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늦은 이십 대 고백 1
나의 첫 직장 생활은 홍보회사 AE였다. 앞으로 공공부문 AE로 일하게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 정확히 AE가 하는 일이 뭘까 싶어 혼자 조용히 AE가 뭔지 검색해봤다.
AE
: 광고주와의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며, 광고 업무를 관리하는 사람.
이렇게 보면 굉장히 거창해 보이지만 SNS에서 우스갯소리로 떠도는 짤을 보면 AE는 "에? 이런 것까지 다 제가 해요?"의 준말이라고 할 정도로 AE 일의 경계는 한도 끝도 없었다.
그래도 지루한 건 질색인 나에게 매일 조금씩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되는 건 잘 맞고 즐거운 일이었다. 마치 게임 퀘스트를 하나씩 클리어해 가는 기분이랄까? 내가 이 일을 하며 조금씩 더 성장해가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고 재밌었다.
그런데, 나는 왜 그런 뿌듯하고 재밌는 일을 그만두게 된 걸까?
마냥 설레던 뽀시래기 시절
대망의 첫 출근 날! 설레는 마음을 안고, 어떤 일을 하게 될까 하는 약간의 불안과 함께 회사로 향했다. 처음으로 출근길의 꽉 막힌 지하철도 경험해 봤지만 그것마저 설레는 첫 출근길이었다. 하지만 나는 회사로 들어서는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회사 불이 전부 꺼져있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처음엔 회사가 망했나라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서니 어두운 사무실 안에 홀로 켜져 있는 모니터 하나가 보였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그 앞에는 누군가 앉아서 급하게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지?' 하는 생각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가 인사를 하니 그녀는 정신없이 키보드를 두들기며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아 제가 지금 너무 급해서.. 잠시만요."
"아, 네! 괜찮습니다."
사실 말은 괜찮다 했지만 나는 별로 괜찮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무도 없고 컴컴한 이곳이 혹시 이상한 회사가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십 분을 앉아 있다가 드디어 급한 일이 끝난 선배가 돌아보며 말했다.
"어머! 제가 불도 안 켜고 있었네. 미안해요. 정아 씨 맞죠? 제가 아침에 갑자기 급하게 수정할게 생겨서.. 다른 분들은 미팅 가고 오늘 큰 행사가 있어서 나머지 분들도 다 그쪽으로 나가셨는데 곧 오실 거예요."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회사 생활.
나는 그렇게 바빠 보이는 그곳이, 그리고 그 바쁨에 잠식된 선배가. 그 모든 것들이 마냥 멋있어 보였다.
처음엔 회사 생활 기본 중의 기본 업무인 전화받기와 서류 정리 같은 간단한 작업만 하면서 일에 지루함을 느껴가던 차에 하루는 처음으로 제안서 회의에 참여하게 됐다.
자유로운 회의 분위기 속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나에게 묻는 부장님의 말에 솔직한 내 생각을 말했고, ‘괜찮은 거 같은데? 그걸 좀 디벨롭해서 이렇게 해도 되겠다.’하는 그 말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는 회사에서 제안서 회의시간이 제일 즐거웠다.
이게 맞는 걸까?
늘 솔직하게 내 생각을 말해도 받아들여주는 좋은 직장 상사와 다 좋다고 칭찬해주는 선배들과 함께하는 회사 생활은 너무 즐거웠다. 홍보회사에 들어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으로 행복하게 회사를 다니던 중 이번엔 공모전 홍보를 맡게 됐다.
처음엔 공모전 홍보라고 해서 공모전을 홍보하고 알리기만 하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공모전 접수부터 시상식까지 전 과정을 다 준비하는 것이었다. 한 달 동안 거의 매일을 10시 넘어서 퇴근하고, 처음으로 주말 출근도 해보면서 직장 생활 첫 현타가 왔다.
