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책 이야기 45
애드거 앨런 포 단편선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에드거 앨런 포/ 전승희 옮김/민음사
내게 포는 ‘검은 고양이’의 작가다. 그만큼 ‘검은 고양이’는 내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이었다. ‘검은 고양이’ 한 편으로 나는, ‘환상적이고 기괴하고 기묘하고 공포스럽다.’는 포의 작품에 대한 세상의 평가에 쉽게 동조했다.
이 책에는 열네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인간의 이성과 판단 너머에 존재하는 초자연적인 현상, 두려움과 공포, 광기에 대한 세밀한 심리 묘사로 독자들 역시 그 현상을 체험하는 듯 몰입감이 높다.
병 속에서 발견된 원고-고대유물판매업자인 나(화자)의 배가 난파하면서 유령선에 타게 된 이야기다. 그곳의 인물들은 화자의 눈앞에 있지만 과거의 기록처럼 존재하고 미래의 예언자의 모습으로 존재한다. 초자연적인 ㅜ
라지아-화자는 죽어가는 아내 로웨나의 모습에서 이전의 아내 라지아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 현상이 마약으로 인한 환각 때문인지, 그녀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면의 의식 작용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 존재한다. 화자인 나는 “인간이 연약한 의지라는 단점만 지니지 않았더라면 천사에게도 죽음에게도 완전히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의 의지는 연약하고, 그 연약한 의지를 지닌 인간은 결국 ‘죽음’이라는 자연 현상에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어셔가의 몰락-어셔가는 독특한 감수성을 가진 유서 깊은 가문이다. 극단적으로 예민한 로더릭 어셔는 이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로 무겁고 우울한 저택의 특성이 집안의 운명을 형성해 왔다는 믿음을 지닌 인물이다. 전염성이 강한 그의 미신이 화자에게도 영향을 끼쳐, 불안을 떨치기 위해 읽었던 책 속의 소리를 현실에서 듣게 되는 환상을 경험한다. 어셔와 화자 앞에 죽은 여동생이 나타나지만 공포로 인한 환상인지 실재적 현실인지 모호하다. 어셔는 저택의 돌, 그 위를 덮는 이끼의 배치 등 식물적 존재뿐만 아니라 무생물의 존재도 자신의 운명에 영향을 끼친다는 믿음을 가진다. 결국 어셔는 자신의 믿음에 의해, 오래된 저택의 몰락과 운명을 같이 했는지도 모른다.
윌리엄 윌슨-이 작품은 데미안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데미안과 싱클레어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개의 자아일 수 있다는 가정이 성립하듯, 끊임없이 자신의 비인간적인 행위를 폭로하는 윌리엄 윌슨은, 화자인 윌리엄 윌슨의 또 다른 자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규정해 놓은 선의 세계와, 그것에서 탈주하고 싶은 인간의 양면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군중 속의 사람-화자인 나는 수많은 군중의 옷차림만으로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낸다. 하지만 호기심을 가지고 뒤쫓은 노인이 왜 군중 속에서 방황하는지, 그런 행위를 반복하는지 알아내지 못한다. 우리 모두는 혼자이기를 거부하는 군중 속의 노인과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읽히기를 거부하는 책처럼, 누구도 타인을 제대로 읽을 수 없다. 결국 인간은 군중 속에서 살아가지만 철저히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피력한다.
소용돌이 속으로의 추억-바다의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생존한 노인이 화자에게 그때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자연현상의 불가사의함 그것은 인간의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신의 영역이다.
타원형의 초상화-눈먼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이다. 화가는 그림에 눈멀고 화가를 사랑하는 그녀는 화가에 눈멀었다. 화가는 자신이 눈먼 대상인 그림만 보고 있었기에, 그녀의 초상화를 그리면서도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대상에 집착할수록 대상을 벗어난 다른 사물들은 곁에 있음에도 그 대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당신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붉은 죽음의 가면극-붉은 죽음이라 부르는 역병을 피해 대사원에 모인 사람들, 완벽하게 외부 세계와 차단된 공간에서 그들은 날마다 먹고 마시고 취한다. 그러나 물리적인 성문을 봉쇄하고 외부 세계와의 완벽한 차단을 자신했지만,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무의식과 공포로 인해 텅 빈 존재인 유령에 의해 몰락하고 만다.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은 외부적인 요인이 아니라, 자신의 무의식에 도사린 불안과 공포라는 것을 인지하게 해 주는 작품이다.
구덩이와 추-극한 상황(죽음)에 내몰린 인간의 복합적인 심리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또한 종교재판이라는 명분으로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성과 잔인성이 여실하게 드러난다. 인간은 죽음의 순간까지도 삶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으며 죽음에 저항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준다.
배반의 심장-소리에 민감한 주인공이 함께 살던 노인을 살해하고, 자신의 귀에서 나는 소리를 견디지 못하고 범행사실을 자백하고 만다. 노인의 눈빛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노인을 살해하고 자신의 살해를 정당화하지만 결국 타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환청에 의해 죄를 자백한다. 화자가 들었던 환청은 자신의 양심이 자신을 벌하는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 고양이-나(화자)는 자신이 어린 시절 동물을 특히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을 고백하면서도, 인간은 지고하신 신의 모습을 본떠 만들어진 존재이며, 고양이는 한갓 야수에 지나지 않는 존재로 인식하는 이중성을 보여준다. 아내를 죽이고 사체를 벽에 은닉한 자신의 죄가 고양이에 의해 폭로되는 결과는 이런 인간 우월의식에 내려진 벌인지도 모르겠다
도둑맞은 편지-이 작품은 심리소설이나 탐정소설로 읽어도 좋은 작품으로, 인간의 복잡한 심리 묘사가 뛰어난 작품이다. 타인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에 있어 철저하게 주관적인 인간의 심리가 얼마나 많은 허점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상대방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자는 결국 자신도 파멸할 수밖에 없음을 시사하고 있다..
아몬티아도 술통-이 작품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는 그 자신도 같은 대가를 치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또 경쟁자에 대한 질투심이 얼마나 쉽게 인간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는가를 보여준다.
깡충개구리, 혹은 사슬에 묶인 여덟 마리의 오랑우탄-궁정에 잡혀 온 어릿광대와 난쟁이. 이들은 왕과 대신들의 유희를 위한 소유물이다. 어릿광대와 난쟁이의 신체적 결함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학대하는 행위를 통해 즐거움을 얻던 왕과 대신들은, 자신들이 하찮게 여기던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 한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생각나는 작품이다.
포의 단편을 읽는다는 것은 포를 읽는 일이다. 그가 얼마나 깊이, 인간의 감정을 들여다 보았는가가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집이었다. 그 안간힘이 작품마다 느껴져 모골이 송연해졌다. 그러나 결국 군중 속의 노인을 뒤쫓아 간 나(화자)가 느낀 막막함처럼 인간은 여전히 읽히지 않는 존재다. 인간은 초자연적인 현상에서도 살아날 수 있고,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 무너질 수도 있는 아이러니한 존재다. 어쩌면 포는 초자연적인 현상(신), 인간, 공존하는 동식물, 무생물까지 그 모든 곳에서 인간을 발견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배경들은 지하실, 오래된 저택, 폐쇄된 대사원, 구덩이 등 무겁고 어둡고 축축하다. 빛과 밝음의 반대편이다. 포가 주목한 인간의 심연 또한 날 것의 본능적 감정들이 꿈틀거리는 그 지점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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