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기록>
올봄, 몽환적인 시간을 보냈다.
이강옥 교수님의 강의를 듣다가 금강경사구게의 한 구절을 만나고(사람이 분별하는 마음으로 만든 모든 존재는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거품이나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 같이 볼 것이다) 구운몽을 다시 읽고 유튜브에서 금강경에 대해 찾다가 원빈스님의 '금강경에 물들다'를 만났다. 51강을 다 듣고 책까지 사서 읽었다. 지금은 '밀린다왕문경'과 '수심결'을 듣고 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봄이 다 지나가고 있다.
살면서 무슨 일에 이토록 몰입해 본 경험이 많지 않다. 부처님처럼 중생을 구원하겠다는 원보리심은 감히 꿈도 꾸지 못한다. 생각에 끄달리는 나를 붙들기 위한 시간이었다.
무주, 무상, 무아의 개념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앎과 실천은 또 하늘과 땅 차이지만. 그래서 마음공부가 필요함을 배웠다. 종교의 경전은 종교인이 보는 것이라는 편견도 버렸다. 불교가 펼쳐 보이는 무한 세계, 그 속의 나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었다.
문제의 원인은 밖이 아닌 안에서 찾아야 한다. 내 안에 길이 있다를 수없이 외치며 살았지만 그 의미를 이제야 조금 이해한 듯하다. 이 또한 공부였다. 나와 남에 대한 분별, 대상에 대한 집착, 나라고 믿었던 자아 그 모두를 하루아침에 버릴 수는 없다. 다만 그것에 사로잡힐 때 알아차릴 수 있는 힘, 벗어날 수 있는 힘 그것을 키워야 함도 배웠다.
남들보다 조금 예민한 마음결을 지녔다. 그것이 나를 문학의 길로 이끌었겠지만 생각에 끄달려 무너지기도 하고 쩔쩔매기도 하고 아프기도 했다. 언제나 나를 아프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한 건 나 자신이었다. 나를 닮은 아이들을 보며 어떤 충고라도 해 주고 싶었지만 나 자신도 알면서 못 하는 일을 아이들은 오죽하랴 싶어 말을 참고 그냥 기도를 한다.
종교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가끔 절에 가면 삼배를 올리기도 했지만 원하는 무엇인가를 놓고 올 때 양심에 찔렸다. 종교든, 사람 인연이든 때가 무르익어야 나와 인연 지어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힘든 날, 비스듬히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 준, 이 봄 금강경이 나에게 그랬다.
#금강경에 물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