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책 이야기 15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아고타 크리스토프
이 소설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비밀노트, 제2부 타인의 증거, 제3부 50년간의 고독이다. '작가와 작품 해설'을 보니 각각 독립적으로 발표된 작품이라고 한다. 세 편의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도 의존적이다. 오롯이 각각의 작품으로 단정 짓기도, 한 편의 이야기가 되기도 애매하다. 그만큼 독자를 헷갈리게 한다. 이야기의 구성이나 시점도 다르다.
1부 비밀노트, 어린 쌍둥이인 우리는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 작은 시골 마을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에게 맡겨진다. 외할머니에게 사랑과 인정은 찾아볼 수 없다. 어린 우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몸에 채찍질을 하고 음식을 입에 되지 않으며 전쟁과 배고픔 박해와 폭력으로부터 자신들을 단련시킨다. 낮에는 농사를 짓고 가축을 돌보기도 하고 밤이면 밤거리에 나가 술집을 돌며 하모니카 연주를 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한다. 모래를 가득 담은 양말과 뾰족하게 갈아둔 돌과 면도칼, 한 몸인 우리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무기였다. 살기 위해선 양심을 버려야 했다. 심지어 살인까지도.
한 명이 국경을 넘으며 이야기는 끝이 난다.
2부 타인의 증거, 인물들이 드디어 이름을 갖기 시작한다. 언제나 우리로 살아왔던 클라우스가 국경을 넘고 남겨진 루카스는 그곳에서 삶을 이어간다. 클라우스와 떨어진 상실감에 한동안 넋을 잃었지만 루카스는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낳은 야스민과 야스민의 꼽추 아들 마티아스를 받아들이고 한 집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야스민과는 어떤 관계를 맺지는 않는다. 그는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도서관 직원 클라라의 집을 드나든다. 공산당 간부였던 동성연애자 페테르, 작가를 꿈꾸었던 알코올 중독자 빅토르, 불면증 환자 미카엘과도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빅토르는 함께 살기를 희망하는 누나가 있는 도시로 떠나고 루카스는 빅토르가 운영하던 서점의 주인이 된다.
3부 50년간의 고독, 1부에서는 한 몸으로 2부에서는 각자의 삶을 살아갔던 쌍둥이 루카스와 클라우스는 50년간의 고독에서 다시 재회를 한다. 3부에서 망명을 했던 인물이 루카스임이 밝혀진다. 둘은 오랜 시간 떨어져 지냈지만 문학에 대한 성향은 공통적이었는지 클라우스는 시를, 루카스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루카스는 자신을 부정하는 클라우스에게 자신이 쓰고 있던 소설의 원고를 완성해 주기를 부탁하며 떠난다. 루카스는 본국으로 송환되던 중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클라우스 역시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그와 비슷할 것임을 예감한다.
3부 50년간의 고독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무엇이 현실이며 무엇이 이야기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진실과 거짓의 구분도 어렵다. 두 인물이 한 사람의 내면의 욕구인지 진짜 쌍둥이 인지도 헷갈린다. 명징한 결말에 다다르고 싶은 독자에게 끝내 그런 결말을 안겨주지 않는다.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소설은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K시는 물론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쾨세그이다. 루카스는 나와 닮은 점이 많다. 내가 열 살 때 전쟁이 끝났다. 나도 어려서 국경을 넘었다. 루카스가 고국에 돌아온 나이가 바로 지금의 내 나이(55세)이다. 클라우스 쪽은 나와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오빠이다. 우리는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함께였다. 나는 오빠와 아주 가까운 사이였고, 나는 이 소설에서 소년으로 변신했다. 이 소설에서 기술하고자 했던 이별ㅡ조국과, 모국어와, 자신의 어린 시절과의 이별ㅡ의 아픔이다. 나는 가끔 헝가리에 가지만 어린 시절의 낯익은 포근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작가는 1935년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한 헝가리의 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고 한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는 작품 속 이야기처럼 진실과 거짓, 현실과 허구가 혼재한 모순의 삶을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인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무엇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제1부가 첫 번째 거짓말이고, 제2부가 두 번째 거짓말이고, 제3부가 세 번째 거짓말일까?(작품 해설) 국경을 넘은 루카스가 서명한 종이에 적힌 거짓말이었을까?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소년은 열여덟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Claus)가 아니다.) 클라우스가 식자공이 되어 신문에 인쇄했던 "우리는 자유이다.", "우리는 풍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등의 선전 문구였을까?
" 그래요, 가장 슬픈 책들보다 더 슬픈 인생이 있는 법이니까요." 감옥에 갇힌 루카스를 면회 온 서점 여주인의 말이다. 어쩌면 이 말은 작가의 말이기도 할 것이다. 가장 슬픈 책들보다 더 슬픈 인생,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다. 진실과 거짓이 혼재해 있고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모순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전쟁을 관통하며 살아낸 삶이라면 더욱.
56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지만 단문과 대화가 많아 쉽게 읽힌다.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더 몰입하게 되고 더 긴장하게 된다.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아고타 크리스토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