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불기’를 빌려 방향 찾기
작년 하반기에 철학과 학과장 교수님이 진행하신 동양철학 강의를 수강했다. 가볍게(?) 동서양의 미학적 관점의 차이부터 시작해 유교, 노장과 도교를 거쳐 선불교까지의 장정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매주 서양철학과 비교분석을 겸하며 시야를 넓혀주셨고, 물론 동양철학에 대한 명쾌하고도 깊이있는 이해도 도와주셨다. 나는 매주 3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얼이 빠진 채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오곤 했다. 정보량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고, 그것들은 모두 이미 전문가의 손으로 선별된 중요한 정보들이었으므로 어떤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수업 내내 안돌아가는 머리를 무리하게 가동시켰기 때문이다. 동양철학, 동양미학이 그렇게나 깊이있고 철저하며 아름다운 학문이라는 것을 나는 이 수업을 통해 알게되었다.
게다가 함께 들은 학우들은 대부분 당장 박사과정 밟아도 될 것 같은, 아니 이 선배들이 철학 박사과정을 안 밟으면 대체 누가 대학원을 가지? 싶게끔 방대한 지식과 날카로운 비판정신을 보여준 선배들이었다. 물론 철학 이중전공생들 틈바구니에서 부전공으로조차 철학을 택하지 않은 무지렁이에 불과했던 나는 정신없이 따라가기 바빴다. 그들의 핵심을 짚는 좋은 질문들, 하나를 알려주면 그와 함께 생각해볼만한 (나는 이름조차 낯선) 철학자의 사상을 끄집어내는 거미줄같은 사고체계. 여러모로 많이 배운 감사한 시간이었다.
종강날 교수님과 함께한 술자리로 그 수업은 끝이 났지만, 장자의 철두철미한 사회비판이나 조사서래의 같은 화두는 때때로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기억에 남는 가르침이 있다. 아마도 <논어> 위정편에서 가장 유명하고 잘 알려진 고사성어일 '군자불기'이다.
공자의 애제자 자공은 어느 날 스승께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스승님. 그래서 군자가 뭔데요.
여기서 공자는 어떤 단어에 대한 정의를 내릴 때 원칙적으로 금지되는 방식, 즉 부정어를 통한 정의내리기를 선보인다(물론 <논어>를 보면 군자는 어떤 인간상인가에 대한 여러 설명이 제시되어 있다).
-군자는 모름지기 그릇이 아니어야 한다.
현자들은 언제나 알쏭달쏭한 답만 제공한다는 걸 알면서도, 일단 당황스럽다.
그리고 이런 내용도 있다. <공야장> 제 3장에서 자공은 또 스승께 질문한다. 자공은 이번에는 그의 스승이 나름 우수한 제자인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알고 싶다. 또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스승님. 저 어떤 것 같습니까?
-너는 그릇이다.
-(저번에 군자는 그릇이 아니라고 하셨는데..ㅠ) ...그럼 저는 무슨 그릇입니까?
-호련이다.
