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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ul 05. 2023

빗소리다

후두두둑.

쏴..


시원한 빗소리다.

세상에서 가장 마음을 시원하게 적셔주는 소리다.


어릴 때부터 특히 여름의 시원한 장맛비 소리를 좋아했다. 앞이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굵게 내리는 빗소리를 듣고 있으면 그 어떤 세상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이 빗소리만 들릴뿐.

그냥 너무 좋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세상의 근심과 걱정이 시원하게 비와 함께 사라진다.




20대 시작.

막 대학을 들어가 겨우 2년째 되던 핑크핑크 빛깔과도 같던 그해.

답답한 대학교 기숙사를 나와서 자취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쯔음부터 유독 여름 빗소리를  좋아하게 되었던 나.


그날도 지금처럼 7월의 장맛비가 시작되던  날.

창밖에 너무나 시원스레 내리는 빗소리에 그만 순간적으로 온몸으로  세상 비를 다 맞아주리라는 생각뿐인 체 밖으로 훅 뛰어나갔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우산 없이 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참.. 이상한 여자아이다 싶었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땐 왜 그랬는지, 그 어떤 것도 아무 상관이 없었던 것 같다.


한참 비를 맞으며 집 근처 대학가를 신나게 돌아다니던 그때였다.

앞머리에서 빗물이 뚝뚝 떨어져 시야를 가렸고 그래서 두 눈을  손을 들어 닦는 그 순간, 나에게만  갑자기 비가 뚝 그쳤다. 아닌데. 비는 분명 여전히 오고 있는데..

위를 올려다보니 검은색 우산이었다.

그랬다. 누군가 비를 맞고 있는 내가 안타까웠는지 우산을 씌어준 것이다. 그 얼굴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선명하게 그날의 웃으며 괜찮다고 말한 후 바로 우산밖으로 총알같이 달려 나간 것 밖엔.



오직 나에게만, 나의 내면에 소리에만 집중하던 그 시절.

참 바람같이 한없이 가볍고 손끝으로 만져보면 솜털같이 부드러웠던 그 시절 앳된 나의 모습이 문득 떠오르는 7월의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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