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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Nov 30. 2022

 네살의 세상 끝 경험

 따르릉.

 조용한 아침,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있는 카페를 흔드는 전화벨 소리.

 내 아이가 아파서 같은 층 소아과에 잠시 데려갔다 약을 먹이고 수업에 잘 들어갔다며 걱정 말라는 놀이학교 원장님의 말. 순간 살짝 당황했지만, 난 근처 가까운 곳이었고, 금쪽같은 아침 자유시간을 친구 엄마와 오랜만에 수다 떨고 있는 상태. 약도 먹고, 수업도 들어갔다는 말에 여유를 더 가졌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고 그래도 맘 한편에 걱정이 꿈틀거려 서둘러 자리를 파하고 그제야 뛰어간 난 결국 그날 아이의 태어나 처음 보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지옥.


 머리부터 발끝까지 시커멓게 피부가 변해있고 퉁퉁 부어있는 네 살 아이. 숨을 가쁘게 쉬며, 힘이 하나도 없는지 나에게로 천천히 다가와 하는 말. “ 엄마. 나 괜찮아.”

 그때부터 솟구쳐 오르는 식은땀과 눈물, 소리를 지르며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며, 아이는 왜 피부색이 이렇게 변한 거냐며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지 모를 소리를 외쳐대며 아이를 둘러업고 뛰었다.

 피부 청색증, 기도 막힘으로 온 호흡곤란, 음식 알레르기 쇼크 증세 등등을 들으며 병원에서 나온 나. 그 이후 시도 때도 없이 자주 흘러 이불을 물들인 코피에 힘없이 잠만 자려는 아이의 얼굴을 일주일간 쳐다보며 그동안 일상의 시간이 멈춘 것이 다시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옴을 알 수 있었다.     




 25개월. 음식 알레르기가 심한 내 아이를 위한 식단을 관리해주고, 그만큼 예민한 아이의 낮잠을 자도록 강요하지 않으며, 아이의 첫 사회생활을 스타트할 수 있는 곳.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ㅂ00 놀이학교. 매일매일 그날의 놀이학교 식단과 흡사한 모습의 맞춤 도시락을 아침마다 싸고, 거리가 멀어 라이딩을 직접 하면서도 정작 알레르기 수치가 높은 음식들을 섭취하였을 경우 아이에게 생기는 실제 증상을 난 그때까지도 알지 못했다.


  4세 같은 생일자 아이들과 함께한 놀이학교의 반짝반짝 시끌시끌한 생일파티 날. 난 새벽부터 아이가 먹을 수 있는 뽀통령 친구들 떡케이크를 손수 서울에서 공수해오고, 전날부터 금지된 음식이 들어가지 않은 수제 쿠키와 김밥을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이미 1년간 아이의 음식 알레르기에 대한 상태를 알리고 다녔던 곳이라 담임선생님의 그날에 실수는 도저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날 이후 아이는 1년간의 추억이 깃든 익숙한 교실과 계란이 들어간 일반 김밥을 먹고 자신의 입에 손을 억지로 넣어 토하게 한 그 담임 선생님과의 기억을 전부 거부했다.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다 점차 나아져 다른 반, 다른 선생님, 다른 친구들과 생활하게 된 아이. 그때 겨우 아이의 나이는 37개월. 그리고 그날 이후 음식 알레르기 쇼크를 경험함으로 인해 대학병원에서 처방해준 에피네프린 주사기를 처음 갖게 되었다.

 

 

 그날의 기억은 숨 막혔던 4살 아이와 나의 세상 끝 경험이자, 내 생애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끔찍한.. 뼛속까지 박혀버린 상처로 자리 잡아 영원히 남아있게 된다.     



  

 한번 더 평소보다 바빴을 선생님께 아이의 금지 음식에 대해 강조해서 말했다면, 아이가 아프단 말에 바로 달려갔다면, 아니 처음부터 끝까지 문 뒤에 숨어서 그날을 같이 했다면 이란 아무 의미 없는, 지나간 시간들을 붙잡고 한동안 난 아이가 겪지 말았어야 할 시간에 대한 죄책감과 후회로 살았다. 그리고 그때의 담임선생님을 많이도 미워하고 원망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그 흔하디 흔한 말. ‘아픈 만큼 성숙한다.‘


  난 그 이후 아이의 알레르기 수치에 따른 금지 음식별 양과 얼마를 먹을 경우 나타나는 증상 등의 실제 상태를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또한 그 위험에 앞으로 더 철저히 준비하고 대처해 가야 하며, 모든 치료법과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엄마로서 두 발 벗고 나서야 함도 깨닫게 되었다.


(그림출처:pixba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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