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끝자락, 29살이 된 나.
하지만 아직도 ‘내가 가장 하고 싶은 것’,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뭔지 찾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걸쳐 이루는 꿈, 누군가에게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하는 신념 같은 것 말이다.
나는 돈이 중요하지도 않고, 사회적 지위가 중요하지도 않다. 그냥 나는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인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걸 보면 나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같다.
아니면 그냥 나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어서일까?
꿈, 가치관이 자기 자신인 사람.
웃기다.
나도 모르겠다.
그냥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의 생활이 끝나고 다시 새로운 곳으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것, 그리고 그 속에서 또 다른 나를 알고 싶다는 것.
그뿐이다.
질문에 대한 선택지가 너무 많을 때, 우리는 아닌 것부터 지워 나가는 게 더 빠를 때가 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동그라미가 아닌 엑스를 찾아내는 과정인 것 같다.
이 과정을 지나고 나면 나에겐 동그라미만 남겠지?
2021.11.15 / 호주 온 지 746일째 되는 날
살면서 너무 힘들 때.
질량 보존의 법칙을 떠올린다.
내 인생의 총질량에서 고통을 다 빼고 나면 나중엔 행복만 남겠지라는 생각으로 버틴다.
만약 지금 인생이 너무 힘든 누군가가 있다면 함께 이런 생각으로 버텨보자고 말해주고 싶다.
‘밀도 있는 삶’
얼마 전 책을 읽다 마음에 꽂힌 문장이다.
부피만 크고 텅 비어 있는 것보다 보이는 크기는 조금 작더라도 속을 꽉꽉 채워서 밀도 높은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걸 해나가는 과정도 중요하다. 훗날 커다란 삶의 결과를 내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채워 나가는 현재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다.
남한테 보이는 것보다 나 스스로 뿌듯한, 비록 나만 아는 그런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밀도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런 작은 노력들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2021.11.17 / 호주 온 지 748일째 되는 날.
1년 넘게 고민하다 드디어 첫 타투를 했다.
본의 아니게 어쩌다 한 번에 두 개의 타투를 하게 됐는데 하나는 우리 가족을 의미하는 작은 상징적인 그림의 타투를 했고 하나는 나에게 의미 있는 문구의 레터링을 했다.
레터링 문구는 ‘Not my responsibility’인데 내가 좋아하는 가수인 빌리 아일리쉬의 Short Film 제목이기도 하다. 직역하면 ‘내 책임 아니다’라는 다소 당황스러운 문구지만 영상을 보고 저 말에 꽂혀서 타투로 새기게 됐다.
영상 속 내레이션의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사람들은 나에 대한 여러 의견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내 옷차림을 싫어하고 어떤 사람은 칭찬하기도 하고. 편하게 입으면 여자 같지 않다고 하고 몇 겹 벗으면 헤픈 여자라고 한다. 그런 것들로 나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의 존재 가치를 사람들의 평가에 두어야 하나? 아니면 그들의 그런 의견들은 애초에 나의 관할이 아닌 걸까?”
남들은 나에게 다른 사람들 눈치 안 보고 잘 살지 않냐고 하지만 나도 다른 사람들을 무척 신경 쓰는 편이다. 하지만 조금 다를 게 있다면 누군가 나를 두고 욕하거나 비난하는 등의 부정적인 말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지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 위해선 목을 맨다. 그로 인해 때론 내가 뱉은 말과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게 싫고, 그런 사람으로 보이기 싫어서 억지로 무리해 일을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나는 종종 나를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내가 뱉은 말이니 지켜야지, 적어도 끝은 봐야지 하다 보니 나중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며 정신이 번쩍 차려졌다.
남들이 나를 좋게 봐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하지만 그런 평가들에 휘둘리며 사는 건 내 인생이 아니지 않나?
마치 노란색을 좋아하는 어떤 사람이 ‘아니야. 넌 주황색이 잘 어울려서 항상 주황색을 좋아했잖아’라는 친구의 말을 듣고 자신이 주황색을 좋아한다고 착각해 버리는 그런 것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서, 사람들의 말과 시선에 휘둘리지 말고 진짜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소심한 나에겐 이런 주문 같은 말이 필요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내리는 평가들.
내가 도덕적, 윤리적 기준 안에서 산다면.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건 내 책임 아니잖아요?”
2021.11.18 / 호주 온 지 749일째 되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