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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Aug 05. 2022

흑이 두려웠으나 흑에 살았다,<자산어보>

2022년 50번째 영화

제목: 자산어보(the book of fish)

감독: 이준익, 출연: 설경구(정약전), 변요한(창대)

줄거리: “이 양반은 대역 죄인이니 너무 잘해줄 생각들 말어”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세상의 끝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 호기심 많은 '정약전'은 그 곳에서 바다 생물에 매료되어 책을 쓰기로 한다. 이에 바다를 훤히 알고 있는 청년 어부 ‘창대’에게 도움을 구하지만 ‘창대’는 죄인을 도울 수 없다며 단칼에 거절한다. “내가 아는 지식과 너의 물고기 지식을 바꾸자" ‘창대’가 혼자 글 공부를 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정약전’은 서로의 지식을 거래하자고 제안하고 거래라는 말에 ‘창대’는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인다. 둘은 티격태격하면서도 점차 서로의 스승이자 벗이 되어 간다. "너 공부해서 출세하고 싶지?" 그러던 중 '창대'가 출세하기 위해 공부에 매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정약전'은 크게 실망한다. ‘창대’ 역시 '정약전'과는 길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정약전'의 곁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결심하는데...


나는 배우로 영화를 보는 버릇이 있다. 해서 이 영화를 개봉 당시 보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이준익 감독의 흑백영화를 좋아하고, 많은 분들의 추천을 받아 보게 되었다. 후회막심. 이렇게 좋은 영화를 왜 보지 않았을까. 왜 미루지도 않았을까. 영화가 끝나니 잔잔한 파도가 나에게로 밀려온다. 

정 씨 삼형제(정약전, 정약종, 정약용)는 서학(기독교)을 믿은 죄로 각각 처벌을 받는다. 약종은 죽고 약용은 강진, 약전은 흑산도로 유배를 가게 된다. 마을 벼슬아치들은 이놈은 대역죄인이니 잘해주지 말라고 하지만, 착한 흑산도 사람들은 그에게 거처를 베풀고 음식을 베푼다. 그리하여 가거댁의 집에서 머무르게 된 약전. 약전은 그 집에 드나드는 한 청년을 보게 된다. 청년의 이름은 창대. 창대는 학문이 밝아 이 마을에 안 읽은 책이 없으나 서자로 양반이 될 수 없는 몸이라고 한다. 그것을 안 약전은 창대에게 자신에게 공부를 배우러 오라는 친절을 베푼다. 하지만, 창대는 대차게 거절한다. 주자의 나라에 서학을 받아들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없다며 말이다. 속상해 술을 마신 약전은 바닷가에서 어슬렁대다 바다에 빠진다. 운 좋게 그 장면을 창대가 보고 구해준다. 그 연으로 창대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을 때, 약전이 구해준다. 


약전은 흑산도 사람들이 무엇을 하나 관찰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고기를 잡고 먹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길로 창대에게 가 내가 가진 지식과 네가 가진 물고기 지식을 교환하는 '거래'를 하자고 한다. 이것은 단지 거래일 뿐이라는 창대의 말로 둘의 교류가 시작된다. 약전은 해산물을 잡아 직접 배를 가르기도 하고, 궁금한 것은 하나하나 창대에게 물어가며 적어내려간다. 창대 또한 해석이 잘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약전에게 물어 쉽게쉽게 학습해간다.


하루는 약전에게 손님이 하나 온다. 갓을 쓰고 휘날리는 한복을 입은 약용의 제자였다. 약용의 제자는 약전에게 편지를 전할 겸 방문한 것이다. 약전과 나란히 앉아 이야기 나누는 제자를 보자니 부러워죽겠다. 나도 저기에 끼어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나한테 물고기 잡아와라, 먹 내와라 심부름만 시킵니까? 나도 배우고 싶다고요!" 약전은 단번에 창대의 속셈을 알아차린다.

위에서 말했지만 창대는 서자라 기회들의 제한이 있다. 사실, 창대의 아버지는 양반이다. 그러나 결혼하자마자 새 장가를 갔고, 새 부인과 낳은 아이가 창대이다. 창대는 억울한 마음에 아버지를 찾아가 자신을 호적에 올려달라 부탁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창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까지 쌓게 되면 그때 넣어주겠다고 한다. 창대는 그날을 기점으로 더더 열심히 공부한다. 실력이 나아진 창대는 아버지가 계신 나주까지 소문이 나고, 아버지는 그제야 창대를 호적에 올린다. 양반의 호적에 오른 창대는 꿈에 그리던 과거 시험을 본다. 소과는 합격, 대과는 불합격. 하지만, 아버지가 잘 나가는 양반이었으므로 창대의 자리 하나쯤은 거뜬히 마련할 수 있었다. 


창대는 벼슬에 앉았으나 자신이 원하던 삶은 이것이 아니었다. 기생을 끼고, 과도한 세금을 걷는 삶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게 피로도가 쌓여갈 무렵, 창대가 마음을 고쳐먹은 사건이 있었다. 아버지, 창대, 마을 양반이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였다. 한 남자가 낫을 들고 행패를 부리는 것이다. "3년 전 죽은 아버지한테도 군포를 걷어가고, 태어난 지 사흘 밖에 안된 핏덩이한테도 세금을 걷는다는 것이 말이 되오!" 남자는 남자인 것을 포기하겠다며 자신의 중요 부위를 낫으로 따버린다.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창대는 다음 광경에 더더욱 충격을 받는다. 무관심한 양반들, 울부짖는 여자를 향한 손찌검. 창대는 갓을 풀고 여자를 때리는 양반에게로 달려든다. 그날 밤, 창대는 고민한다. 아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양반에서 물러난 창대는 흑산도로 돌아간다. 돌아가기 전, 거처를 옮긴 약전을 보러 우이도로 향한다. '상중'. 약전은 책을 쓰고 돌아가셨다. 책 서문에는 창대를 향한 칭찬과 이야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너무 늦은 창대는 눈물만 흘릴 뿐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신분을 뛰어넘은 관계도 좋았고, 점점 흑산도 사람들에 동화되어가는 약전도 좋았고, 서로 배우는 관계이지만 각자의 생각이 확고한 것도 좋았다.(보통은 뜻을 같이해 싸우는 일이 없기도 해서) 그렇지만 끝은 똑같았다는 것. 방식은 달랐지만 두 인물 다 백성을 생각했다는 점은 같다. 마지막에 흑이었던 흑산도가 색이 입혀지는데 그 장면도 참 좋았다. 어두울 것만 같은 삶이었지만 서로를 만나 다채로워진 둘. 아름다웠다. 오래 기억에 남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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