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남매의 이별 풍경
어젯밤 새벽 1시 큰딸이 공항버스를 타고 우리 곁을 떠났다. 아빠가 인천공항까지 데려다 주겠다 했지만 돌아오는 길이 너무 멀다며 한사코 공항버스를 타겠다 했다.
캐리어 3개, 보스턴백 1개, 백팩 1개에 가득 짐을 챙겨갔다. 그것은 이제 그 아이의 삶의 터전이 이곳이 아닌 그곳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막내가 캐리어를 끌고, 둘째가 언니의 백팩을 메고 나란히 걷는 삼 남매의 모습을 남편과 나는 뒤에서 지켜보았다. 나란히 걷는 삼 남매의 모습이 눈물겹게 아름다웠다.
둘째는 한동안 눈물을 달고 살았다. 밥 먹다가 울고, 수다떨다 울고 웃다가도 울었다. 그 아이가 1년 동안 언니에게 얼마나 의지했는지,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큰딸은 가면서 남동생 용돈을 챙겼다. 둘째는 공항 가서 뭘 챙겨먹으라며 돈과 손편지를 언니 가방에 넣었다 했다. 막내는 군대에서 자신을 견디게 해 주었던 회중시계를 누나에게 주었다. 자신에게 소중한 물건을 누나에게 주고 싶었다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누나에게 장문의 카톡을 보냈다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애틋한, 서로가 서로에게 소중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아렸다. 서로가 서로에게 건네는 마음이 고맙고 감사했다.
2주 가까이 큰딸은 거의 매일 외출을 했다. 그 아이를 보내기 아쉬워하는 건 우리 가족만이 아니었다. 아이의 그런 인연들에 감사했다.
다시, 긴 이별의 시간이 될 것 같다. 서로를 그리워하고 서로를 걱정하고 응원하면서 우린 또 그 시간을 견딜 것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눈에서 멀어졌기에 마음엔 더 가까이 있다.
7년 동안 혼자 꾸려 간 외국 생활에서 아이는 단단해져 있었다. 그래서 이제 걱정은 안 하려 한다. 다만 참 많이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럴 때마다 그 아이를 위해 기도하리라 다짐한다. 엄마의 기도는 태평양도 건널 수 있음을 이제 안다. 함께했던 1년여의 시간이 떨어져 산 7년의 세월을 깡그리 잊게 했다.
그 힘으로 다시,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