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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솜사탕 Apr 10. 2022

14화. 에릭센과 시력저하 그리고 진도런

만 28세, 뇌경색 판정받았습니다 │얼렁뚱땅 써보는 투병일기

 얼마 전 축구 선수 크리스티안 에릭센이 자신이 속한 덴마크 축구 국가대표팀의 친선경기에서 골을 기록했다. 또 최근 소속 프리미어리그 축구팀 브렌트포드에서 첼시를 상대로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축구 선수가 골을 넣는 게 뭐 그리 큰일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에릭센의 경우는 특별하다. 2021년 6월 유로 2020 조별리그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에릭센은 한동안 축구계를 떠나 있어야 했다. 다행히 빠르게 의식을 되찾았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소속팀이었던 인터밀란에서도 나와야 했고 다시 선수로서 일어서기까지 수개월이 걸렸다.

 

출처 : Christian Eriksen 트위터


 자칭, 타칭 축구 덕후인 나는 누군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를 물어보면 망설임 없이 '에릭센'이라 답한다. 지난 2018년, 독일전의 감동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던 나는 국대 경기와 K리그로도 모자라 프리미어리그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한국인 축구 선수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토트넘 핫스퍼의 경기를 가장 많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손흥민의 골을 보려고 클릭했던 경기 영상에서 골을 넣은 손흥민 선수가 아니라 그 골의 어시스트를 기록한 에릭센에게 빠지게 된 것이다.(물론 한국인으로서 손흥민 선수도 아주 좋아한다. 그렇지만 원픽은 에릭센!)


 이유는 간단했다. 에릭센의 축구 스타일이 내가 좋아하는 플레이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중거리 슛을 잘 차는 축구 선수를 좋아하는 나는 포워드보다 미드필더를 더 좋아한다. 자세히 말하자면, DMF보다는 AMF의 성격을 띠는 미드필더를 좋아하는 편이다. 골을 넣는 골게터 역시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 골을 만들기 위해서는 중원의 힘이 굉장히 중요하다. 나는 포워드가 미드필더의 어시를 받아 골을 넣을 때 그 골이 아니라, 기가 막힌 쓰루패스로 발 앞에 공을 갖다 주는 어시스트에 감탄하곤 했다.


토트넘에서 뛰던 시절의 사진


 에릭센은 종종 패스가 아니라 엄청난 힘으로 중거리 슛을 차 넣기도 한다. 거리가 먼 페널티박스 바깥에서도 엄청난 힘으로 시원하게 때리는 골을 볼 때면 내 속이 다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플레이 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기성용, 황인범 선수를, 해외 축구에서는 모드리치, 에릭센 선수를 좋아한다. (물론 메시건 레반도프스키건, 축구만 잘하면 다 좋아하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플레이는 이들과 가장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월드컵 때의 모드리치...못 잊어...)


 아무튼, 그래서 에릭센이 토트넘을 떠난 후에도 늘 응원하고 있었는데, 심장마비라는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엄청 놀랐던 기억이 난다. 90분간 그라운드를 누벼야 하는 축구 선수에게 심장 문제는 큰 일이었고, 다시 복귀하지 못할까 봐 걱정도 많이 했다. 그런데 9개월이 흐르고 국대 복귀 그리고 EPL 복귀뿐만 아니라, 골까지 기록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승리가 아닐 수 없다. 원래도 좋아했는데,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진 선수가 되었다.


 최근의 나 역시 일상생활로의 복귀에 힘쓰고 있었기에 더욱 에릭센에게 마음이 갔다. 물론 나는 심장마비처럼 크나큰 일은 아니었지만 내 인생에서는 나름 큰 사건이었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꿋꿋이 버텨 다시 그라운드를 밟은 에릭센의 복귀가 더욱 반가웠다.


 이제 덕심은 그만 집어넣고, 열심히 치료에 힘쓰고 있는 요즘 나의 일상을 말해보도록 하겠다. 얼마 전에 다시 이대목동병원을 찾아 안과 진료를 받았다. 몇 주 전 받았던 신경과 진료에서는 시력은 문제없으니 눈이 나아지는 것을 기다리라는 얘길 들었었다.(12화 참조) 그런데 안과 진료 결과는 달랐다. 분명 몇 주 전까지만 해도 1.0이었던 우측 시력이 그새 0.6으로 떨어진 것이다. 실제 시력은 그대로고 뇌경색 후유증으로 인해 눈이 잘 안 보이는 것이라서 언젠가는 나아질 거라 믿었는데, 이젠 실제로 시력이 저하돼버린 것이다. 이런 물리적인 시력 저하라면 다시 돌아오기가 어렵기에 참담한 기분이었다.