이 문답은 공자의 병주고 약주기라고 할 수 있다. 호련이란 종묘에 제사 지낼 때 쓰는, 매우 귀한 옥그릇이다. 그릇 중의 그릇, 그릇의 최고봉이라, 따지자면 공자가 '너는 군자는 아니긴 한데 범인 중에 제일 낫긴 해'라고 말한 셈이다. 실제로 이 문답은 공자가 자공에게 더 정진할 것을 장려하는 동시에 자신의 매정한 평가에 애제자가 낙담하지 않도록 칭찬 아닌 칭찬도 슬쩍 해준 것으로 해석된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어떤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릇이라는 말을 쓴다. "걔는 사람이 그릇이 참 커." "넌 그릇이 그거밖에 안되냐?" 하는 식이다. 이 때 그릇은 (말 그대로 기물인 그릇에서 새로운 뜻이 파생된 단어이기는 하지만) 물론 사람 됨됨이, 특히 마음의 넓이 혹은 역량을 가리키는 말이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그릇>
2.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 또는 그런 능력이나 도량을 가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그렇다면 군자는 '그릇이 아닌 인간'이 아니라 한강물을 넘어 흑해의 수량 정도는 가뿐히 담을 만큼 그릇이 어마어마하게 큰 사람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공자가 말한 그릇은 우리가 말하는 그릇과 맥락이 약간 다르다. 우선 고대 중국에는 그릇의 종류가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부터 짚어야 한다. 지금도 우리는 간장종지, 밥그릇, 국그릇 정도는 구분해서 쓰지만 그때에는 차원이 달랐다. 그릇의 크기와 재료, 색상에 따라 담는 내용물도 사용되는 장소도, 사용하는 사람의 계급도 달라졌다. 신라시대에 귀족들이 계급에 따라 각기 다른 색의 의복을 입을 것이 엄격하게 요구되었던 것처럼, 고대 중국에서 그릇은 사용자/소유자의 계급을 알려주는 징표일 뿐 아니라 그가 가진 재력을 보여주는 과시용 사치품이기도 했던 것이다. 따라서 당시에 하나의 그릇은 현미밥도 담고 국도 담았다가 나중에는 식혜도 담을 수 있는 단순한 식기가 아니라 용도와 쓰임새가 엄격히 정해진 귀한 예술품이자 도구였다. 그렇다면 이제 공자의 말을 이해할 것 같다. 군자는 그릇이어서는 안된다. 다시말해, 군자는 하나의 정해진 장소나 때에만 역할을 하는 인물이어서는 안 된다.
성리학의 대표주자 주희는 '군자불기'에 다음과 같이 주석을 달아 풀이한다. "덕을 이룬 선비는 본체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고 작용이 두루 미치지 못함이 없기에, 단지 한 가지 재주, 한 가지 기예를 갖추는 데 그치지 않는다." 즉 군자는 하나의 용도(상황)에 국한되지 않고 어떤 용도(상황)에도 두루 쓰일 수 있는 완전한 자질의 소유자인 것이다.
유교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정명론이다. 정명은 말 그대로 '이름을 바르게 하라'는 뜻인데, 이는 곧 자신이 속한 구체적인 관계 속에서 맡은 역할과 분수를 충실하게 이행하라는 뜻이 된다. 서양은 개인 중심, 동양은 공동체 중심 사회라는 말이 있듯 극동(서양의 기준에서) 사상계의 대표주자 공자는 한 개인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으며 반드시 주변인, 사회, 국가 등과의 관계 속에 존재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공자에게 우리가 지향해야 할 인간상은 자기 혼자 잘먹고 잘사는 사람이 아니라 그러한 여러 관계 내에서 요구되는 여러 역할을 잘 알고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주의할 점은 어느 한 역할에만 충실하느라 다른 역할들을 등한시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나는 우리엄마 딸이므로 다른거 다 내팽개치고 고향으로 내려가 현관문을 두문불출하며 효도할거다? 그러면 군자가 되기는 그른 것이다. 나는 부모님의 딸이지만 오빠의 동생이며, 대학교에 소속된 학생이기도 하고, 서울 시민이기도 하며,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이며, 지구라는 귀한 행성 위에 잠시 머물다 가는 생명이기도 하다. 따라서 군자가 되려면 부모님께 효도도 해야하고, 썩 친하지는 않더라도 오빠에게 의지할만한 동생이 되어야 하고, 학생이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고, 우리 동네 골목을 깨끗이 사용하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고 법을 준수하는 건전한 의식을 가진 서울시민이어야 하며, 우리나라 돌아가는 일을 안팎으로 염려하고 국익을 증진하기 위해 글로벌하게 쓸만한 인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원을 귀히 여기고 자원낭비를 최소화하며 지구에 감사할 줄 알아야한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동시에 여러 관계 안에 있고, 지금 처한 상황에 맡게 되는 다양한 역할 의무를 가진다. 앞서 나열한 것들을 다 수행하려면 허리 휘겠는데, 싶지만 공자는 오히려 '예(관계 안에서 존재하고 행위함)'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라고 말한다. 사사로운 욕망의 주체로서의 '나'를 축으로 세상을 보는 것에서 벗어나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잠시 잊고살던 '예'를 '되찾을' 수 있다는 거다. 즉 우리에겐 앞서 말한 역할들을 모두 잘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이미 있다. 다만 자기중심적인 '나'를 벗어던질 때 가능하다('극기복례', '나'를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라).
