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법모자 김시인 Jan 24. 2024

내가 만난 책 이야기 35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알랭 드 보통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알랭 드 보통
 
알랭 드 보통, 신뢰하는 작가다. 책을 읽을 때마다 그의 넓고도 깊은 사유에 매번 반하게 된다. 이 책은 깊이보다 넓이를 지향한다. 한 사람의 철학자나 성인에 대해 깊이 고찰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중심 사상과, 작가의 사유를 함께 기술하고 있다. 또한 사진이 첨가되어 글의 이해를 돕고 있다. 동양과 서양의 사상이나 철학을 함께 소개하고 있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이다.    
 
부처의 사성제 중 첫 번째이자 핵심 진리는 고제(苦諦)다 삶이란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라는 의미다. 삶이라는 암막을 늘 염두에 두었기에 거기서 도드라져 나오는 것이 무엇이든 예리하게 알아보고 감탄했다. 그런 부처의 태도는 우리에게 유쾌한 절망의 기술을 가르쳐준다(84-85)
거대한 로마 제국이 무너져 가던 4세기 후반에 당대 최고의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 세상의 무질서를 설명할 방법을 찾고 싶었고, 그리하여 발전시킨 개념이 원죄다. 원죄설은 세상이 혼란스러운 이유에 대한 은유로서는 매력적인 시적 진실을 담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인류에게 지나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넌지시 말한다. 우리는 태초부터 다소간 불행해질 운명이었다(152-153)
알베르 카뮈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30-31)   
 
삶이란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라는 부처의 말, 원죄로 인해 태초에 다소간 불행해질 운명이라고 말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 신들에 의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는 시지프가 행복하다고 상상해야 한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을 통해,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인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사유하게 만든다. 우리는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이런 강박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 삶이란 원래 苦고 다소간 불행해질 운명임을 받아들인다면 시지프의 형벌을 닮은 인간의 운명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공자의 강의가 아니라 공자가 인생의 크고 작은 순간에 보여준 행동에서 교훈을 얻는다(38-39)
그분의 행위와 삶이 그분의 말씀보다 더 중요하며, 그분의 손짓이 그분의 사상들보다 더 중요해(싯다르타 213)
지식은 전달할 수가 있지만, 그러나 지혜는 전달할 수가 없는 법이야(싯다르타 204)   
 
유교 사상과 싯다르타의 말은 우리가 지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해법을 제공한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지식(앎)이 아니라 그 앎을 실천하는 행함에 있다. 앎과 행동함의 괴리를 좁혀나가야 하는 일, 그것이 수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세상에는 지식을 진리나 지혜인 냥 떠들어대는 인간들이 너무 많다. 그들에게 현혹되지 않으려면 스스로 깨어있어야 함도 이 구절들이 깨우쳐 주고 있다.    
 
불교에서 관음은 가톨릭에서 성모마리아와 유사한 위치를 점한다. 관음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당신이 지쳤다는 것, 배신당했다는 것,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것, 신물이 난다는 것을 이해할 뿐이다.(134-135)
자애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사상 중 하나다. 자애 명상은 거슬리는 사람 혹은 공격적이거나 차갑게 대하게 되는 사람을 매일 아침 곰곰이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평소의 적대감을 접어 두고 "부디 평안을 얻기를 기원합니다. 부디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바랍니다" 같은 정다운 문구를 왼다.(130)  
 
모든 종교의 궁극은 사랑이다. 그러나 종교는 여전히 자신들만이 진리라고 외친다. 자애는 자신에게 적대감을 가진 자에게조차 친절함을 베푸는 행위이다. 이는 숭고함과 닮아 있다. 종교인의 삶이란 이런 경지에 이르지 못한 자신을, 이런 경지에 이르게 하는 수행의 과정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자유로우며 삶을 변화시킬 선택권을 가진다는 사실을 종종 부인한다. 장폴 사르트르는 이에 '나쁜 믿음'이라는 용어를 붙였다.(172)   
 
'나쁜 믿음'은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고, 스스로를 작은 존재, 실패한 존재로 전락시킨다. 우리의 삶을 결정하는 것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자신 속에 내재된 '나쁜 믿음'에 기인한 내면 의식일지도 모른다.  
 
철학 없이도 삶을 살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철학은 인생의 난관을 대처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라 말한다.


이 책을 읽으며 철학은 위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전하지 못한 자신을 인정하고 긍정할 수 있는 힘 또한 철학이 주는 위안이다. 작고 보잘것없는 것에 매혹될 줄 아는 태도, 방해물을 만나도 문제없다는 듯 돌아서 흐르고, 이미 존재하는 모든 것의 윤곽에 우아하게 순응하는 물의 유연함을 배울 수 있다면, '지금 여기'의 삶이 충만함이며 감사일 수 있다.


#알랭 드 보통

#나를 채우는 일상 철학

작가의 이전글 詩詩한 일상 2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