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한동안 집에 있었다. 그 사이 아이는 차를 샀다. 차가 없으니 새 직장을 구하는데 선택지가 너무 좁다고 했다.
부모의 성향 중에서 닮지 말았으면 하는 것이 있고 이런 점은 좀 닮았으면 하는 것도 있다. 나는 소심하고 겁이 많다. 그래서 면허를 딴지 15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운전이 무섭고 서툴다. 둘째가 딱 그런 나를 닮았다.
우린 둘 다 지독한 쫄보였다. 비명도 호들갑도 닮은 모녀의 도로주행은 늘 아슬아슬했다. 아이는 차에 오르는 순간부터 심호흡을 했고 핸들을 잡은 손에 땀이 흥건했다. 덩달아 나도 심장이 콩닥콩닥 뛰고 간이 콩알만 해졌다. 심장이 쫄깃쫄깃하다는 표현의 의미를 제대로 경험하던 시간이었다.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와 길을 나섰다. 그러면서 조금씩 운전이 늘었고 우린 노래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아이의 휴대전화에는 엄마를 위한 노래만 모아둔 앨범이 있다. 아이의 도로주행 연습이 둘만의 데이트가 되었다. 함께 노래하고 함께 웃었다. 출발 전 우리는 항상 커피를 샀다.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커피를 마시는 티타임의 시간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일을 쉬면서 아이는 나의 우렁각시가 되어 주었다. 어떤 날은 양푼이 비빔밥을, 어떤 날은 스파게티를, 먹다 남은 치킨으로 치킨 덮밥을 만들고, 샌드위치를 만들고, 크림 리조또를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20대의 고용시장은 위태롭고 불안하다. 아이도 이직이 잦았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수만 가지 감정이 아이의 내면을 휘젓었을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면서 안쓰럽고 안타까웠다. 때로 능력 있는 엄마가 되어주지 못하는 나를 자책하기도 했다.
아이는 다시 일을 시작했다. 당분간 나의 우렁각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운전연습을 하면서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고 마음도 조금 더 가까워졌다. 그 시간이 감사하듯 아이의 새로운 생활도 감사하다.
나는 아이의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신명 나는 날들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내 아이뿐만 아니라 이 땅의 20~30대 청춘들의 오늘이, 그리고 내일이 신명 나는 날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그들의 신명이 세상을 춤추게 할 그런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