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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만 사는 정아씨 May 14. 2022

나는 뭐하는 사람일까?

호주로 떠나기 전, 어느 날

생각한 대로 사는 사람
살면서 생각하는 사람


'유 퀴즈 온 더 블록'을 보는데 MC가 사람들에게 '당신은 생각한 대로 사는 사람인가요, 살면서 생각하는 사람인가요?'하고  묻는 장면이 나왔다. 그걸 보고 나도 문득 생각에 잠겼다.


‘나는 생각한 대로 사는 사람일까?  

아니면 살면서 생각하는 사람일까?’

.

.

나는 이 질문에 한마디로 대답하기 힘들었다. 즉흥적인걸 좋아하는 나지만 어쩔 땐 생각하고 나서 행동하고 어쩔 땐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사람인 거지?


그렇게 한참을 생각하다 드디어 내가 어떻게 사는 사람인지 표현할 말이 생각났다! 



"나는 그냥 내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다."



운명을 믿으세요?


살면서 한 번도 하고 싶은 것을 못한 적도 없었고, 딱히 크게 바라는 것도 없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것은 해야 하고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아야 하는 성격이어서 딱 그렇게만 살아왔다. 어쩌면 이런 성격 덕분에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하고 싶은 것을 큰 노력 없이 다하고 살 수 있을 정도로, 큰 목적 없이 살아왔던 것 같기도 하다. 대학을 갈 때도 크게 하고 싶은 것이 없었고 목표로 잡은 대학도 없었다.  


친구들이 가고 싶은 대학을 말하고 무슨 과를 가서 뭐가 되고 싶고, 뭘 하고 싶다 등등 이런 얘기를 하는 걸 보고 다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있는 거 같아 내심 부러웠다. 그리고 그제야 나도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하고 싶은 건 찾지 못했었지만 어렸을 때 경찰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경찰행정학과, 행정학과 위주로 원서를 넣었다. 그리고 행정학과를 가게 됐다. 하지만 내가 받은 입학통지서 속 내 이름 옆에 적혀 있던 것은 뜬금없는 사회복지학과였다. 사회복지학과라니.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바로 전화를 걸어 입학통지서가 잘못 온 것 같다고 말했지만 당시 신입생은 학부제로 운영되어서 1학년까지는 임시적으로 사회과학부 내 사회복지학과로 배정받은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1학년 때는 공통과목들을 듣다가 2학년 때 전공선택을 한다는 말을 듣고 참 이상한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어쩌면 이때부터 내 인생이 새로운 길에 들어선 것 같다. 만약 내가 이때 붙었던 곳 중 하나인 다른 학교의 경찰행정학과로 갔다면? 아니면 원래대로 우리 학교의 행정학과로 갔다면? 나는 경찰이 됐을까? 물론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지만 만약 내가 경찰행정학과나 행정학과로 갔다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경찰 시험을 한 번이라도 치르진 않았을까. 


'인생은 선택이다', '우리의 수많은 선택이 모여 하나의 인생이 된다'는 말처럼 인생에서 선택은 처음과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처럼 생각지도 못한 우연이 나를 또 다른 길로 이끄는 걸 보면 운명을 믿지 않으래야 않을 수 없다.  


재미 만능주의


내 성격에 사회복지학과는 안 맞을 거라는 엄마의 말처럼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지만 또 귀가 얇은 지라 배우는 것은 비슷한데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나오니 사회복지학과로 졸업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선배의 말에 정신 차리고 보니 나는 어느새 사회복지학과 2학년 학생이었다. 


술과 친구를 빼면 내 대학생활은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누구보다 즐거운 대학생활을 보냈지만, 그러다 보니 성적은 엉망이었다. 게다가 학과도 맞지 않았으니 공부가 얼마나 하기 싫었을까. 


그래도 이대로 졸업할 순 없다는 생각에 선택한 것은 복수전공이었다. 2년이 지나 전과를 하기에는 너무 늦었고, 뭐라도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선택한, 이 역시 선택이라기보다는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고 싶은 게 있거나 더 공부하고 싶은 게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그나마 괜찮은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신문방송학과를 선택했다. 사회과학대에 소속된 학과들 중에 제일 재밌어 보여서 선택했다는 정말 부끄러운 이유였다.


그렇다고 떨어진 학점이 올라가진 않았지만 그래도 같이 수업 들으며 알게 된 신방과 친구와 마케팅 공모전 준비도 하고 첫 공모전 치고 좋은 결과도 얻었다. 사회복지 실습 후 하락했던 자신감도 되찾으면서 어쩌면 이게 내 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취업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었고 그저 그런 생각만 가친채로 졸업하게 됐다. 