 나는 이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의사 선생님을 붙들고 재차 캐물었다. 이렇게 몇 주 사이 시력이 나빠질 수가 있는 건지,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이다. 의사 선생님은 일반적인 케이스는 아니며 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빠르게 시력이 나빠지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좌측 시력은 그대로 1.0이었고 우측 시력만 저하되었기 때문에 그냥 눈이 나빠진 것과는 달랐다. (뇌경색은 좌안에 발병했기에 난데없이 우안에 시력저하가 온 것이 의문스러워 여러 차례 검사를 당했고(?), 그 결과 실제로 우안 시력이 저하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대체 왜지...?)


 하지만, 시력이 나빠지는 것에는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있어서 지금 당장 무언가 치료를 하거나 손쓸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안경을 썼던 나는 22살에 라섹 수술을 받았었는데, 현재 알 수 없는 이유로 내 우측 눈이 라섹 이전으로 퇴행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상태로 보았을 때 시력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바로 안경을 맞춘다던지 렌즈를 낀다던지 하는 교정을 추천하고 싶진 않고, 발병 후 딱 한 차례 시력저하가 온 것이니 3개월만 더 기다려보자고 하셨다.

 

 뇌경색 환자들에게 시력저하가 찾아온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눈에 발병하지 않아도 흔히 일어나는 증상이었다. 그런데 난 눈에 생기기까지 했으니, 어쩌면 예견된 결과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얼마 전까지도 시력은 그대로고 뇌가 그렇게 인지하는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나는 이 시력저하가 너무 원망스럽기만 했다. 의사 선생님은 지내보다가 더 안 보이면 바로 병원을 찾으라 했고, 3개월 후에 내원했는데도 나아지지 않았다면 그땐 정말 안경을 맞춰야 한다고 설명해주셨다.(안경쓰기 싫어서 라섹한 건데!! 이게 왠 날벼락인지)


 단순한 시력 저하면 그냥 안경을 맞추면 되지만, 아직 뇌경색 회복기이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조심스러운 단계인 듯했다. 어쨌든 3개월 간 이 눈 그대로 살기로 한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택시를 타고 상암으로 돌아왔다. 이 날은 발병 후 처음으로 회사 동료들과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같은 부서에 있다 퇴사하여 요즘은 자주 못 만나고 있다.) 이런 기분으로 집에 가봤자 우울하기만 했을 텐데, 차라리 약속이 있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오늘 모이기로 한 동료의 집은 지난 2월 말 뇌경색이 발병해 주저앉았던, 바로 그곳이었다. 한 달 남짓의 시간이 지나 다시 이곳을 찾게 되었다. 그때 당시 모두 두 개로 보였던 로비에 다시 들어서니 기분이 묘했다. 이렇게 걸어서 여길 다시 오게 된 것만 해도 큰 행운이라 여겨졌고, 그러고 나니 시력저하쯤은 별일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오랜만에 만나 너무 반가운 동료들과 회포를 풀고, 맛있는 밥집에 가서 식사도 했다.


상암 온돈부리의 '사케동'
상암 온돈부리의 '모짜렐라 치즈 스틱'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어디서 어떻게 레이스를 시작할지 논의했다. 이 날은 우리가 모여서 댕댕이 레이스 중 하나인 '진도런'을 뛰기로 한 날이었다. 작년 10월 초, 아디다스 마이런 비대면 마라톤에 참가했던 나는, 비록 뛰어서 완주하진 못했지만 걸어서 11km를 완주했었고 그 기억이 굉장히 좋게 남아있었다.(당시에도 자궁내막종 수술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 뛰지 못하고 걸었다. 근데 이번에도 아픈 상태로 하게 되다니...뭐...마라톤을 하려면 크게 아프고 나서 해야 하는 징크스라도 있는 건가..?) 그냥 러닝이어도 성취감에 뿌듯했었는데, 이번엔 심지어 유기견에게 기부할 수 있는 마라톤이라니! 거부할 이유가 없어서 미리 신청해놨던 것이다. 발병 이전 건강하던 때에 신청했었는데,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병을 앓게 되는 바람에 완주는커녕 시도조차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진도런은 3월 내 완주해야 하는 프로그램이었고, 이 날은 3월이 이틀밖에 남지 않은 3월 29일이었다. 도전하려면 오늘이 적기였다. 지난 아디다스 런과 다르게 5.3km만 완주하면 되는 거였지만, 몸상태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서 걱정이 앞섰다. 그래도 꼭 해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같이 하는 동료들이 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각자 러닝 앱을 켜고, 상암에서 홍대의 한 빵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맛있는 빵집이라면 더 동기부여가 되지 않을까 싶어 선택한 경로였는데, 이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전략이 은근히 효과적이었다.(도착하면 맛있는 빵이 기다린다니! 설레잖아) 비대면 마라톤이지만, 나름 번호표도 달고 힘을 내 걸었다.


