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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Aug 01. 2023

<쇼코의 미소>

2023년 5번째 책

제목: 쇼코의 미소

작가: 최은영

줄거리2013년 겨울, 「작가세계」 신인상에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가 당선되어 등단, 그 작품으로 다음해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인상으로 다가갔던 최은영 작가의 첫 소설집. 표제작 '쇼코의 미소'는 서로 다른 국적과 언어를 가진 두 인물이 만나 성장의 문턱을 통과해가는 과정을 그려낸 작품이다. '쇼코의 미소'는 저마다의 날카로운 감식안을 지닌 소설가와 평론가들로부터 공통의 감상을 이끌어냈다. 등단작에 대해 흔히 우리가 걸게 되는 기대 - 기존 작품과 구별되는 낯섦과 전위에 대한 요구 - 로부터 물러나, 별다른 기교 없이 담백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그 정통적인 방식을 통해 읽는 이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에 '쇼코의 미소'가 지닌 특별함이 담겨 있다. 최은영은 등단 초기부터, "선천적으로 눈이나 위가 약한 사람이 있듯이 마음이 특별히 약해서 쉽게 부서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라고, 전혀 짐작할 수 없는 타인의 고통 앞에 겸손히 귀를 열고 싶다고 밝혀왔다. 최은영의 시선이 가닿는 곳 어디에나 사람이 자리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일 터. 총 7편의 작품이 수록된 최은영의 첫 소설집 <쇼코의 미소>는 사람의 마음이 흘러갈 수 있는 정밀한 물매를 만들어냄으로써, 우리들을 바로 그 '사람의 자리'로 이끈다.


#쇼코의 미소

쇼코와 나는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문화 교류'라는 주제로 고등학생 시절 처음 만났다. 할아버지와 산다는 점이 닮았던 우리. 일제 치하에서 살아왔기에 일본말을 잘했던 나의 할아버지는 밝고 명랑한 쇼코와 펜팔을 맺는다. 

ㄴ알 수 없는 쇼코의 미소. 예의바른 웃음과 나의 서늘해진 마음. "다음에 갈게. 그래야 또 올 이유가 생기지." 나는 이러한 말을 정말 나중을 약속하는 데에 쓰는데, <쇼코의 미소>에선 그 '예의바른' 웃음과 합쳐져 나중은 없지 않을까, 다시 한 번 묻게 됐다. 말씀이 거의 없으셨던 나의 할아버지는 배우에 도전하는 나를 응원해주셨고, 쇼코를 '여자친구'마냥 생각한다는 쇼코의 할아버지는 우울에 깊이 빠져 세상을 등지려던 쇼코를 구해주었다. 우리는 다 안다 생각하지만 모른다. 가까울수록 보지 못하는 것들 투성이다.


#씬짜오, 씬짜오

95년 1월, 독일로 돌아온 우리 가족은 친구가 생겼다. 베트남 사람인 호 아저씨네 가족이다. 그 집 아이인 투이와는 친구였고, 같은 학교에 다닌다. 가을학기가 시작될 무렵,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다행히 세계2차대전 이후로 대량 살상이 일어난 전쟁은 없었다." 투이는 말했다. "아닌데요."라고. 투이의 엄마는 베트남 전쟁으로 가족을 잃었다.

ㄴ이민자 가족의 연대에 관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더 깊은 이야기가 있었고, 그보다 더 깊은 역사가 있었다. 한국-베트남 인물이 나온다는 것부터가 힌트였는데 일말의 의심조차 없이 읽어버리고 말았네. 하, 남편놈은 거기다 대고 우리 가족도 죽었어요..^^당신네들만 억울한 거 아니다라는 걸 말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그게 거기에 맞는 말이었냐고요. 아, 신짜오는 베트남어로 '안녕하십니까?'라는 뜻이다. 처음과 끝의 '신짜오'가 달라 아프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엄마보다 다섯 살 위인 순애 언니는 예쁘고 멋지고 무엇보다 엄마를 좋아했다. 엄마의 지인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서운함이 코 끝까지 차오르기도 했다. 그렇게나 곱던 순애 언니는 결혼 후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점점 귀찮은 존재가 된다. "너 보니 좋다, 해옥아."