이렇듯 한 개인은 여러 관계들을 통해 항상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하나로 규정되지 못하는 교차점에 서 있다. 나는 '엄마 딸', '대학생'처럼 하나로 정해진 역할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군자불기'의 가르침은 바로 공자의 이러한 기본명제에서 출발한다. 우리에게는 여러 관계로 인해 요구되는 수많은 페르소나가 있는데, 하나의 페르소나를 자신과 동일시하면 안되며, 여러 가능성을 살려둬야 상황 속에서 적절히 대처할 수 있다는 거다. 군자란 이렇게 어딜 가든 적절히 제 역할 해낼 수 있는 인물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은 이처럼 생각보다 묘사하기 쉽다. 어느 것 하나에(하나의 역할 혹은 자기중심적인 자아에) 갇히지 않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고 바르게 행위할 줄 아는 사람. 그러나 이상이란 간단할 수록 어려운 법이기도 해서, 자공마저도 호련에 불과하다는 평이 붙었다는 걸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유교 사상을(다른 모든 사상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주아주아주 피상적으로 배우던 고등학생 때에는 공자의 어떤 명제가 나오든 ‘진짜 유교답네’ 라고 생각했다. 어디 종갓집에 흰 한복 입고 희끗한 수염 길게 늘어뜨리고 뒷짐 지시고 불시에 귀가 멍해지는 호통을 내지르시곤 하는, 아무튼 몇 대 종손 할아버지께 무릎 꿇고 앉아 들어야 할 것 같은 내용이다, 싶었다. 그러나 작년 강의에서 (그 본래의 깊이를 생각하면 여전히 한없이 기초적이긴 하지만) 다시 유교에 대해 배울 때는 너무나 새로웠다. 내 안에서 '열녀'로 상징되던, 변질된 성리학의 폐해로써 왜곡된 유교사상, 그 선입견을 한꺼풀 벗겨내고 처음부터 다시 배운 공자는 정말로 불세출의 위대한 스승이 맞았다. 물론 편견을 다 없애고 보더라도 2022년의 20대 청년들이 보기에는 여즉 좀 꼰대같은 느낌이 없지않아 있을테지만. 그래도 공자 사후 2500년쯤이 지났지만 여전히 개인은 공동체/사회 밖에서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걸 우리는 알고 있고, 따라서 그 안에서 어떻게 자기자신과 주변을 함께 이롭게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강구했던 공자의 가르침은 정말로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이렇게 공자선생님을 새로이 공경하게 되었다는 글을 써 놓고, 정작 내가 '군자불기'를 마음에 새기게 된 이유는 공자선생님의 의도와는 조금 달랐다는 말을 꺼내려니 머쓱하기가 이루말할 데 없다. 나는 '군자불기'의 뜻을 앞서 길게 서술했듯이 꽤나 명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불기(그릇이 아니다)'라는 말은 내게만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다시 정립되었다.