복수전공을 하면서 졸업이 늦어져 내가 졸업했을 때 동기들은 이미 취업해 있었다. 그리고 후배들도 하나둘씩 취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전혀 조급한 마음이 없었지만 친한 친구가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말을 듣고 '아, 내가 너무 한심해 보이나?'라는 생각에 카페에 있다 노트북을 켜고 한 광고 회사에 지원했다.


그리고 면접을 보고 운 좋게 합격하게 됐다. 얼떨결에 취업을 한 것이다. 생각 없이 지원한 것 치고 일도 잘 맞았고 회사 다니는 게 정말 재밌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다 좋았다. 주변에서 스트레스받으면서 일하는 친구들 고민을 들으면서 나는 행복한 거구나 싶을 정도로 나는 회사가 좋았다. 


그렇게 회사를 다닌 지 2년 정도 되어 갈 때쯤 나는 갑자기 퇴사 선언을 한다. 


"나 회사 그만두려고."

"왜?"

"그냥.. 회사 다니는 게 재미없어." 


회사 가는 게 재밌다고 할 정도로,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했던 입사 초기의 내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전혀 겹쳐지지 않았다.  


'재미없다'


이게 내 퇴사 이유의 전부였다.


나중에 제주도에서 만난 한 친구가 내게 '너는 재미 만능주의잖아.'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그게 뭐냐고 물으니 '너는 재밌는 게 제일 중요하잖아.'라고 했다. 맞다. 퇴사를 한 것도, 갑자기 제주도로 온 것도 결국엔 재밌는 걸 찾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니까.


이제 나를 표현할 또 다른 수식어를 찾았다.  


재미 만능주의

; 재밌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사람이 어딨어


"엄마, 나 회사 그만 둘 거야."

"왜?"

"그냥. 일하기 싫어."

"에휴, 그래라. 근데 세상에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다들 힘들고 안 맞아도 참는 거지."


맞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 중에 하고 싶은 일만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엄마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도 비슷한 말을 하며 퇴사를 말렸다.


하지만 청개구리 같은 면이 있는 나는 오히려 묘한 반감이 들었다. 


'내 인생이고 내가 하고 싶으면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어차피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는 거잖아.'


더러, 정 그만두고 싶으면 경력을 2~3년 더 채워보고 그만두는 게 어떻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조금만 조금만 하고 미루다 보면 그땐 그만두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3년 채우자 하다 보면 5년이 되고 5년을 하다 보면 현실의 문에 부딪혀 떠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난 회사를 그만뒀다. 

그리고 제주도로 떠났다.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여기


제주도로 가서 게스트하우스 스탭을 했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아주 행복했다. 매 순간순간이 다 행복하다고 말할 순 없지만 매일 행복한 일은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빽빽한 지하철을 타고 출근해서 아이디어 짜고, 정해진 업무를 하고, 다시 또 그 빽빽한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지루한 일상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행복하긴 어렵다. 어떤 날은 좋고, 어떤 날은 나한테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되는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도 있다.


하지만 제주도는 달랐다. 물론 제주에서도 어느 정도 반복적인 일상 안에서 움직이는 건 마찬가지지만 제주도의 삶은 아주 여유로웠고,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덕분에 정말 행복했다.


만약 누군가 내게 인생에서 좋았던 때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제주도를 그중 하나로 꼽을 것이다.




떠난다는 건, 새로운 시작을 맞는다는 것


제주도를 떠나 다시 육지로 왔다. 집으로 돌아오자 무료한 생활이 다시 시작됐고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그래서 제주도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워홀을 가기로 했다. 처음엔 친구와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영국으로 가서 유럽을 돌자고 했다가, 워홀 후 세계일주를 하는 걸로 조금 더 꿈을 키웠다.


워홀과 여행이 내게 어떤 것을 가져다 줄 진 모르겠지만 나는 언제나 행복할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다.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많지만 응원해주는 사람도 분명 있고, 이번에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에 떠나기로 했다.


다시 떠난다고 했을 때 부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자신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포기할 수가 없어서 쉽게 떠날 수 없다고, 내가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나라고 지금 이렇게 떠나면 포기하는 게 없을까. 나 역시 무언가를 버리고 두려움을 안고 떠나는 것이다. 그저 나도, 그들도, 자신만의 기준점을 놓고 그 기준에 가까운 것을 선택한 것일 뿐.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도 정답은 없다. 


이게 바로 인생이 아름다운 이유 아닐까? 결국엔 그 누구의 삶도 완벽할 순 없다는 거니까.  

나에겐 그게 그 누구도 못난 인생은 아니라는 말로 들려 참 위안이 된다.


내 삶도 완벽하지 않다. 심지어 옳지도 않다. 이건 그냥 나라는 사람의 인생일 뿐. 


그렇게 나는 나의 삶을 사랑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더 행복한 사람이 되고자, 

다시 떠남으로써 나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기로 했다.


2019.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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