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책 이야기 5

파이 이야기

by 마법모자 김시인

파이 이야기, 얀 마텔 장편 소설, 공경희 옮김


너무나 아찔한 이야기다. 열여섯 살 소년 피신 몰리토 파텔, 파이는 살던 곳 인도를 떠나 캐나다로 향하던 중 배가 난파되면서 가족을 잃는다. 그리고 작은 보트 하나로 태평양을 표류한다. 더구나 뱅골 호랑이와 함께.


죽음의 공포와 살아남아야 하는 과제 속에 홀로 남겨진 소년. 그는 227일간을 살아냈다. 나는 태평양의 넓이와 태평양의 깊이를 가늠하지 못한다. 또한 그곳에서 맞게 되는 밤, 어둠의 공포 또한 그렇다. 하지만 그의 곁을 줄곧 지킨듯한 착각을 일으킬 만큼 그의 두려움과 공포가 내게도 전이되었다.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신께 기도를 올렸고 신을 향한 믿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한두교도였지만, 이슬람 사원에 드나들고 교회에서 기도를 올린다. 그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신을 사랑하는 소년이었다. 신을 두고 편을 가르지 않았던 그의 믿음은 투명하고 순수했다.


파이는 신 못지않게 동물들도 사랑하는 소년이었다. 그는 동물의 특성을 인간에게서 발견하기도 하고 인간에게서 동물적 특성을 발견해 내기도 한다. 신과 동물 그 경계에 있던 소년이었다. 인간은 신을 닮고자 하는 존재지만 어떤 환경에 놓이느냐에 따라 신의 모습일 수도 동물의 모습일 수도 있다.


살면서 우리가 겪게 되는 일을 거부할 힘이 우리에겐 있을까? 가족이 모두 죽고 홀로 남겨진다는 것, 더구나 태평양 한가운데, 더더구나 언제든 내 목숨을 위협해 올 뱅골 호랑이와 작은 보트 하나에 남겨진다는 것을 그 누구도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파이는 자신에게 주어진 그 삶의 여정을 살아낸다. 절망과 공포와 두려움뿐일 지라도 그는 신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 책을 읽으며 인간의 의식은 얼마만큼의 극한 상황을 견뎌낼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또한 늘 안온하고 평화롭기를 희망하지만 두려움과 공포가 삶을 이어갈 희망을 제공한다는 사실도. 파이는 뱅골 호랑이와 함께가 아니었다면 그 시간을 살아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삶이 우리에게 건네는 아이러니다. 뱅골 호랑이가 파이의 내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슬몃, 들었다. 통제 가능하고 길들여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느 순간 부정의 감정이 나를 위협하기도 하고 좌절과 절망의 구렁텅이에 밀어 넣기도 한다.


얀 마텔의 문장은 너무나 견고했다.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성처럼. 그 견고함이 묵직함 메시지로 읽힌다. 인간은 나약하면서도 강인하고 신적이면서도 동물적임을. 신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 삶도 어느 날 우리 앞에 툭 던져놓고 우리를 시험할 수 있음을. 그리고 묻는다. 그 삶 앞에서 좌절하고 분노하면서 무너질래 그냥 살아낼래


난 그냥 살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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