누군가 작년이 내게 어떤 해였느냐고 묻는다면, "그릇이 되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하게 된 해라고 대답할 것 같다. 나는 작년을 기점으로 정말 많이 변했다. 작년 한 해는 '절대적인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 한참 애쓰던 나'에서 '절대적인 하나의 정답이 없어서 더 나은 삶이라고 생각하는 나'로 변해가던 해였다. 그리고 그 계기는 내가 온갖 생산적이지 못한 질문들을 만날 때마다 쏟아부어도 귀찮아하지 않고 차근차근 생각해 답을 돌려주던 친구와, 존경하는 선배가 추천해준 책 한 권이었다.
친구는 나를 만나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럼 나는 그 친구가 세상을 보는 내 시각을 뒤집어놓았다고 말해야 마땅할 것 같다.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을 때, 나는 "너는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진리가 정말로 있다고 생각해?" "만약 그런 게 있다면 모든 존재의 삶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 "니가 어느 날 절대적인 해답을 얻는다면 니 삶은 어떨까? 행복할까? 그걸 얻는 게 인간의 소명이자 진정한 행복인가?" "우리는 우리 존재의 시작점도 끝점도 알 수 없는데 이런 조건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대체 어떻게 찾을 수가 있지?" "모든 걸 창조하고 관장하는 인격신은 정말로 있을까?" "절대적이고 무한한 존재가 어째서 어떤 원리 자체가 아닌, 셈족 일신교 계통에서처럼 인격신으로 존재할 수가 있을까?" 등등, 다른 누구 앞에서도 꺼내지 않던 온갖 질문을 다 쏟아냈다. 아마 처음 만나자마자 그 친구가 마음에 들었고, 동시에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라는 걸 느꼈고, 그래서 세상과 삶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지 궁금했던 것 같다. 나는 내가 품고 있던 온갖 질문들의 해답을 결코 타인이 줄 수 없고, 오직 내가 결론내려야 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질문들을 입 밖에 낸 것은 정말 나답지 않은 짓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꼭 평생동안 그 친구가 내 앞에 떨어지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말을 쏟아냈다. 그리고 이렇게 질문을 두서없이 던지면 언제나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에 깔끔한 답이 돌아왔다. 친구의 요지를 정리해보자면, 절대적인 하나의 진리가 꼭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수많은 서로 다른 인간들의 차이를 묵살하고, 그 위에 군림하며, 보편진리이기때문에 그것을 거부하고자 하는 개인들에게 필연적으로 강요되는 진리라면, 자기한테 그런 진리는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친구가 나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고, 오히려 그래서 의미있는 답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무의식적으로 기대했던 게 실현되었던 셈이다. 나는 이후에도, 이미 친구의 대답을 짐작하면서도 끈질기게 방향만을 약간 달리하며 질문을 계속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진짜 귀찮았겠다 싶다. 지금은 해외에 나가 있는 친구가 귀국하면 맛있는거 많이 사줘야겠다.) 아무튼 친구의 명쾌한 대답은 내 머릿속에 차근차근 뿌리내려 자리를 잡았다.
