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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Aug 14. 2022

파도가 몰아쳐도, 비행기는 날아<로마>

2022년 53번째 영화

제목: 로마(roma)

연출: 알폰소 쿠아론, 출연: 얄리차 아파리시오(클레오), 마리나 데타비라(소피아)

줄거리: 멕시코시티 내 로마 지역을 배경으로, 한 중산층 가족의 젊은 가정부인 클레오(얄리차 아파리시오)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는 흘러간다. 감독 자신을 키워낸 여성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은 이 작품은 1970년대 멕시코의 정치적 격랑 속에서 주인공들이 겪는 가정 내 불화와 사회적인 억압을 생생히 재현한다.


개봉 당시, 너무나도 보고싶은 영화인데 만만치 않은 러닝타임으로 미뤄뒀다. 이제는 미룰 수 없을 거 같아 보았다. 이 좋은 영화를 왜 미룬 거냐구요..! 참 따뜻하고 마음이 차오르는 영화였다.

클레오는 한 가정집에서 일하는 가정부이다. 매일같이 하는 집안일이라 고되지만, 안정적이다. 집주인인 소피아는 클레오에게 자유시간도 준다. 덕분에 같은 집에서 일하는 친구 가정부와 바깥에서 하루를 보내는 날도 있다. 하루는 친구 가정부와 술을 마시다 오랫동안 지낸 남자친구들을 만난다. 친구 가정부는 무리 중 한 사람과 영화를 보러가고, 클레오는 페르민이라는 남자와 다른 곳으로 놀러가게 된다. 페르민은 날씨가 좋다 했지만, 놀러간 곳은 집. 페르민은 자신이 배운 무술을 보여준다. 홀딱 벗은 페르민은 클레오에게 다가온다. 

소피아는 다섯 명의 아이를 키우며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한 가지 부족하 게 있다면 남편의 출장이 잦다는 것이다. 남편은 가끔 가다 휘황찬란한 차를 타고 겨우겨우 모서리를 맞춰 차를 댄다. 아이들은 아빠가 오는 날만을 기다린다. 타지에서 연구를 하고 있기에 가끔 집에 오는 남편. 남편이 떠나는 날, 아이가 소리지른다. "아빠가 개똥을 밟았어요!" 남편이 떠나는 게 싫어 괜스레 남편을 꼬옥 끌어안는다. 차가 떠나고, 개똥을 치우라고 몇번이나 말했냐며 클레오에게 화를 내는 소피아다. 평화로워보이는 두 여자의 일상에 갑작스런 파도가 몰려온다.


클레오는 임신을 했다. 월경이 늦어진다며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던 중 페르민에게 말한 클레오. 긴장했지만 호의적인 페르민의 반응에 한시름 놓는다. 영화가 거의 끝났는데, 갑자기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페르민(여기서부터 불안함 스멀). 하지만 영화가 끝나도 오지 않는다. 다음날이 되어도 오지 않는다. 배는 불러오는데 전할 사람이 없다. 그래도 대비를 해야하니까 집주인인 소피아에게 이야기하는 클레오. 자신을 자를 거냐고 묻는 클레오에게 소피아는 눈물을 흘린다. 보통 사람이라면 잘랐을 법도 한데 소피아는 어떻게 클레오를 이해했을까?

사실 소피아의 남편은 바람을 펴고 있다. 퀘백에는 일주일 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모두 다른 여자와 보낸 나날들이다. 소피아는 지인과 통화를 하며 남편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들 하나가 그 이야길 들었다. 클레오가 주의를 줬음에도 들어버린 이야기에 아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 소피아는 아들을 안심시킴과 동시에 클레오에게 윽박을 지른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 페르민을 찾으러 떠나는 클레오. 클레오는 페르민의 친구를 찾아가 그가 어딨는지를 알아낸다. 페르민의 무술훈련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뒤편에서 훈련을 따라하는 중이다. 마침내 수업이 끝나고 클레오는 페르민을 만난다. 아기 이야기를 전하니 페르민은 영화관에서 보였던 반응과는 달리 나몰라라한다. 더불어, 자신을 한번 더 찾아오면 배를 차버리겠다며 무술로 협박까지 한다.

출산이 임박한 클레오는 소피아의 엄마와 함께 침대를 보러간다. 바깥은 시위중이라 위험해 차를 타고 간다. 가게에 도착해 침대를 보던 중,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 들어온다. 뒤를 따라 총을 남자들이 들어오고피를 흘리는 사람들을 눈앞에서 죽인다. 페르민도 있었는데, 페르민은 차마 클레오를 쏴죽일 없었다. 순간, 클레오의 양수가 터진다. 급하게 병원에 옮겨지지만, 아이를 유산한다.


어느날, 자그마한 차를 사서 돌아온 소피아. 크고 휘황찬란하고, 무엇보다 집 모서리에 자꾸만 부딪히는 차보다 소피아의 차가 이 집에 더 어울린다. 소피아는 아이들과 클레오에게 휴가를 가자고 제안한다. 무거운 마음이지만 덕분에 바닷가로 휴가를 가게 되는 클레오와 소피아의 가족이다. 

저녁을 먹다 소피아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할 말이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빠는 집에 오지 않을 거라고. 출장에 가신 게 아니라고 말이다. 소피아는 출판사 일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한다. 집에 아빠가 없으면 허전할 것이라는 아이들의 말을 뒤로 하고, 아이들을 꼬옥 안는다.


알찬 휴가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클레오와 소피아의 가족들. 그사이에 남편은 왔다가 집 안 구조가 바뀌어있다. 낯선 환경이 어렵기도 재밌기도 한 아이들. 클레오는 짐을 풀고 다시 빨래를 시작한다. 계단을 오르는 클레오의 위로 비행기가 한 대 지나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내가 감당하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잘 잡고 따라갔다. 사실 감당할 수 있었던 만큼이었을까. 잔잔한 영화인지라 떠들썩하지도 않고 흐름이 현대소설 같았다. 

두 사람의 결속이 참 따뜻했다. 서로를 껴안고 이해하고 위로하고. 각자의 사정이긴 하나 비슷한 이유로 힘들었기에 서로를 쓸쓸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이었겠지. 그래서 음식점 밖에서 짧게 오가던 둘의 눈빛이, 둘의 시간이 잊히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아이들을 구하던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파도가 온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클레오. 아이들을 무사히 구해와 하는 말은 "나는 그 아이를 원하지 않았어요." 가련했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구하러 떠나는 당신은 참으로 위대했다. 

이런 사건들을 겪고 아무 일 없던 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담담했다. 그래서 슬펐다. '아무 일' 없던 게 아니니까. 

비행기는 하늘의 것이기에 땅에서 우리가 무슨 일을 겪던 뜬다. 클레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뜨는 비행기처럼,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갈 것이며 상처는 조금씩 치유될 것이다. 클레오와 소피아가 행복했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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