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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만 사는 정아씨 May 22. 2022

What’s your dream?

내 꿈을 찾아서...


모두의 어린 시절이 그러했듯 나 역시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꿈 많은 아이였다.  


드라마나 영화, 주변 사람들의 말, 부모님의 바람 등 여러 가지 요인에 따라 내 꿈은 시도 때도 없이 바뀌었다. 초등학교 때 썼던 나의 일기를 보면 그런 모습이 너무나 솔직하게 담겨 있다.


<나의 꿈>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작가도 되고 싶고, 여경도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10개는 충분히 넘는다. 그중 뭐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회사를-직장을 다니기는 싫다.


‘회사를-직장을’이라고 쓰며 강조할 만큼 회사를 다니는 건 끔찍이도 싫었나 보다. 이 다이어리를 발견한 게 하필 퇴사를 하고 한 달 뒤여서인지 몰라도 참 묘한 감정이 들었다. 나는 그토록 되기 싫었던 평범한 회사원이 됐고, 그리고 그토록 하기 싫었기에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게 됐다. 어쩌면 나의 퇴사는 예견된 미래였을까.

 



‘하고 싶은 게 10개는 충분히 넘었던’ 나지만 그걸 선정하는 데 있어 나만의 기준이 있었다. 내가 되고 싶었던 것들은 '평범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갑자기 돌고래 조련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돌고래 조련사로 산다면 좋아하는 돌고래도 실컷 볼 수 있고 행복할 것 같았다. 고3 때, 대입 원서를 써야 할 시기에 돌고래 조련사가 되려면 어느 학과를 가야 하는지 알아보며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돌고래를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에 가둬 놓는 것이 동물학대라는 글을 보고 어쩌면 돌고래 조련사는 미래에 사라지는 직업 중 하나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나 돌고래를 좋아하면서 그게 동물학대라고 생각지도 못했단 사실이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로 진학해야 할까 고민하던 중, 늘 내 꿈 리스트에 올라 있었던 것 중 하나인 경찰이 되자는 생각에 경찰행정학과와 행정학과로 원서를 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난 무엇이 됐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으로 회사 면접을 보러 가던 날이었다. 엄마가 회사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굳이 거절하고 지하철을 탔다. 첫 면접이라 떨리기도 하고 걱정이 돼던 와중에 사람들이 웅성웅성거리며 내리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이어폰을 빼고, 지하철이 한동안 멈춰 있었단 사실을 알게 됐다. 잠시 기다리면 되겠거니 생각했지만 급기야 지하철에 문제가 생겨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방송이 나왔다. 언제 고쳐진다는 확실한 답도 없고, 생각보다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급하게 내려 버스를 타고, 버스가 돌아가는 노선이어서 다시 택시를 타고.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겨우 회사에 도착했다.


지하철이 고장 났을 때 미리 연락해 늦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지하철이 고장 났다는 것도 핑계로 볼 것 같고, 나는 그저 첫 면접에 지각한 사람으로 보일 거라는 생각에 너무 속상했다. 그리고 드디어 도착해서 회사 건물로 들어갔는데, 엘리베이터 앞에 붙어 있는 점검 중이라는 안내문...


회사가 5층이라 다행이긴 했지만 지하철부터 시작해서 오늘 일이 왜 이렇게 안 풀릴까라는 생각만 들었다. 그런 와중에 면접을 보다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중에서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 한 질문이 있다.


“정아 씨는 꿈이 뭐예요?”

.

.

꿈?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런데 돌연 내 입에선 나도 생각지 못한 답이 나왔다.


“제 꿈은 여행 작가입니다.”


여행작가? 내가 그런 꿈을 가지고 있었던가. 얼마 전 여행 콘텐츠를 보고 여행 영상을 제작하는 회사에 다니고 싶다고 친구와 얘기했었는데 그래서 그런 말이 나왔던 걸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그런 꿈을 간직하고 있었던 걸까?


