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제주 여행 때도 태풍 11호 힌남노와 12호 무이파를 연달아 몰고 다녔던 우리 가족.
역시나 이번 사이판 여행도 예외는 없었다.
결국 요놈의 비와 어김없는 동반여행이다.
가이드는 스콜성 비라며 금방 그치고 햇빛이 반짝반짝 얼굴을 내밀 거라 했는데..
사이판의 1월은 건기라는데 보통의 우기 때보다 더 많이 내리는 비와 함께 나선 둘째 날의 북부투어.
그곳에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사이판의 코발트 블루빛 바다색보다, 적도 가까이라 바다 끝 수평선이 살짝 동그란 곡선모양의 신기한 모습보다, 더 놀라운 역사적 사실과 흔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의 거주지인 경기도 수원보다도 크기가 작은 섬나라 사이판.
스페인, 독일, 일본의 순서로 지배받아온 모진 식민지 시대를 살아온 나라.
일본식민지 시대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픔을 겪어야 했었기에 공감대가 느껴지기도 했다.
사이판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는 포인트 지점.
만세절벽과 자살절벽이 있는 바로 그곳에 일본은 자기 나라가 이곳을 지배했다는 상징을 땅 곳곳에 새겨놓았고 충혼비를 새워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과감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당시 일본은 2차 대전을 치르며 우리나라 사람들을 강제징용해 이 먼 곳에서 총알받이로 썼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안타까운 이들이 죽어간 이곳엔 한국인 위령탑과 태극기가 지금도 그들의 혼을 달래고 있었다.
우리 가족은 짧은 순간이나마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돌아보며 묵념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셋째 날 마나가하섬으로 가는 길.
사이판 바다는 놀랍게도 산호초와 암초들로 자연방파제를 만들어 주기에 사실 우리가 아는 보통의 파도가 있는 해변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파도가 전혀 없는 잔잔한 물결만이 일렁이며 바닷속이 훤히 보이는 곳. 눈앞 먼바다 쪽에서 흰 파도띠가 보일뿐 눈앞에 잔잔한 바다는 진짜 신기하게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거의 없었다.
그곳에선 스노툴링을 안 하면 마나가하섬은 가나마나섬이 된다는 피식 웃게 되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으로 출발.
우린 섬에서 개인 스노클링과 단체 패러세일링이 예약되어 있는 상태. 다행히 이날만은 제발 날씨가 맑기를 빌어온 우리의 간절한 맘을 알아주는 듯 파란 하늘과 햇살이 얼굴을 내밀어 주었다.
예전 괌여행에서의 스노클링 경험이 있었기에 우린어렵지 않게 신기한 모습과 색색의 아름다운 물고기 떼를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식빵 부스러기를 챙기는 여유까지 부려 더욱 재밌고 투명한 바닷속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너무나 부드러워 설탕가루 같은 모래해변과 에메랄드빛 바다는 이곳이 진짜 사이판임을 충분히 실감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섬에서의 마지막 엑티비티 패러세일링.
이건 정말 무조건 강.강. 강추다.
작은 배로 3팀 정도를 싣고 빠르게 바다중간쯤을 달려간다. 멀미약은 필수다. 유창한 한국말 솜씨를 자랑하는 외국인 요원의 지시로 장비를 안전하게 착용 후 순식간에 배뒤로 멀리 바람과 함께 날아가버리는 사람들.
그리고 다음 우리 가족 차례.
그냥 곧장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쁜 모양의 우산을 펼친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어 더욱 겁 많은 내가 순식간에 이 낭만적이고 아찔한 경험이 충분히 가능했던 것 같다.
말이 필요 없다. 무엇으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 시원함과 황홀감은.
그냥 꼭 해보길.
그 이후는 PIC 리조트에서의 우중 물놀이, 캔싱턴 호텔의 고급진 조식부페와 바베큐 파티, 공연을 즐겼다.
기억에 오랫동안 남을 뜻밖에 한가지는 진정 마음으로 친절함의 끝을 보여준 우리말 잘하시는 사이판 현지 리조트 직원들이였다.
우리가족은 그동안 코로나로 숨막혔던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미세먼지 세상에서 탈출해 아주 잠깐의 여유와 콧바람을 쉬고온 즐겁고 행복한 충전의 시간이였다. 물론 돌아오는 사이판 공항입구에서부터 다시 마스크 장착하고 미세먼지 한가득한 우리나라로 지금은 컴백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