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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법모자 김시인 Aug 18. 2023

내가 만난 책 이야기 31

점촌6길/ 배혜숙


8월 16일, 논문 1차 발표 원고 마감일이었다. 이 일에 매달려 7~8월을 보냈다. 놀아도 편하지 않고, 휴가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온전히 몰입한 시간보다 고민하고 걱정하며 보낸 시간이 더 많았다.


16일 원고를 보내고, 어제는 병든 닭처럼 시들시들 앓았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문득, 도서관에 가고 싶었다. 헐렁하고 널널하게 글을 읽는 즐거움을 맛보고 싶었다.


두 달 동안 많은 글을 읽었지만, 그 글 속에서 내가 원하는 뭔가를 찾아야 했고, 내가 쓰는 글 속으로 옮겨 와 알맞은 문장으로 앉혀야 했다. 그래서 글 읽기는 무겁고 뻣뻣한, 몸에 긴장을 더하는 일이었다.


수다도 고팠나 보다. 비를 핑계로 좋아하는 이와 나란히 앉아 진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나누고, 도서관 대신 집으로 왔다. 배혜숙 선생님께서 얼마 전에 보내주신  '점촌6길'을 펼쳤다.


점촌 6길은 울주군 범서읍의 도로명이기도 하고, 그곳에 위치하고 있는 카페 이름이기도 하다. 선생님과 몇 번 그 카페를 간 적이 있다.


 '점촌6길'은 주변 이웃들의 이야기가 많다. 자주 가는 공원,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 춘희 할매가 있고, 모니카가 있고,  뽄쟁이가 있다. 당돌하게 먼저 말을 거는 5학년 꼬맹이도, 이른 아침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들이키며 공원의 바구니그네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청년도 있다. 공원에 내리쬐는 햇살처럼, 그들에게 건네는 선생님의 시선이 그들에게 닿아있음이 느껴진다.


수필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이다. 그러나 절대로 편안하게 쓸 수는 없는 글이다. 이번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새삼 그 사실을 실감하게 되었다. 선생님의 글은 종횡무진 뻗어간다. 연산군이, 체호프가, 안드레아 보첼리가, 알랭드 보통이, 보르헤스가, 백석과 나타샤가, 파트리크 쥐스킨트가, 누란의 미녀가 등장한다. 러시아의 하얼빈으로, 남미의 매혹적인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리스본으로, 파키스탄의 카라코람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경험과 서사와 사유가 잘 버무려진, 문장 역시 군더더기 하나 없이 깔끔한, 배고픈 것도 잊고 몰입해서 읽었다. 무겁고 뻣뻣하던 머릿속에 기분 좋은 바람이 살랑거렸다.


책을 읽으며 자주 네이버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권진규의 '비구니'를 검색하고, 김창렬의 '회귀'도 찾아보고, 보첼리의 '생명의 양식'을 들었다. 정찬주 작가의 '스님 바랑 속의 동화'와 '책으로 가는 문' '달 너머로 달리는 말'은 알라딘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영화 '시스터 엑트'와 '해피투게드'는 시리즈온에 저장해 두었다.


선생님과는 도서관 독서회에서 만났다. 선생님께서 독서회 지도 강사로 오시게 되면서 맺어진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선생님의 글도 좋아하지만, 선생님의 인품을 정말 존경한다. 항상 겸손하시고, 먼저 베푼다. 배우고 싶고 닮고 싶은 분이다.


문학이 막연한 동경이기만 했던 시절, 나는 내가 만약 글을 쓰게 된다면 수필을 쓰고 싶었다. 도서관에 가면 늘 수필 코너를 서성였다. 정채봉 선생님의 글을 유독 좋아했다. 내게 가끔 수필을 써 보라 권하는 이도 있다. 나 역시도 기회가 된다면 수필 공부를 해 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의 '점촌6길'을 읽으며, 그 마음을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수필을 좋아하는 독자로 남아야겠다. 종횡무진 뻗어갈 사유가 부족해 금방 바닥이 드러날 것 같다.


#수필

#배혜숙

#점촌6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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