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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법모자 김시인 Aug 24. 2023

내가 만난 책 이야기 32

세월/아니 에르노

세월/ 아니 에르노

'세월'이란 단어는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 같다. 쉼 없이 흐르고 그 흐름 속에 우리가 놓여있다. 누구에게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우리는 세월을 따라 흐른다. 그 유장한 흐름이 삶이다.

아니 에르노의 '세월'은 개인의 서사이고, 가족의 서사이며, 프랑스의 서사이고, 유럽의 서사인 동시에 세계의, 인간 보편의 서사다.

'모든 장면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 책의 첫 문장이다. 그러나 이 문장은 반칙이다. 그녀는 기억은 집요하고 촘촘하다. 사라지지도 색이 바래지도 않았다. 때로 장중한 오케스트라 같고, 때로는 가족 음악회 같으며, 때로는 허밍 같다. 이 책은 '그녀'의 기억이고 '우리'의 기억이며 '사람들'의 기억이다. 그 속에 전쟁과 테러와 삶을 위한 투쟁이 함께 흐른다. 사랑이 있고 이별도 있다.

모든 생명은 태어나고, 자라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 이 모든 과정의 경험들은 개인의 기억에 각인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어떤 기억은 자신의 생 전체를 뒤흔들기도 한다. 사람살이는 시대와 시간을 넘어서있다. 이런 자연적인 순리가 왜 우리를 슬프게 할까? '퐁투아즈 요양원 현관에서 오후 내내 잠옷과 슬리퍼를 신고, 방문객들에게 전화번호가 적힌 더러운 종이를 내밀면서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부탁하며 울던 남자' 책의 마지막 장 그 남자가 '그'이거나 '그녀'이거나 '우리'이거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책을 덮으며 울게 된다. 우리들의 부모 혹은 우리의 모습일지 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세세하게 기억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무리다. 책을 덮으며 느꼈던 쓸쓸함과 애잔함은 기억 속에서 금방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월'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때면 어김없이 이 책이 생각날 것 같다.

많은 문장에 줄을 그었다. '세월'을 세상에 남겨놓은 그녀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부럽다는 말조차 할 수 없다. 감히 흉내 내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아서. 몇 번을 반복해서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책이다.



#세월

#아니 에르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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