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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Dec 04. 2022

美味しくな ー れ 오이시꾸나레

40대 세상

美味しくな ー れ美味しくな ー れ

오이시꾸나레   오이시꾸나레

(맛있어져라~맛있어져라~)


까똑. 까똑.

도교에 사는 절친의  메시지.

김장을 했다고 응원해주는 마법의 주문.


적배추 3포기, 작은 무 2개, 콜라비 3개가 우리 집 텃밭 마지막 수확물로 부엌에 등장한 날. 이걸로 대체 무얼 해야 하나 며칠의 고민 끝에 결국 40대 중반 처음 김장이란 걸 해보기로 결심했다.


우리 아파트 2평짜리 텃밭 당첨 날.

자긴 금손이라며 신나 하는 남편과 무엇을 심을지 벌써 목록 작성에 들어간 아들.  그리고 나에겐 텃밭 일이 왠지  몽땅 내 것이 될 것이란  불길한 예감이 몰려온 날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집은 1년간 텃밭농사를 시작했고 상추, 호박, 수박, 브로콜리, 적배추, 강낭콩, 호랑이콩, 가지, 오이 등등 대박 난 풍년의 한 해를 보내게 된다.




김장.

야심 차게  맘먹었지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하지만 역시 우리 곁엔 네이버 친구가 있지 않은가. 친정엄마의 조언도 곁들여 시작한 것은

첫 번째, 배추 절이기.

적배추라고 다를게 뭐 있겠는가. 굵은소금을 잎 켜켜이 뿌리고 소금물에 절이기 3시간째.

부드럽게 줄기가 꺾여지면 잘된 거라는데, 여전히 힘껏 살아있는 배춧잎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건져 일단 물기를 빼보자. 

30분 후, 세상 참 편하고 친절하게 판매하는 1킬로 김치 속 양념을 꺼내어 옷에 색을 입히듯 한 땀 한 땀 정성껏 배춧잎마다 발라주었다. 크게 썰어놓은 무를 배추 사이사이에 넣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해놓고 보니 온통 주방과 내 옷은 빨간 세상.

에휴. 누가 보면 몇십 포기 한 줄 알겠다.

일단 뒷정리와 수습은 넣어두고 고고.

집에서 젤 큰 통을 찾아 차곡차곡 배추들을 넣고 두 번째 라운드인 깍두기로 넘어갔다.

작은 무과 콜라비깍둑설기해 소금에 몇 번 흔들어준 후 살짝 씻어두었다. 그리고 대파를 잘게 썰어 양념과 함께 버무려주고 끝.

그렇게 모든 과정이 끝나니 6시간이 어느새 훌쩍 사라지고 없었다.




하고 보니 뿌듯했다.

회사에서 한창 일하는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진짜 네가 김장을 했다고? " 신기해했다.

하긴, 나도 내가 김장을 할 줄 몰랐으니 12년 같이 산 남편도 그런 반응이 나오긴 하겠지.

저녁에 남들 다 하듯 보쌈도 시켜 그렇게 담근 김치와 깍두기로  옹기종기 세 식구 모여 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드디어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김장에 대한 남편과 아들의 맛 평가가 시작되었다.

우리 집 남자둘 얼굴에 미소가 사르르 번지며 입안 가득 신나게 들어가고 있는 김치들.


할만했다.

생각보다 별로 어렵지 않은데?

담에도 해볼까.

가끔은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은  쉽게 가고 쉽다고 생각한 것은 어렵게 가는 경우가 있다.

나의 첫 김장은 그렇게 비교적 성공이었다. 다행이다.


그날은  2022년 겨울의 첫눈이 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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