나는 중학생쯤부터 쓸데없는 형이상학적인 고민을 달고 살던 학생이었다. 나는 어떤 외부적 원인도 계기도 없이 늘 불안했다. 바꿀 수 없는 과거가 인생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내 인생에 영향을 미칠까봐 불안했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는 내 통제 밖에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으며, 현재는 과거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하나도 즐기지 못하고 흘려보내 버릴까봐 불안했다. 주변 사람들과 아무 문제없이 일상생활을 했고 공부도 좋아했지만, 이런 생각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사회가 제시하는, 삶에 대한 서로 대립하는 여러 답 중 어떤 답도 정답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고 좋은 게 좋은거라고 그때그때 다수의 목소리에 묻어가며 사는 것은 용납이 안됐다. 나는 이왕 사는 거 어떻게든 의미있게 살고 싶었다. 다만 어떻게 살아야할지 몰랐고, 어떤 삶이 의미있는 삶인지도 몰랐고, 내가 어떻게 살고 싶은건지도 몰랐다. 뭘 믿어야할지, 무슨 생각과 경험으로 내 인생을 채워야할지 몰라서 삶이 채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조바심을 내고 겁을 먹었다. 인생이 무서웠다기보다는 인생이 너무 욕심나서 그랬다. 그래서 이유없는 불안감에 자꾸만 현실에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며 뭔가를 찾던 내 발을 땅에 붙박이게 해 줄 어떤 것이 필요했다. 의심할 필요가 없는 크고 단단하고 무거운 것. 틀릴 리 없고 나를 혼란스럽게 할 수 없는 곧은 길이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언제나 상대적인 기준을 넘어서있는 절대적인 것들에 매료되고 집착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그래서 내가 모태신앙이 아닌 것에 정말 감사한다). 서양전통철학의 이분법에서처럼, 신, 이데아, 시간에 의해 무너지지 않는 영원함 같은 것들. 그런 것들을 상상하면 손 끝을 살얼음낀 물에 담근 것처럼 감각이 벼려지며 가슴이 설렜다. 만약 진리라는 게 정말로 있다면 그것은 당연히 가장 위대하고, 아름답고, 불멸하리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을 하면 미친듯이 욕심이 났다. 그것들의 끄트머리라도 만져보고 싶었고, 그러지 못하면 내 삶은 완전히 무의미한 시간낭비일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동시에 늘 의심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 이데아, 영원함 같은 존재의 필연성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데카르트가 자신만만하게 선언했듯이 인간에게 어떤 본유관념이라도 있는 게 아닌 한, 나는 평생이 가도 그런 것들을 온전하게 짐작할 수조차 없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상태는 꽤 오랫동안 지속되어 나는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뭔갈 찾을 수 있을까 싶어 책들을 뒤졌지만 원하는 것을 얻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혹은 아마 확실하게도) 존재하지도 않을 하나의 정답을 찾겠답시고, 나름의 반짝반짝 잘 닦은 가치를 제시해주던 목소리들을 묵살했던 것이다. 나는 내가 찾은 것들을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내가 여태껏 그래왔다는 사실을, 책을 읽어도 늘 불안하고 불행했던 이유를 작년에서야 알았다. 그러자 내가 기억 저편에 밀어두었던 여러 목소리들이 동등한 중요성을 띄고 눈앞에 다시 살아났다.
마침 한창 이런 생각에 빠져있던 시기에 선배가 오강남 선생님의 <예수는 없다>라는 책을 추천해주었다. 그 책의 요지는 '종교 다원주의'로 귀결된다. 책에서는 내가 정답이라고 믿는 것이(설령 신/경전이 모든 정답이자 진리라고 가르치는 종교의 영역에서마저도) 모두에게 정답일 수도, 모두에게 정답일 필요도 없는 거라고 주장한다. 가장 배타적인 이미지인 한국 기독교에서 이런 말을 하는 분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물론 이런 주장은 한국 기독교계에서 진짜 엄청나게 까인다고 한다. 목사직 박탈당하기도 한다고...). 따라서 내가, 내 교회가, 내 종파가 주장하는 해석을 강요하거나 그것 외에 다른 해석/다른 종교를 압살하려 하거나 무가치한 혹은 틀린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된다. 이것을 '종교 다원주의'라고 한다. 