이게 홍보회사 업무가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심사위원들에게 보낼 수기 작품들을 심사위원들이 보기 편하게 책으로 만들어 달라는 요청에 며칠을 프린트기 앞에 살며, 내가 지금 홍보 회사에 다니는 건지, 출판 회사에 다니는 건지 헷갈린 적도 있었다.
공모전 준비를 하며 이제 거의 당연시돼버린 우리 팀의 야근에, 하루는 오늘 저녁은 맛있는 걸 먹자고 회사 앞 새로 생긴 파스타 집으로 갔다. 하지만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메뉴판을 펼쳐보기만 하고 다시 회사로 들어왔을 때,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애꿎은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만 가득한 사무실에서 이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회사 너무 좋아, 나는 회사 가는 게 재밌어’라고 말하던 내가 매일 12시가 다 돼서 귀가하자 같이 살던 친구가 자다 깨 잠꼬대처럼 괜찮냐고 묻는 말에 모든 게 터져 눈물이 날 것 같다가도, 귀가하는 택시 안에서 택시 아저씨가 젊은 나이에 뭐 그렇게까지 일하냐며 그만두라고 농담으로 던진 말에 불쑥 화가 날 것 같다가도 '이것만 끝내면 되겠거니'라는 생각으로 그 시간을 버텼다.
그리고 드디어 지겹게 나를 괴롭히던 공모전이 끝나고 나는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됐다.
그걸 생각하는 게 일이시잖아요
내가 좋아하던 제안서 회의 시간이 찾아왔고, 열심히 아이디어를 내며 내가 하고 싶은 업무를 맡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해야 나의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메인 AE가 되어 한 프로젝트를 맡게 됐다. 내가 낸 슬로건으로 진행되는 사업이어서인지 더 애착이 가고 정말 열심히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는 주로 공공 PR을 맡았었는데 이곳 역시 한 공공기관이었다. 홍보라기 보단 정책 PR에 가까운, 딱딱한 주제에 딱딱한 곳이었지만 요즘 스타일의 광고로 바꿔서 그 딱딱한 이미지를 깨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낸 아이디어 대부분이 ‘좋지만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이유로 아이디어의 큰 틀은 유지하되 세부내용은 수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하지만 광고는 콘텐츠 싸움인데 세부내용이 수정되면 그 광고는 아예 다른 광고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중요한 포인트들이 수정될 바에 아예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게 낫지 않나 싶긴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내가 제시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은 것보다 나를 더욱 힘들게 했던 건 내가 받은 업무 중 하나였던 카드 뉴스 제작이었다. 카드 뉴스에 품을 들이는 것보다 다른 콘텐츠 제작에 더 공들여 보자고 했지만 내 의견보다 클라이언트의 의견이 더 중요한 게 이 바닥 현실이다. 물론 그래도 최대한 열심히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제대로 된 정보도 주지 않고, 목차만 있는 회의록 하나 보내주고 그 내용들 중 하나로 재밌게 콘텐츠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자그마치 주 5회, 그러니까 매일을 카드 뉴스 기획에 시달렸다. 1년 동안 진행하는 프로젝트였기에 그동안 만든 카드 뉴스만 해도 몇 개인가. 그러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아서 이걸로는 도저히 더 이상 뭘 만들 수가 없다고 했더니 부장님께서 같이 주제를 생각해보자고 하셨다. 하지만 부장님 역시 그 회의록을 보고는 만들 수 없는 것 같다고 하시며 이것과 관련된 자료를 좀 더 달라고 요청해보라고 하셨다.
하지만 프로젝트 초기 때부터 그런 요청은 수도 없이 했지만 오는 건 매번 그런 회의록뿐이었기에 결국 답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모든 공공기관들이 그렇진 않겠지만 새로운 걸 시도하면 이런 건 윗분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고 하고, 그래서 적당히 무난한 걸 보내면 이건 너무 재미가 없다고 퇴짜를 놨다. 그렇다고 돈이 많이 드는 건 공공기관이라 예산이 많지 않아 안된다고 하니... 정말 10안에서 100을 그려내라는 말 같이 느껴졌다.
