던 종교에 관심이 생겼다.

   무속에서 가장 높은 신은 천지신명이다. 천지신명은 하늘과 땅, 우주를 관장하는 신으로 기독교의 하느님이고 이슬람교 알라신이다. 천지신명은 너무 크고 높고 존재라 세세한 인간사를 돌볼 수 없다. 그래서 그 밑에 피라미드 구조로 위계가 짜인다. 대통령 밑에 국무총리가 있고 그 밑에 장관, 차관이 있는 구조를 떠올리면 쉽다. 만신은 그 구조를 알고 자신을 찾아온 의뢰인과 어떤 신을 연결시켜야 할지를 아는 사람이다. 신의 특성을 정확하게 알고 움직이는 심부름꾼이다. 어디에서 어디까지가 신의 영역이고 어디는 그 밖인지를 아는 자이다.     

다른 종교랑 무속신앙이랑 다른 거 하나도 없어. 다른 종교에서는 제일 위대한 신만 믿고 의지하라는 건데, 우리는 작거나 크나 소소하나 인간이 접하기 쉬운 신까지 모시겠다는 거야. 그분들에게 의지하겠다는 거야, 아주 간단해. 당장 시계가 고장이 났어. 이걸 뭐 하느님까지 가서 맡겨. 바로 기계신에게 말하는 거지. 
내가 생각하는 종교는 어쨌든 하나야. 근데 이 꼭대기에 으뜸신을 부르는 명칭이 각 나라의 지역적, 지리적, 문화적 특성에 맞게 달라진 거지. 교회는 하나님, 이슬람은 알라신, 우리는 천지신명. 이름만 다를 뿐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 목적은 하나인데 지역적인 특징에 따라 형식이나 제의 절차가 달라졌다 생각해.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 목적은 하나다. 지옥 같은 현생을 사는 사람들을 보듬고,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기. 그런 면에서 신은 인간이 마련한 일종의 도피처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힘들 때마다 기댈 수 있는.

이전 04화 아주 가까운 친구와 폭풍우 치는 인생길의 우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