 셋이 수다를 떨며 걷자 심심하지도 않고, 같이 으쌰으쌰 하다 보니 발이 아파도 그냥 걷게 되었다. 그렇게 빠르게 목적지 근처 한강공원에 도착했다. 아직 완주는 아니지만 풍경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이때만큼은 나도 42.195km 뛰는 마라토너


 그리고 곧 머지않아 '블랑제리 코팡'이라는 빵집에 도착했다. 함께 러닝한 동료가 너무 맛있다며 추천한 곳이었는데, 먹어본 모든 빵이 정말 맛있어서 이 날 뒤로 빵순이가 되었다.(사실 핑계고 원래 빵을 좋아한다.)

홍대 빵집 '블랑제리 코팡'. 기본 빵 자체가 너무 맛있다.

 빵집을 나와 다시 빵을 먹으러 한강공원 쪽으로 이동하는 사이 목표 km를 넘어갔다. 아프고 나서 아예 도전조차 못하게 될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완주까지 해낸 그 기분, 지금 생각해도 너무 좋다. 우리는 실제 마라토너들처럼 각자 챙겨 온 메달을 목에 걸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터질 것 같은 다리를 잠시 쉬게 하기 위해 자리를 잡고 앉아 빵을 먹었다.


동료들의 초상권은 소중하니까 메달만 보세요

 빵을 다 먹고 나서는, 다시 걸어갈 힘이 없어 택시를 타고 다시 동료의 집으로 이동한 뒤,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누운 채로 박재범 & 아이유의 가나다라를 패러디한 이은지&이호창의 가가거겨를 보며 낄낄대다가 맘씨 좋은 동료 춘식이(가명)의 차를 얻어 타고 집에 갔다.(사실 얻어탔다기엔 방향이 전혀 다르고, 내가 너무 힘들어해서 일부러 데려다줬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진도런은 물 건너갔구나 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완주하게 될 줄 정말 몰랐다. 내가 빠르게 회복했다는 게 피부로 와닿았다.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글 도입부를 에릭센의 성공적인 복귀로 시작한 탓에 나의 자그마한 성취가 에릭센의 크나큰 골과 비교되는 것 같아 조금 민망하지만...완주 후 내가 느낀 성취감은 거의 그와 비슷했다.(물론 차원이 다른 성취지만!) 내가 좋아하는 선수가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도 큰 힘을 얻었다.


 이때 한 번 걷기에 재미를 붙이고 나서, 매일 하루 1시간씩 걷고 있다. 처음엔 어지럽기도 하고, 중간중간 의자에 앉아서 쉬어야 했지만, 이제는 나름 잘 걷는다. 눈이 잘 안 보이더라도 익숙한 동네는 그냥 걸어 다닌다. 뇌경색 재활에 걷기가 좋다고 하던데, 꾸준히 해서 건강한 신체를 갖는 게 목표다. 근데 한 가지 단점은, 그렇게 계속 걷고 운동하다 보니 왜인지 먹성이 굉장히 좋아졌다...(핑계인가?) 그리고 얼마 전, 진도런 완주 기록증도 받았다.

실제로 이 이름으로 받은 건 아니고, 본명과 참가번호가 모두 쓰여있는 기록증을 포토샵한 것이다.

 아무튼, 에릭센의 성공적인 선수 복귀를 축하하며!(토트넘으로 돌아와 줘 제발) 그리고 비록 시력은 저하되었지만, 진도런 완주한 나 역시 축하하면서! 이 세 가지를 욕심내서 한 일기에 다 담다 보니 연관성 1도 없는 제목이 완성되었다. 제목만 보면 대체 이게 뭔 내용이지 싶을 것 같네. 그리고 사실 이젠 이게 투병일기인지도 잘 모르겠다. 매번 짧게 쓰려고 하지만 하고싶은 말이 많아 또 기나긴 글 써버린 유솜사탕 집사의 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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