이 책은 좋은 의미로 충격적이었고, 탁월하게 느껴졌고, 그때부터 '가치 다원주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의 주장은 언제나 일부 타당성을 갖는 한편, 제한된 시공간에 사는 나의 제한된 관점에서 나온 의견일 뿐이므로 일부 놓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주장이 얼마간의 무게와 가치를 지닐 수 있다면, 너의 주장도 마땅히 그럴 것이다. 이걸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가치 다원주의는 시작된다. 나랑 친구는 정말로 다른 인간이고, 각자가 생각하는 정의나 행복, 풍요로움은 다 다를텐데, 그래서 우리가 타인과 만나는 게 즐겁고 의미있는 건데. 그렇다면 인간에게 반드시 천편일률적이고 절대적인 존재들이 있어야 할 필요가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생각했다. 내가 언젠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유일한 정답을 찾게 되고, 그게 정말로 시공간을 초월해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하는 진리임이 확실하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그 정답때문에 친구의 삶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면, 아니 살짝 불편해지기만 해도 지금의 나는 그 정답을 갖다버릴 것 같다. 여기까지 생각하고서 나는 절대성이 내 안에서 여태까지 갖던 지위를 완전히 상실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나는 적어도 '삶을 의미있게 살기 위해' 유일한 어떤 것을 찾고싶다는 절박함을 느끼지는 않는다. 내 삶이 정답 없이, 길을 벗어나 이리저리 탈선한다고 해도 그것대로 의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길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길을 벗어날 걱정을 왜 할까. 이 간단한 생각의 전환은, 누군가에겐 너무 쉽고 당연할지도 모를 이 당찬 자세를 취하는 일은, 나에게는 엄청나게 어려웠고 오래걸렸다. 어릴때부터 가장 가치있는 정답을 낚아챈 다음 오직 그것에 의지하고자 했던 종류의 사람이라 그랬던 것 같다. 계속 그렇게 살았다면 잡히지 않는 정답에 언제나 불안해하는 사람으로 쭉 살았을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 않고 만약 유일한 정답이다 싶은 걸 어찌어찌 찾게 되었다면, 늘 안과 밖의 경계를 나누어, 내 안에 담을만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고집스럽게 판단하고, 선택된 하나만을 꽉 채워 담고, 탈락한 것들을 재고의 여지 없이 내팽개치고, 누군가 나를 통째로 뒤집어주지 않고서는 다시 나를 비워볼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 같다. 내 안에 담은 것과 담지 않은 것을 늘 구분하며 사는 삶. 내가 안과 밖을 나누는 경계 자체가 되는 삶. 이런 생각을 하다가, 견고하고 크기도 작으면서 쓸데없이 무거운 자기 그릇이 떠올랐다. 그릇이 떠오르자 반사적으로 '군자불기'도 떠올랐다.
나는 주어진 수많은 역할 중 하나의 역할을 해내는것도 서툴기 때문에 공자님께서 바라는 군자가 되기에는 단단히 글러먹은 사람인 듯 하지만, 어쨌거나 내가 되고싶은 인간상이 생기기는 한 셈이다. 'A같은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하면 또 내 성격 특성상 그걸 진리로 삼고 눈과 귀를 막을까봐, 아무래도 면목없지만 공자님이 사용하신 '부정법으로 정의하기' 기술을 좀 빌려야겠다. 그리고 슬쩍 '불기'라는 가르침도 내 입맛에 맞게 바꿔 잊을만하면 스스로 되뇌일 참이다.
내가 내 안에 담긴 것과 밖에 있는 것들을 고집스럽게 구분하며 사는 그릇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새로운 생각들, 편견을 가지고 보았던 과거의 의견들을 언제든지 다시 내 안으로 들일 수 있는 사람이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자기 뚜껑을 탁 덮으면 내 안에 담긴 게 세상의 전부가 되는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인생에서 믿는 것들이 중요한만큼 네가 인생에서 믿는 것들도 중요하다고 매번 새롭게 깨달으면서 살고싶다. 언제나 분명한 의견을 가지되 내 주장, 내 방식 외에 다른 것들에는 귀를 닫는 사람이 아니게 된다면 인생에서 바랄 것이 없겠다. 물론 지금은 갈 길이 한참 멀다. 군자는 몰라도 그릇은 되지 말아야지 싶긴 한데, 솔직히 군자 되는거랑 만만치 않게 어렵지 않나 싶다. 일단 불교철학을 부당하게 비난하는 사람을 마주하면 울컥하는 습관부터 어떻게 좀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