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픽로그 K Nov 09. 2021

창귀를 막아라! 호탈굿과 호살량굿

가볍게 읽는 한국 신화

에-하✌(‘ω’)✌ 가을의 초입에 에픽레터가 돌아왔어. 요즘 하늘도 예쁘고 밤낮으로 선선해서 기분이 좋지 않아? 입맛도 좋고� 가을에 입맛 도는 거 국룰이잖아요� 살찌는 거 말 아니고 나잖아요� 오전 간식과 함께 할 오늘의 에픽레터 주제는 ‘창귀’야. 우리 구독자들 다 고인물에 일에 찌든 노예라서 요새 뭐가 유행하는지 잘 모르지? 내가 다 알아. 왜냐면 내가 그렇거든ㅎㅎ 2021년 여름, <범이 내려온다> 이후로 또 호랑이가 주목받고 있어. 호랑이 특집 2탄! 오늘은 우리 노예들에게 최신 트렌드 ‘창귀’를 소개해줄게.


<창귀>는 8월 한 달간 SNS에 7만 건 이상의 글이 올라올 만큼 반응이 아주 뜨거웠지. 사

진출처 : https://youtu.be/8UUDyQyuvwI 유튜브 안예은(AHN YEEUN) HORROR SINGLE 창귀 CHANGGWI LYRIC VIDEO 중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죽은 사람의 귀신, 창귀 2021년 8월, 가수 안예은이 ‘귀로 듣는 납량특집’ 프로젝트로 노래 <창귀>를 발표했어. 으스스한 분위기의 뮤직비디오도 눈길을 끌었지만 그것보다 더 주목받은 건 참신한 가사였어. 한국의 전통 귀신 창귀를 소재로 삼았거든. 창귀는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죽은 사람의 귀신을 말해. 호랑이 곁에 붙어 다니면서 시중을 들고 길을 안내하는데, 다른 사람을 제물로 바쳐야지만 호랑이에게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홀리고 다니지. 호식 당할 사람을 찾는 거야.


<창귀> 노래가 듣고 재창작된 그림! 세상에는 어쩜 이리 금손이 많은지. 사람을 홀리는 창귀가 잘 표현됐어.

출처 : 트위터 호파 Hopa, https://twitter.com/Hopahopa88/status/1423458030449045507?s=20   



슬픈 노래를 부르며 서럽게 우는 창귀 창귀는 슬픔의 화신이야. 항상 서럽게 울며 슬픈 노래를 부르고 다녔대. 그러다 보니 창귀와 마주친 사람은 이유 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고 서럽게 울기도 했대. 접촉이 없이 그냥 마주친 것만으로 슬픈 감정을 일으킨다니 능력이 대단하지? 이 밖에도 매실·소라·골뱅이 등을 좋아해서 그것을 보면 정신이 팔려 호위하는 일을 잊기도 했대. 그럼 사나운 호랑이도 사냥하기 쉬운 상태가 된다고 해.


창귀를 막기 위한 마법진, 호식총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은 자리에는 신체의 일부가 남았어. 호랑이는 배부르면 떠났으니까. 사람들은 남은 신체를 화장하고, 그 위에 돌무덤을 만든 후, 시루를 엎어 놓고 가운데 꼬챙이나 칼을 꽂아 호식총을 만들었어. 창귀가 나오지 못하도록 마법진을 친 거지. 화장은 유교 사회에서 일반적이지 않은 장례 방식으로, 사악한 기운을 태우려는 비상수단인 셈이야. 호식총은 후손도 찾지 않고 모든 사람이 피하면서 절대 건드리지 않았어. 사람들이 호환을 얼마나 무서워했는지 느껴지지?


강원도 태백산 지역에만 150개가 넘는 호식총 터가 발견됐다고 해. 

사진출처 : http://san.chosun.com/m/svc/article.html?contid=2019102301476 신준범, "[백두대간 에코 트레일ㅣ석병산 구간 역사] 호식총에 가락 꽂은 한 맺힌 사연", 월간산 601호, 2019.11.24 기사   


호환 당한 영혼을 위로하는 호탈굿과 호살량굿 생각해봐, 갑자기 나타난 호랑이 때문에 죽은 영혼은 얼마나 억울했겠어. 그래서 마을에서는 호환 당한 사람이 있으면 꼭 굿을 열어 억울한 영혼을 위로했어. 무당이 호랑이 모양의 가면을 쓰고 호랑이 흉내를 내면 마을 사람들이 개를 바치거나 호랑이를 쫓아내는 거야. 이 굿을 동해안에서는 <호탈굿>이라, 황해도에서는 <호살량굿>이라 불러. 지역에 상관없이 호랑이와 호환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는지 잘 보여주지.


<호탈굿>에서 쓰이는 호랑이 가면 사진출처 : 한국민속예술사전, "호탈굿",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1447

<호탈굿>의 한 장면 사진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범굿",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1447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2553#modal   


현실에 스며든 공포 지금 우리는 창귀를 보며 ‘그렇구나, 신기하다’ 생각하지만, 옛날 사람들에게 창귀는 현실 공포였어. 창귀가 가족·친척·친구 등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찾아다녀서 호랑이에게 물려간 집안하고는 결혼하지 않는 풍습까지 있었지. 창귀가 있는 집안과 결혼하면 우리 가족까지 위험해진다 믿었으니까.


호랑이는 동물원에 가야 볼 수 있는 지금, 창귀는 장산범으로 모습이 바뀌었어. 호랑이와 관련된 귀신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신기하지 않아? 지난 에픽레터에서 했던 ‘괴담이 사회의 공포를 반영한다’는 말이 확 와닿지? 100년 후에는 또 어떤 호랑이가 나타날까 궁금해.

매거진의 이전글 범 내려온다! 호랑이의 A to Z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