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주말에 새로 어울리는 친구 무리들과 밥을 사 먹고 하루종일 어울려 놀기 시작할 때쯤이 그 시작이었던 것 같다.
아니 미용실에서 답답한 앞머리를 절대 자르지 말라고 반항할 때부터였을지도 모른다. 불러도 대답 없고 잠깐 곁으로 와보라고 해도 엄마의 말을 무시하던 어느새 눈빛부터 달라져 있는 아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샤워 후에도 정수리에서 요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한 건 올해 봄부터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일주일 전인 지난 주말까진 노랑노랑하던 여린 색깔이 갑자기 짙은 먹구름의 검은색으로 달라진 것같은난생처음 보는 내 아이의 그 모습에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누구니 넌?
혹시 그 말로만 듣던 사. 춘. 기. 인가.
새벽 3시.
잘 자다가 갑자기 온몸에 열기가 확 올라오고 화끈거려 눈이 번쩍 떠졌다.
이건 뭐지? 난생처음 겪는 온몸을 감도는 열의 여운과 충격이 남아 결국 잠을 설쳤다. 그때부턴 낮이고 밤이고시도 때도 없이 신호등을 켜지 않고 불쑥불쑥 열은 오르락내리락. 가족들이 에어컨 앞에 모여 앉아 같이 시간을 보낼 때도 나만.
" 왜 이렇게 덥지? 아들은 안 더워?"
머리밑이 간질간질하더니 거울 속에 난 어느새 진짜 가끔 보였던 흰머리도 갑자기 많아졌고, 방바닥엔 내 머리카락이 길어서 더 잘 보이나 싶어 짧게 커트를 했는데도 역시나 그대로. 내 머리카락 천국이다.
초등 5학년 12살 아이와 40대 중반의 난 그렇게 생각지도 못한2023년 6월여름의 문턱에서 갑작스럽게도 사춘기와 갱년기란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집 앞 활동반경이 과감하게 나의 레이더를 벗어났고,집에들어오는시간도 어울리는 무리의 멤버도 자신이 손수 결정해 나가던 어느 날.
갑자기 친구들 6명과 에버랜드를 가기로 했다며 용돈과 차로 태워다만 달라는 요구를 해왔다.
그 이후 몇 주일 간 친구들과 계획을 짜고 부모님의 허락을 받고 날짜를 조율하는 모습.
하지만 일이 커질수록 마음같이 놀이공원 계획과 진행이 순조롭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엄마가 액션을 취해주길 바랐다.
결국 난생처음 아이가 만든 무리의 엄마들과 연락을 시도하고 단톡을 만들고 의견을 나누고 오프라인 모임도 하게 됐다.
엄마들의 성격도 사는 곳도 다 달랐지만 딱 한 가지 같은 건 의도치 않게 만나 너무나도 어색한 상황 속에 사춘기 우리 아이들의 모습에 당황한 엄마들의 한결같은 보랏빛 얼굴이었다.
" 진짜 전 자기들끼리 말하다 그러다 말 줄 알았어요~"
"부모들이 다 안 된다고 거절하고 그럼 그냥 애들이 포기할 줄 알았어요~"
모두가 열이 올라 얼음 가득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을 앞에 두고 비슷한 상황의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그 와중에도 우리 아이들의 비슷한 성향들을 파악하고 12살 여름의 추억 만들기에 적극 동참해 주기로 합의를 보았다.
아이들은 실제로 코피 터지게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6월의 애버랜드는 너무나 넓고 뜨거웠고, 그 와중에 물총놀이(여름축제: 슈팅워터펀)는 우리의 온몸을 적셨다. 그리고 곧 이것도 사라지겠지만, 아이들은 차로이동과 표구입, 젖은 옷 갈아입기등의 부분에서 아직은 어렸고 엄마들의 도움이 필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과감해질지, 활동범위가 더 넓어질지, 또 어떤 요구들을 할지 벌써부터 겁이 난다.
부모에게 요구를 하는 건 대화를 한다는 것이니까 그나마 나은 것인가?언제부턴간 자기 방 문을 꽝 닫고 들어갈 것이다.외출도 여행도 더 이상 함께 하지 않으려 하겠지. 거친행동과 거친 말투들이 난무할 것이며, 자신의 신체변화와 정체성 확립을 위한 대혼란의 시기와 내적 갈등으로 청년기 성장에 몰두할 것이다.
사실,
난 많이 울었다.
아이의 귀염뽕짝 어렸던 모습의 사진과 영상만 하루종일 찾아보며 뻥 뚫린 가슴에 바람이 슝슝 들어오는 것만 같아 우울감이 순식간에 찾아왔다. 대체 어디 갔는지. 그 어렸던 내 아이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인가 싶어 속상했다.
그리고 인정해야 했다. 이젠 어느새 불쑥 커버린 아이를.
독립적인 어른. 성인으로 커가기 위한 과정 속 사춘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서서히 들어가고 있단 걸.
넌 사춘기시작이고 엄마는 갱년기 시작인 것 같다 아들.
우린 결국 건너뛸 수 없고, 당연한 순리대로 이 구간을 지나갈 수밖에 없다면 좀 더 현명하게 걸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