답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나도 몰랐던 내 꿈을 그 자리에서 스스로에게 듣게 되면서, 면접이 끝나고도 오래도록 그 질문과 답을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나는 회사를 어느 정도 다니다 퇴사 후 여행을 다니며 여행 에세이를 쓰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됐다.

 



그 후로 나는 정말 2년 정도 회사를 다니고 그만두게 됐지만 그 뒤 계획은 실행하지 못했다. 처음엔 2년 정도 회사를 다니면 어느 정도 여행 갈 돈을 모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동안 펑펑 쓰기만 했더니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결국 나는 얼마 안 되는 퇴직금을 가지고 제주도로 갔다.


세계여행은 못 하더라도 제주살이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제주도로 내려가 게스트하우스 스탭을 하게 됐다. 게스트하우스 스탭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됐는데 좋은 사람들도 많았지만 정말 이런 사람도 있구나 싶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보통 제주는 한 달 살기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네 달 가까이 지내며 생각보다 오래 머물렀다. 그렇게 행복했던 제주살이가 끝나고 이번엔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난 친구들과 함께 호주에 가게 됐다.


제주도에서 게스트하우스 스탭을 하면서도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호주에 오니 더 많은 걸 배우게 됐다. 정말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짧게 스쳐가는 인연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호주에 와서 한 집에 많은 사람들과 오랜 시간을 부대끼면서 타인과 함께하는 삶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배운 것은 단 8글자.  


아.그.럴.수.도.있.겠.다.


이해되지 않으면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었던 과거의 나와는 달리 이제는 타인을 포용할 수 있게 됐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하고 화 내 봤자 결국 힘든 건 나 자신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아,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하고 넘기면 내 마음도 더 편해진다.


그리고 '나'를 알게 됐다. 28년을 살아오면서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났다는 자신감 하나로 살아왔는데 내가 부족한 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내가 못하는 것,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나의 부족한 점을 알게 되면서 이제야 정말로, 비로소,

나는 나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힘들고 재밌고 다했던 워홀로 어느 정도 돈을 모으고, 이제 여행을 가자! 하는 시기에 또 문제가 생겼다. 하지만 이번엔 좀 크다. 도저히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벽을 마주한 것 같다. 바로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 이건 내가 잘한다고 이겨 낼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문제이기에 더 답답하다.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또다시 여행을 포기해야 했지만 그로 인해 나의 미래와 나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지고, 돈도 더 벌게 됐고, 공부를 하고, 운동을 하게 됐다. 왜 하필 코로나가, 왜 하필 지금!이라고 생각하다가도 코로나로 인해 계획이 틀어진 사람이 비단 나뿐일까.


때론 포기하면서 더 많은 것을 얻을 때도 있다. 나에겐 지금이 그렇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꿈이 뭐야?"라고 묻는다면 내 꿈은 한국을 떠나서 느낀 것들을 글로 담아 에세이를 내고 싶다는 것이다. 이전에 꿈꿨던 여행 에세이와는 조금 방향이 달라졌지만 이 또한 여행 이야기가 아닌가. 나처럼 이곳저곳 옮겨 다니는 사람에게는 어쩌면 인생 자체가 여행이 아닐까?


당신의 꿈은 무엇인가요?

혹시 아직 꿈을 찾지 못했다고 해도 상관없다. 꿈은 내일이라도 생길 수 있고, 오늘이라도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거 해볼까? 저거 해볼까?' 고민하며 움직이다 보니 이렇게 생각지도 못한 곳에 와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것처럼, 쉼 없이 움직이다 보면 결국엔 내가 원하는 무언가가 생기고, 그것이 곧 내 꿈이 된다.


그러니 충분한 하루하루를 보내며 열심히 살고 있다면 언젠가 누군가 꿈을 물었을 때 자신도 모르게 '툭'하고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내가 내 꿈은 여행작가라고 대답한 4년 전 그 날처럼 말이다.


2021.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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