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구운몽과 우울증'이란 이강옥 교수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처음 강의를 열며 참 이질적인 텍스트의 결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양소유의 삶을 통해 우리의 현실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그래서 구운몽을 다시 읽어야겠다 생각했다. 구운몽을 읽었다고 생각했다. 아니 읽었을 것이다. 책 속의 몇 장면들이 기억 속에 분명히 들어있는 걸 보면. 그런데 책꽂이에 그 책이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긴 일이 어긋 났을 때 느끼는 당혹감, 기억은 착각이 잦다는 사실을 다시 깨달으며 구운몽을 다시 읽었다.
성진은 육관대사의 제자로 불법을 공부하던 승려였다. 어느 날 육관대사의 심부름으로 용궁을 다녀오다 팔 선녀를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은 후 인간 세상의 영화로움을 마음에 품게 되고 양소유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태어나게 된다. 양소유는 성진이 품었던 생각대로 높은 관직에 오르고 여덟 명의 아내를 차례로 얻으며 온갖 영화를 누리고 산다. 하지만 어느 날 홀연 삶의 무상함을 깨닫고 불문에 귀의한다.
꿈에서 깬 성진은 자신이 현실의 인물이고 꿈속에서 양소유가 되었으며 자신이 진실이고 양소유는 허구라고 했다. 성진은 자신의 삶이 허구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육관대사는 이런 성진을 향해 아직도 꿈과 현실이 구분된다고 생각하느냐며 성진을 나무란다.
책은 성진의 삶보다 양소유의 삶에 훨씬 많은 비중을 할애한다. 그런데 양소유는 그런 자신의 삶을 부정한다. 양소유의 삶은 우리의 세속 삶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 또한 현실의 삶을 부정하며 현실을 벗어나야 하는 꿈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좇고자 하는 이상이나 꿈도 한낱 백일몽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세속 현실 속에도 존재이유나 삶의 가치는 존재할 것이다.
이강옥 교수께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현실을 꿈으로 보는 몽관 명상 수행(꿈 수행)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 현실을 꿈으로 보면 삶을 좀 더 부드럽고 원만하게 풀어갈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현실에서 불생불멸의 진리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강옥 교수님의 강의는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성진이 품었던 찰나의 생각이 양소유의 삶으로 성진을 이끌었다. 어떤 생각을 품는지에 따라 그 생각이 내 삶을 이끌고 감을 다시 깨닫는다. 육관대사께서 항상 손에 지니고 다녔다는 금강경을 들여다보며 이 봄을 건너고 있다. 그 뜻을 헤아리기에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가끔씩 나를 툭, 건드리는 구절들을 만났다. 이 또한 내가 꾸는 봄꿈일지도 모른다. 현실이 꿈일 수 있고, 꿈이 현실일 수 있는 삶, 그 몽환적인 시간들을 다시 껴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