ㄴ순애 언니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납득이 됐다. 사랑하는 사람이 누명을 입고 감옥에 있는데 제정신으로 살 수가 있을까.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 보여야 하고, 나보다는 나의 아이가 더 뛰어나야 하고 이 아이는 좋은 세상에 살아야 하고. 뒤돌아보지 않더라도 해옥을 보며 울고 있을 거라던 것도 다 알 수 있었는데. 언제부터 우리는 멀어졌는지. 


#한지와 영주

스물일곱 영주는 나이로비에 있는 수도원으로 떠난다. 지내보니 일주일만 머물겠다는 결심은 뒤로 미뤄버렸다. 하루는 수도원으로 오는 학생들을 마중 나가는데 그곳에서 '한지'를 처음 만난다. 한지와 나는 밤늦게까지 서로의 깊은 이야기를 털어놓을 정도까지 가까워진다.

ㄴ가장 마음에 드는 소설이었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말을 믿지만 영문도 모른 채 끊기는 인연은 아프거든. 그러면서도 영원한 건 절대 없다는 말 때문에 돌아선 사람을 되돌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가까울수록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간다. 책임질 것들이 늘어간다. 마음을 보일수록 상대는 나에게 끌려오고 처한 현실은 가혹하니 돌아설 도리만이 있을 뿐이다. 마음이 아리다. 다시 만날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먼 곳에서 온 노래

대학생 시절, 노래패에서 처음 만난 미진 언니. 언니와 함께 처음 야외공연을 했던 사월의 밤도, 노래패 술자리에서 구해준 날도 잊을 수 없다. 언니는 러시아 문학을 공부하겠다며 러시아로 무작정 떠났다. 시간이 흘러 나는 언니를 만나러 러시아에 다다랐고, 그 전에 언니의 친구인 율랴를 만난다.

ㄴ내가 생각하기에 '먼 곳에서 온 노래'라는 제목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미진이 부른 노래 2. 율랴(한국에서 러시아는 먼 곳이니까)가 보낸 메일. 어느 쪽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결말이 달라진다. 1번이라면 녹음기로만 재생할 수 있는 노래이고, 2번이라면 지금부터 시작될 노래라는 뜻이니까 말이다. 하나를 더 덧붙이자면 끝은 새로운 시작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노래는 계속해서 이어진다. 유일하게 희망찬 결말이라 기억에 남는다. 


#미카엘라, 비밀

교황님과 미사를 본 89년도의 어느 날을 자랑으로 여기는 엄마. 엄마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딸 미카엘라를 챙겼다. 시간은 흘러 교황님과 미사를 볼 수 있는 날이 돌아왔다. 딸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아는 언니'집에서 자겠다고 말한 엄마는 마땅히 갈 곳이 없었다. 모텔을 찾아보지만 그것마저 비싸 근처 찜질방으로 향한다. 찜질방 탈의실에서 잠을 청하는 엄마.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89년도 미사 참여자를 만난다.


암에 걸린 말자는 딸 영숙과 함께 병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문득, 손녀 지민이가 생각이 난다. 글자를 모른다고 신발가게 사장에게 무시당하는 날엔 글자 공부를 하자며 다가오던 아이. 이제 그 아이는 자라 선생님이 되었다. 지민은 급하게 떠나는 바람에 말자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중국으로 떠났다.


ㄴ두 소설을 묶은 이유는 '세월호'라는 주제가 관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14년 4월 16일, 전원 구조하였다는 자막이 무색하게 정정된 현실은 믿을 수 없었다. 탑승객 대부분이 사망하였고, 그 중 다수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과 선생님들이었다. 세월호 사고로 인해 많은 일들이 일어났고 그 많은 일들에서 부정이 밝혀졌지만 진정으로 궁금한 것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진실을 밝히고 추모하려는 사람들의 촛불은 꺼졌다가도 다시 타오르나 어떤 무리는 심지를 밟는다. 그 중엔 나도 있었다. "지겹다."라고 말하는 사람 중 하나였으니. 소중한 사람을 잃고난 뒤 그 말은 내 입에서 사라졌다. 생각이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슬픔에 얹을 수 있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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