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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Dec 01. 2022

내 삶은 아이의 것인가 나의 것인가

40대 인생의 터닝포인트

 제주도는 제주도였다.

시월의 짙어진 가을 끝자락.

선선한 바닷바람과 푸른 하늘을 여지없이 우리에게 선물해주었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여행 온 손주는 마지막 날, 애월 앞바다에서 손톱만 한 게를 잡아보겠다고 두 팔 걷고 아빠와 나섰다. 하지만 여름과 달리 한결 추워진 날씨에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만 게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상황. 그렇게 아이는 아쉬움을 한 아름 안은채 돌아섰고, 제주도의 짧았던 가족여행을 마무리한 채 우린 서울행 비행기를 향해 공항으로 출발했다.



 

 제주공항의 출국을 위한 줄은 한여름의 성수기를 훨씬 못 미쳐 한산했다. 맨 마지막 줄에 비행기표를 들고 가족이 차례로 줄 서 있을 때, 갑자기 아이가 폴짝 뛰더니.

“ 앗! 모기다.” 하며 두 손을 번쩍 들고 점프, 박수를 짝!

힘이 다 빠진 가을 모기는 아이의 손바닥에 여지없이 납작하게 눌려졌다. 그리고 아이는 곧바로 자신의 엄마를 봄과 동시에 하얀색 엄마 티셔츠에 자신의 두 손을 벅벅 문질러 죽은 모기를 닦아냈다.

순간 너무나 부끄러워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나.

단지 평소보다 수위가 조금 센 아이의 수많은 장난들 중 하나였을 뿐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평소와 그 순간은 너무나 달랐다. 뒤통수를 망치로 쾅 얻어맞은 듯한 느낌. 잠깐 멍하게 5초 정도 그렇게 서서 난 얼음이 되었다. 평소 말이 없던 할아버지는 며느리의 가슴 쪽 옷에서 모기 시체를 떼어냈고, 아빠는 그런 아이를 조금 나무랐던 것 같다.




 내가 11년 동안 아이를 잘못 키웠나?'

' 아직도 철없는 저 아이를 어떻게 혼내지? 아니 난 무엇을 위해 그동안 살고 있었지? ‘

‘ 난 누구지? 지금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정신이 번쩍!

순간 내 시야는 안개로 뿌옇게 가렸던 세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며 그때부턴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사랑의 콩깍지가 제대로 벗겨진 느낌이랄까.

그다음엔 몰려드는 감정의 거센 파도 속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줄줄줄. 화장실을 간다는 핑계로 급히 공항 화장실 변기 뚜껑에 주저앉아 난 그렇게 한참을 서럽게 울었던 것 같다.


 그랬다.

내 인생을 굳이 변명하자면, 내 아이는 여러 가지 수의 음식 알레르기가 있어  항상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다.

그에 따른 사건사고와 치료로 정기적인 병원 출입을 해야 했고, 난 점점 더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언제부턴가 핸드폰을 켜도 웃고 있는 아이 사진, 읽는 책도 깔려있는 어플 아이의 교육 어플들, 항상 듣는 유튜브도 국영수를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아이의 알레르기 식단을 관리하며 하루 종일 아이의 학원 라이딩이 내 삶의 전부이자 스케줄이었던 나.

그렇게 아이는 나의 인생에 목표였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어제의 난 오늘의 내가 아니었다.

난 변했다.

먼저 아이의 얼굴을 핸드폰 대문에서 과감하게 지웠다. 그리고 그날 이후로 정말 진지하게 삶에 목표를 전면 수정하기로 마음먹었다. 앞으로 살아가야 할 목표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닌 나의 것으로.

그런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니, 막상 너무 막막하고 무엇보다 40대 중반에 절실히 무언가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것이 더욱더 나를 씁쓸하고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한 달 뒤.

12년 결혼생활 후 처음으로 아이도 남편도 없이 혼자 떠난 일본 여행.

일본 도쿄엔 초등학교 시절부터 절친인 친구가 결혼해 살고 있었다. 나와 아이에 대한 성장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내 친구. 갑작스러운 방문에도 기꺼이 환영해주었고, 하네다 공항에서부터 시작된 나의 고해성사를 묵묵히 들어준 친구.  


 이번 여행은 43세 내 삶의 궤도를 완전히 바꾸기 위한 잠깐의 쉼이자 나를 위한 위로였다.

터닝포인트의 시점.

그 길 위에 내 편이 되어주는 친구가 있었고, 마음 깊은 응원과 따뜻한 지지가 있었다.

이제부터 난, 내 아이의 삶이 아닌 내 인생에 진짜 주인공은 내가 되어 살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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