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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Jul 02. 2023

우리의 얼굴은 온전할까<쿠오바디스, 아이다>

2023년 46번째 영화

제목: 쿠오바디스, 아이다(quo vadis, aida?)

감독: 야스밀라 즈바니치, 출연: 야스나 두리치치(아이다), 이주딘 바이로빅(남편), 보리스 러(아들)

줄거리1995년, 세르비아군이 마을을 공격하자 보스니아 사람들은 안전지역인 UN 캠프로 피신한다. UN군 통역관으로 일하는 아이다는 남편과 아들이 캠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자 그들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어제 전쟁과여성 영화제를 통해 관람한 영화다. '평화 협상'과 번역의 실패-거래되는 생명들이라는 주제가 생경했기 때문이다. 나와 가까이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좀처럼 신경을 두지 않는 나라 듣고 싶었다. 영화 관람 후, 씨네토크가 이루어졌다.


*이 영화는 실화 바탕이다.


보스니아 전쟁-https://namu.wiki/w/%EB%B3%B4%EC%8A%A4%EB%8B%88%EC%95%84%20%EC%A0%84%EC%9F%81

스레브레니차 학살-https://namu.wiki/w/%EC%8A%A4%EB%A0%88%EB%B8%8C%EB%A0%88%EB%8B%88%EC%B0%A8%20%ED%95%99%EC%82%B4

UN 통역관인 아이다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 사이를 잇고 있다. 하지만 협상은 결렬된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포탄이 떨어지고, 보스니아 사람들은 UN 캠프로 몰려든다. 하지만, UN 캠프도 한계는 있었기에 어느 정도만 받고 문을 잠궈버린다. 그 소식을 들은 아이다는 황당해 UN군에게 문을 열라고 명령하지만 안전상의 문제로 어렵다고 한다. 대체 얼마나 많길래 싶었던 아이다는 높은 곳에 올라가 그 수를 확인하고 납득했다. 더불어 아이다는 그 위에서 캠프에 들어오지 못한 남편과 두 아들을 찾아야 했다. (아는 사람들에게 가족들의 위치를 물었으나 모른다는 답변이 빽빽해 아이다가 직접 나섰다.) 어떻게 아이다의 목소리는 닿아 가족들과 재회하게 한다. 캠프 안에 들일 명분을 생각하던 아이다는 마침 협상자를 구한다는 공지를 듣게 된다. 남편은 역사선생님이었고, 이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아이다는 군인과 협상하고, 마침내 허락을 받아내 캄캄한 밤 남편과 두 아들을 캠프로 데리고 들어오게 된다. 여기서, 협상자들의 이야기를 더 하자면, 아이다의 남편을 포함한 총 세 명의 인원이 협상하러 가게 됐고 한 명은 남성 영업직, 나머지 한 명은 여성 경제학자이다. 그들에게 문제가 있다면 협상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라는 거다. 머리가 똑똑하다는 이유로 뽑힌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애초에 세르비아군은 협상할 목적이 없었고 당연히 그런 협상이 잘 될 리 없다. 민간인을 살려주겠다는 건 눈속임일 뿐이다.

재협상을 시도하지만 폭력적인 세르비아군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 다짜고짜 캠프에 찾아와 안에 군인이 있는지, 무기를 가진 자가 있는지 보겠다고 한다. 보스니아는 어떻게든 세르비아의 비위에 맞춰 민간인들을 살려야 했으므로 캠프에 들어가게 한다. 다시 말해, 세르비아가 우위에 있던 셈이다. 세르비아는 우선, 아이와 여자들을 구출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자는? 남자는 그들과 갈라져 탈랑다로 향한다. 폭력적으로 몸 검사를 당하며 차에 오르는 사람들. 여성 군인은 남자들을 총으로 쏴죽이는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소식은 아이다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아이다는 가족을 지켜야 했다. 그들도 남자였기에 들키면 탈랑다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다가 가족들을 UN 사무관으로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안, 남편과 아들은 세르비아군의 손에 잡혀 트럭에 실리고 있었다. 남편과 아들이 도착한 건물엔 사람이 빽빽하게 차 있었다. 이제부터 영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창문들 안으로 총구가 겨눠진다. 시끄럽게 울어대는 방아쇠. 그 옆에서 축구를 하던 아이들은 도망간다. 시간이 흘러 전쟁이 끝난 보스니아에 돌아온 아이다는 선생님을 맡고 있다. 그렇게나 찾아 헤맨 가족들의 유해도 찾았다. 학교 학예회 날, 그곳엔 살아남은 사람도, 죽인 사람도 한데 모여 웃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마냥 웃고만 있지 않다. 어딘가 깊게 패인 아이다의 얼굴을 비추며 영화는 끝이 난다.


전쟁 영화를 관람하고 늘 하게 되는 생각은 '전쟁은 일어나선 안된다'이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이고 아무렇지 않게 피가 흐르고 살이 드러나는 상황에서 인간의 존엄은 짓밟힌다. 겪지 않아도 되는 일을 겪을 필요가 어딨겠는가. 남자들을 한 건물에 모아 학살하는 장면과 학예회 장면이 인상깊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담담하게 보여주는데 전자의 경우 다른 장면들보다 차갑게 담았다. 이런 일에 익숙한 것 마냥 놀라는 아이 하나 없이 도망가고, 카메라는 대문 밖으로 빠진다. 이게 현실이에요라고 보여주는 것이었다. 후자는 전자와 달리 결의가 돋보였다. 이러한 장면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며 끝까지 직시하겠다는 눈빛들. 그래야만 한다. 

영화가 끝나고 이뤄진 씨네토크에선 평화부터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다. UN도 힘의 논리에서 약자이며 불리한 상황에선 전쟁을 용인하기도 한다는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평화를 위해 존재하는 기구 아니냐고 물으신다면 그것도 맞지만 '국력'도 무시할 수 없다고 했다. 더불어, 국제법은 있으나 강제력이 없고 각각의 정부가 세계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므로 모두에 맞춰줄 수 없다고 했다. 

<쿠오바디스, 아이다>에선 다양한 여성들도 등장했다. 출산하는 여성, 돕겠다고 말하는 여성, 자신의 가족을 지키려는 여성(모성 얘기도 재밌었다!), 마지막으로 전쟁통에 빨래하는 여성까지.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일상을 이어가는 여성들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여성에게만 국한된 모습은 아닌 것 같으면서 어쩌면 습관처럼 붙어있던 책임감이 튀어나온 것은 아닐지 궁금하지만 해설의 답변은 이러했으므로! 집에 오며 곱씹고 또 곱씹었다. 생각할 거리가 수두룩하다. 여성들은 현재에도 전쟁을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씁쓸해졌다. 보이지 않는 총을 든 사람이 많다. 살아갈 날이 많은데 어디서 뛰쳐나올지 모르는 총알을 다 받아낼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우린 어디로 가고 있을까. 날이 서다 못해 양쪽으로 모두 날이 나버린 혐오의 시대를 지나 어느 지점에서 평화와 만날 수 있을까. 대체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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