한 번은 이러한 문제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솔직하게 말하니 담당자가 말했다.
"어렵긴 하겠지만.. 그런데 그걸 생각하는 게 일이시잖아요."
이 말을 듣고 나는 그날 처음으로 퇴사를 고민하게 됐다. 무작정 화가 나서만은 아니다. 처음엔 담당자의 그런 말에 화가 났다가, 나중에는 어쩌면 이건 정말 내 능력 부족이 맞는 것 같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늘 자신만만했던 내가 처음으로 내 능력을 의심하는 순간이 오면서, 결국 내 열정도 사그라들었다. 그 당시 내가 썼던 일기를 보니 내 모습이 다 쓴 성냥에 불을 붙이려는 것 같았다고 쓰여있다.
맞다...
당시 나는 새까맣게 다 타버린 성냥개비 같았다.
퇴사하겠습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지만 늘 입버릇처럼 말했던 ‘첫 회사 2년 다니고 그만두고 여행 다녀올 거야’라는 말을 지키기 위해 나는 적어도 2년은 다녀야 했다. 내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게 10월 끝자락이었고, 회사 다닌 지 2년이 되는 날은 그다음 해 4월. 그때부터 나는 내년 4월만 바라보며 살았다. 그러면서 ‘역시 나는 이 일이 맞는 것 같은데?’ 싶은 순간도 있었고, ‘아니야, 도저히 못 버티겠다’ 싶은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어느 순간부터 꾸역꾸역 회사를 ‘다니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잘해보고 싶지도 않았고, 하루하루 정해진 업무처리만 하는 기계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일의 퀄리티는 떨어졌고, 출근시간도 5분, 10분 늦기 시작하더니 어떤 날은 거의 1시간을 지각한 날도 있었다. 이건 명백한 나의 잘못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거야’라며 합리화했다. 지금 와서 늘 생각하지만 그때 나는 너무나 철이 없었고,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퇴사 계획만 세우며 살아가던 2월 어느 날, 하루는 대표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너 요즘 무슨 일 있니? 처음과 다르게 의욕도 없어 보이고.. 요즘 일이 힘들어?"
마치 나를 꿰뚫어 본 듯 한 그 말에 당황한 나는 아니라고 하려다 갑자기 생각을 고쳤다. 왜냐하면 아닌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다시 열심히 해볼게요.’가 아닌 ‘그만두고 싶습니다.’였다. 당황한 대표님은 자기가 꾸짖는 것 같아서 그렇냐며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라 하셨지만 나는 사실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던 거라 더 이상 열심히가 안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나도 참 대책 없다. 그렇다고 무작정 그만두겠다니..
그날, 긴 이야기 끝에 대표님도 결국 알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출근 마지막 날. 입사 초기부터 나를 가르쳐 주었던, 처음 대리님으로 만나 과장님이 된 나의 사수가 편지를 써줬다. 고맙게도 다들 선물과 편지를 주셨는데 과장님의 편지가 제일 기억에 남는 이유는 사실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힘든 클라이언트를 맡아 누구보다 잘해줬으니 너의 능력을 의심하진 마렴.’
마지막 회식을 하며 양손 가득 편지와 선물을 들고 집에 가는 길에 이 편지를 받고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열심히 살아본 적이 없다. 생각해보니 무언가를 정말 열심히 해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성격도 급하고 일이 쌓이는 게 싫어서 고민해보지 않고 기계처럼 찍어내던 콘텐츠들을 그럼에도 칭찬해주고 잘한다고 치켜세워주던 사람들 덕분에 나는 내가 정말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회사를 그만두기 전까지의 내 행동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나의 퇴사 후 계획들을 멋있다고 해주며 응원하겠다고 해주었던 그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지금도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202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